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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귀멸의 칼날’에 아시아 관객들이 빠진 이유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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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3.15 06:53 5,95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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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에 아시아 관객들이 빠진 이유
 
[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귀멸의 칼날’,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정서를 드러내다
 

※ 만화·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이 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불황을 직격으로 맞은 가운데, 심각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흥행을 보이는 작품들이 업계는 물론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축에는 오랜 시간 동안 전세계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디즈니의 신작 ‘소울’이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고토게 코요하루(吾峠呼世晴)의 만화이자, 이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귀멸의 칼날’이 있다.

특히 ‘귀멸의 칼날’의 위세를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울’이 디즈니의 오래된 전통이자, 서구 문화가 익숙해진 국제 사회의 흐름에 맞게 누가 보더라도 빠르게 작품의 메시지와 연출에 수긍할 수 있도록 만든 전형적인 ‘다국적 사회’의 애니메이션이라면 ‘귀멸의 칼날’은 원작은 물론 TV판이나 최근에는 극장판으로 나온 애니메이션까지 모두 일본 밖에서 작품을 보는 것을 크게 상정하지 않고 제작되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창 근대화가 진행될 무렵인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삼은 판타지 액션 만화 ‘귀멸의 칼날’은 철저하게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익숙함을 전제 조건으로 깔고 전개된다. 이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캐릭터의 모습이나 여러 배경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제법 심각한 장면이 전개되다가도 분위기를 환기한다는 목적으로 이전 씬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코미디 시퀀스가 드러나는 등, 일본의 서브컬쳐에 익숙한 관객이 보기에는 무척이나 익숙한 전개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진입조건이 클 수밖에 없는 작품이 바로 ‘귀멸의 칼날’이다.

▲귀멸의 칼날. 사진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귀멸의 칼날. 사진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일본에서 제작되어, 일본 관객들이 친숙하도록 제작된 ‘귀멸의 칼날’은 2020년 그야말로 일본 문화콘텐츠 산업의 구세주가 되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상반기에 급격하게 향유 인원이 감소했던 상황에서, 그 해 10월 일본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이하 무한열차편)은 메마른 땅 단비 같았다. 전세계적으로 영화 산업이 큰 타격을 맞이했지만, 일본 영화 시장은 일본영화제작자연맹의 통계에 의하면 자국 영화 한정으로 2019년 대비 2020년 수입 감소 비율이 23.15% 불과했다. 23%의 감소폭도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같은 해 한국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 기준으로 2019년 대비 2020년 수입이 무려 약 63% 감소했다. 미국, 유럽 등도 코로나의 확산과 함께 영화관 폐쇄 조치로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23%의 감소폭은 무척 선방한 것이었다.

2020년 일본 영화 전체 흥행 수입에서 20%를 ‘무한열차편’이 차지했다. 일본 역시 영화 1편당 흥행 수입은 결코 작지 않은 폭으로 감소했지만, 최소한 극장이나 연계 사업자 입장에서는 ‘무한열차편’의 개봉이 아니었더라면 더욱 심각한 위기를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러한 파급 효과는 일본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가 발표한 2020년도 일본 출판시장 통계에 의하면, 2020년 일본 출판시장의 규모는 오히려 2019년보다 4.8% 증가한 1조 6168억엔이 되었다. 물론 상승폭의 다수는 전자책(e-book) 시장 몫이며, 종이책 시장은 2019년 대비 1.0%가 감소했다. 그러나 이 폭은 날이 갈수록 종이책 시장이 줄고 있는 일본 출판 환경에서 최근 가장 낮은 감소폭이었다. 출판과학연구소는 코로나가 번지는 와중에서도 종이책 시장 규모가 비교적 선방한 원인을 ‘귀멸의 칼날’ 유행에서 찾았다. 극장판 ‘무한열차편’이 흥행하는 것은 물론, 극장판 개봉 시기에 맞춰 ‘귀멸의 칼날’ 단행본 완결권이 발행되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귀멸의 칼날’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만화 단행본의 압도적인 흥행은 음반, DVD, 기타 온갖 관련 상품(‘굿즈’)으로 이어지며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 자국 내의 상황이다.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도 과연 ‘귀멸의 칼날’이 흥행할 수 있을지는 좀처럼 예상이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물론 만화 단행본 자체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물론, 북미를 비롯한 서구 지역에서도 영어 제목 ‘데몬 슬레이어’(Demon Slayer)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인기를 받았다.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국가 전반적인 인기’로 인식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귀멸의 칼날’ 만화책의 흥행이 각국 내에서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게 형성되어 있음을 드러낼 수는 있어도, 좀 더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어야 주목받는 ‘극장판’에서는 흥행의 양상이 무척이나 달라질 수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포스터.
▲극장판 귀멸의 칼날 포스터.

