'기생충' '미나리' 성공에 미국서 'K콘텐츠'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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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7
한국어로 제작된 한국영화 ‘기생충’이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뒤 미국 문화계에 한국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영화와 K팝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영화, 드라마,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계 창작자들이 재능을 펼치며 한국 관련 콘텐츠를 미국 사회에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미나리’는 미국 시골 마을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정착하려는 한인 이민 가족의 삶과 가족애를 그린다. 출연진 대부분이 한국계거나 한국인이고 거의 모든 대화가 한국어로 이뤄지는데도 이 영화는 4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민 2세대인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으로,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의 책임 프로듀서였던 한인 2세 프로듀서 크리스티나 오가 적극적으로 제작을 추진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그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내게 오는 여러 이민자 이야기, 아시아계 미국인 이야기, 아시아인 이야기를 읽어봤지만 '미나리'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었다"며 "아주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한국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작품이 늘어나는 건 이처럼 한인 2세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곳곳에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미국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 작품의 소재로도 등장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다. 이달 초 무료로 공개한 8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윈드(Wind)'인데 한인 2세 에드윈 장(한국명 장우영)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아시아계에 대한 폭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픽사가 연대와 포용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한국인의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기생충’과 ‘미나리’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미국 콘텐츠 제작자들은 경쟁적으로 ‘K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는 재미교포 1.5세인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간 조선인 가족의 험난한 삶을 4대에 걸쳐 그리는 작품으로 ‘미나리’의 윤여정과 한류스타 이민호 등이 출연한다.
디즈니채널은 뉴질랜드 외교관으로 근무 중인 한인 1.5세 작가가 미국에서 5월 출간 예정인 소설 ‘마지막 떨어진 별’의 드라마 제작을 검토 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도깨비, 천리마, 해태, 인면조 등 한국 신화를 현대인의 시각에 맞춰 재해석한 판타지 소설이고 입양 한인이 주인공이다.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미국 문단에서 한국계 작가들의 활약은 '여러 아시아인 중 하나'가 아닌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리고 있다. 이창래, 수전 최 등 유명 재미교포 작가들에 이어 '유어 하우스 윌 페이'로 지난해 LA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한 스테프 차, '킨십 오브 시크리츠'의 유지니아 킴, '더 프린스 오브 몬풀 소츠 앤드 아더 스토리스'의 캐롤라인 킴 등은 한국 역사나 미국 내 한인을 다룬 소설로 최근 주목 받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인 이민 가정의 삶을 다룬 영화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제작돼 왔다. 그러나 김소영 감독의 ‘방황의 날들’(2006)을 비롯해 마이클 강 감독의 ‘웨스트 32번가’(2007), 대니얼 박 감독의 ‘K타운 카우보이스’(2015), 앤드류 안 감독의 ‘스파 나이트’(2016) 등 독립영화에 한정돼 폭넓은 대중과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K팝과 한국 드라마·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주류 대중문화 산업으로 흡수되고 있다. 특히 TV와 OTT로 확장하며 대중과 접점을 크게 넓혔다. 서울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인스 최는 자신이 만든 연극을 토대로 2016년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시트콤 시리즈 ‘김씨네 편의점’을 제작했다. 토론토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며 5년째 방송 중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018)도 큰 인기를 모으며 두 편의 속편을 낳았다. 한국계 미국인 소녀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 속에 한국 명절 풍습과 한복 등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까지 큰 성공을 거두자 미국 내 'K콘텐츠' 제작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위시한 K팝에 대한 높은 관심과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같은 장르물의 인기는 이 같은 변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앤드류 안 감독은 최근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기생충 이후 이후 'K팝 프로젝트 갖고 있는 것 없냐'고 물어보는 제작자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김소영 감독도 같은 인터뷰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 관련 프로젝트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계 창작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결정적 계기는 영화 '기생충'의 성공이다. 정이삭 감독은 “‘기생충’이 흥행에 성공한 덕에 한국어 대사는 더 이상 영화 제작에 있어서 장벽이 되지 않는다"면서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한국계 미국인 창작자들이 이전보다 더 큰 자유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