 

‘귀멸의 칼날’ 극장판 ‘무한열차편’은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역,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역대 흥행 1위 영화였던 미야자키 하야오 연출,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넘어 새롭게 최고 흥행 기록을 갱신했다. 뒤이어 개봉한 대만에서도 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홍콩, 베트남, 태국 등에서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급기야 지난 1월 27일 극장판을 개봉한 한국에서도 최근 11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의 압도적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평소였으면 ‘100만대’ 관객 돌파를 압도적이라 부르기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극장 흥행이 큰 폭으로 감소한 상황에서 3월12일 현재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100만명을 돌파한 작품은 앞서 언급한 디즈니 제작의 애니메이션 ‘소울’, 그리고 ‘무한열차편’이 전부다. 그 이하로는 50만명을 돌파한 작품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무한열차편’의 한국 흥행은 2021년 3월 현재 무척이나 압도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이 흥행은 결코 당연한 흥행도 아니었다. 2021년은 ‘일제 강점기’ 다음으로 사상 최악의 갈등을 맞이하고 있는 2010년대 후반 한일 관계 경색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018년 대법원의 한국인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로는 2019년 초 한일 간 군사 갈등, 일본 반도체 재료 일부에 대한 수출 관리 시도,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에 대한 한국의 파기 선언과 미국의 압박으로 인한 파기 철회, 그리고 한국에서 민관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합작한 일본 불매 운동에 이르기까지 숨쉴 틈 없는 구도가 한동안 이어졌었다. 2021년 현재 2019년에 급격하게 일었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지만, 가장 최근에는 한국의 내셔널리즘 역사 운동 단체 ‘반크’(VANK)가 직접적으로 ‘귀멸의 칼날’에 대해 욱일기가 나온다는 이유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한다는 입장을 내는 일까지도 있었다.
[관련 기사 : 넷플릭스 ‘욱일기 귀걸이’ 한국판만 삭제? “전범국 역사 제대로 알려야” ]

물론 ‘반크’가 언급한 ‘귀멸의 칼날’ 욱일기 운운은 2010년대 이후 갑자기 불거진 ‘욱일기’에 대한 히스테리적 반응이라는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다. 욱일기 표현은, 한국은 물론 일본 이외 국가에서도 꽤나 흔하게 쓰였던 집중선 표현이다. 동시에 씁쓸하게도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나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와 달리 ‘욱일기’는 냉전 질서의 소용돌이에서 딱히 사용이 금지된 적도 없다. 일본 전통 문화에서 전래된 흐름이 다시 21세기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표현이다. 이를 단순히 ‘군국주의’로 연결시키기에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일본이 놓인 위치는 이전에 지녔던 경제적·국제적 지위와 맞물려 미국이 한국보다도 더욱 강한 동맹적 관계를 맺기에 좋은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패전 이후의 전쟁 책임도 일부 관계자 처벌로 그쳤던 역사적 한계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제작사 ufotable(유포테이블)이 이미 진작에 한국 한정으로 욱일기 표현을 수정한 것은, 이 문제가 자칫 잘못 비화하면 무척이나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될 수 있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이러한 여러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귀멸의 칼날’은 일본과 아시아 전반, 그리고 한국에서도 압도적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관객들로 하여금 ‘귀멸의 칼날’에 빠지도록 만든 것일까.

▲귀멸의 칼날 극장판 스틸컷 가운데.
▲귀멸의 칼날 극장판 스틸컷 가운데.

 

극장판 ‘무한열차편’은 사실 원작 만화만큼이나 진입 장벽이 높다. 만화 원작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어느 정도는 배경 소개나 캐릭터 소개에 할애를 하는 반면, ‘무한열차편’은 이러한 요소가 전무하다. 갑작스럽게 중간에서부터 스토리가 시작하고, 캐릭터는 아무런 준비 절차도 없이 갑자기 등장해서 관객들을 마주한다. 원작의 내용을 아는 관객이라면 ‘무한열차편’에 등장하는 상황과 캐릭터들이 어떠한지를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그야말로 장벽의 연속이다. 특히 ‘귀멸의 칼날’을 ‘무한열차편’으로 난생 처음 접하는 이라면, 높은 허들을 통과해야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열차편’은 이러한 장벽을 몇 가지의 통로를 통해 돌파한다. 그 첫 번째는 액션씬의 연출이다.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조금은 난해한 상황의 연속일지라도, 작품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나는 악역의 모습과 이에 맞서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액션은 무척이나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일찌감치 TV판 애니메이션에서도 원작의 액션을 더욱 부드럽고 캐릭터마다 포인트를 적확하게 살려낸 동선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제작사 ufotable은 상대적으로 높은 제작비와 긴 제작시간이 투여되는 극장판 ‘무한열차편’에 이르러 제대로 칼을 갈았다. 117분에 이르는 제법 긴 상영시간에 적재적소로 투입되는 캐릭터들의 액션은 전개되는 상황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일단은 ‘무한열차편’의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도록 하는 윤활제가 된다.

이렇게 ‘액션’이 ‘무한열차편’을 접하는 관객들을 위한 하나의 통로가 되는 사이, ‘무한열차편’을 위해 제작진이 별도로 할애한 스토리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무한열차편’을 비롯해 ‘귀멸의 칼날’의 전반적 이야기는 응전과 힘겨운 승리, 그러나 또 다시 이어지는 비극의 연속과도 같다. 이번 ‘무한열차편’에서 ‘꿈’으로 드러나는,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의 과거 시절은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행복하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탄지로는 어머니와 여동생 네즈코, 그 이외에도 수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무를 베고 숯을 구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을 아는 독자들에게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귀멸의 칼날’ 첫 화에서 탄지로 가족들은 네즈코를 빼면 모두 이 작품 악역 집단인 ‘혈귀’를 이끄는 우두머리 ‘키부츠지 무잔’에 의해 모두 참살되었기 때문이다. 네즈코는 무잔의 공격을 받고서도 겨우 살아났지만, 무잔의 피가 강제로 주입되는 바람에 인간이 아닌 ‘혈귀’가 되고 만지 오래다.

한편 ‘무한열차편’에서 탄지로 이상으로 주역 역할을 맡는 존재인 ‘렌고쿠 코쥬로’의 상황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여동생을 빼면 가족이 모두 죽고만 탄지로에 비하면 코쥬로 상황은 나은 편이지만, 코쥬로에게도 나름대로 고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래 자신보다 먼저 혈귀들을 퇴치하던 집단 ‘귀살대’ 정예대원인 ‘주’(柱, 기둥)이었던 코쥬로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귀살대에 대한 의지를 잃고 하루하루 술에 취해 보낸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서도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코쥬로에게 강한 의지를 심어냈고, 그의 동생이지만 형보다는 무술 실력이 약한 ‘센쥬로’ 역시 형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코쥬로 심연에서는 어머니나 동생보다도 아버지 모습이 우선하여 드러난다. 그것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주’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러 찾아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모습이다. 코쥬로는 매사에 정의를 말하고,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인물이지만 원작은 물론 극장판에서도 드러나는 이 모습은 코쥬로 캐릭터가 가진 어떤 아쉬운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창구와도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쥬로는 자신들보다는 아직 싸움의 경험이나 실력이 부족한 탄지로 일행들을 지켜내고, 다시 극장판 배경이기도 한 달리는 ‘무한열차’에서 아무 것도 모른채 혈귀의 음모에 의해 죽음의 꿈에 빠져든 승객들을 구해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코쥬로는 탄지로와 같이 영화 전반에 이미 모습을 드러낸 악역과 치열한 싸움에 나서 겨우 승리하는 듯 싶었지만, 잠시 쉴 틈도 없이 새로운 적이 등장한다. 심지어 앞서 90여분 동안 싸웠던 적보다 한참은 강한 상대이다.

▲귀멸의 칼날 극장판 스틸컷 가운데.
▲귀멸의 칼날 극장판 스틸컷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새롭게 등장한 적 ‘아카자’는 “강한 것이 선이며, 약한 것이 죄”임을 공공연히 말하는 캐릭터다. 이미 탄지로 일행이 모두 지칠대로 지친 상황에서, 탄지로를 지킬 수 있는 이는 코쥬로 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작중에서 탄지로가 코쥬로를 믿는대로 관객들은 코쥬로가 아카자에게도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은 그러한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 아카자는 코쥬로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고, 코쥬로의 필살기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낸다.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가운데 코쥬로는 아카자에게 혼신의 힘을 다 끌어내 일격을 가해 제법 깊은 상처를 주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쥬로는 아카자에 의해 사망한다.

어찌 보면 허무할 수도 있고, 냉혹할 수도 있는 흐름이다. 주인공 일행을 위해 헌신하고, 주인공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던 정예대원이 한 순간에 목숨을 잃고 떠나고 말았다. 주인공은 이에 분노해 악역에게 일갈을 던지지만, 이미 승패는 정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허탈함과 억울함이 교차되는 와중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던 코쥬로는 탄지로 일행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을 이어 새로운 ‘주’가 될 것을 격려하는 말과 함께 세상을 떠난다. 결과적으로는 ‘패배’로 끝이 났지만, 그 패배는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싸움에서 새로운 희망을 낳을 수 있는 여지를 낳으면서 끝나는 것이다.

여러모로 이러한 전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다지 흔치 않은 전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의 작품에서도 꽤나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전개를 드러낸 바가 적지 않지만, ‘귀멸의 칼날’은 일본 만화의 주류를 이루는 소위 ‘소년 만화’이다. 소년 만화에서 패배의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며, 패배의 순간을 드러냄으로서 주인공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전개는 어찌보면 일종의 클리셰와도 같다. 그러나 극장판 전체를 이러한 패배의 구성으로 설계한 선택은, 주류적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떤 의미로는 도전적 선택과도 같았다.

공교롭게도 극장판 ‘무한열차편’은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한 갑작스러운 위기에 봉착한 2020년에 개봉했다. 노인들에게 특히나 치명적 바이러스는 유명 인사는 물론 동네 주민이나 가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도록 만들었고, 2021년 현재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백신 접종이 최근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 종식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한열차편’의 주제 의식은 기존 ‘귀멸의 칼날’ 팬들을 넘어 평소에 ‘귀멸의 칼날’을 보지 않는 중장년 관객에게도 다가가기에 적합한 측면이 존재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러한 애니메이션에 별반 관심이 없을 것 같았던 60대 관객의 비율이 예상 외로 많다는 것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작품을 감상한 자녀들에 이끌려 작품을 보게 되었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참고 자료 : 도쿄FM, 10월22일 조사) 작품을 통해 가족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 오리콘, 12월13일 조사 발표 자료)

▲귀멸의 칼날 극장판 포스터.
▲귀멸의 칼날 극장판 포스터.


어떤 의미로 ‘귀멸의 칼날’에 담긴 패배의 연속과 그 이후에 드러나는 ‘언젠가는 찾아올 승리’를 다짐하는 전개는 코로나로 인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자 다시 그에 대한 극복을 맞이하는 의지, 그리고 이를 통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짐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러한 정서는 일본을 넘어 아시아에, 그리고 한국에도 퍼지고 있는 지점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네이버 영화나 CGV, 메가박스를 비롯한 멀티플렉스 예매 통계에서 ‘무한열차편’을 보는 관객 상당수는 20대이지만, 40대 이상의 관객도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설사 ‘귀멸의 칼날’을 원래 좋아하고, 일본 문화에 친숙해서 감상한 이들이라도 작품을 보면서 어떤 감정의 순간에 맞닥뜨릴 수밖엔 없고, 다시 그러한 감정의 변화가 일상에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귀멸의 칼날’에 담긴 ‘약속’의 다짐은 한계도 함께 담긴 움직임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희생에 대한 미적 승화’가 지니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기와 불안에 맞선 공동체의 단결이라는 움직임은 공동체가 지녀야 할 지향을 고민하는 움직임을 제한하는 동시에, 위기에 대처하는 것을 이유로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어떠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정서를 함께 수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귀멸의 칼날’만의 문제는 아니며, 액션이 바탕이 된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대중 매체 상당수가 공유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라는 상황에서, 더더욱 이러한 감정을 촉발하는 여지가 강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귀멸의 칼날’이 일본과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 이어,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음을 보이는 것은 다양한 고민의 여지를 함께 낳는 상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한국의 정서가 아시아 전반의 정서와 공유함을 재확인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다름을 말하지만, 결국 어떠한 순간에서는 비슷한 정서를 개인과 공동체에게 요구하며, 그러한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거울쌍처럼 대립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반크’의 모습처럼 그저 일본 작품들을 거부하거나 배척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 역시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주변의 다른 국가들과 공유하는 감정과 심리의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내는 물론 다시 한국을 넘어 타국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하나의 단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다시보기’, 또는 ‘마주보기’가 그저 내셔널리즘이냐, 아니냐의 이분 대립을 넘어서 새로운 아시아의 상을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귀멸의 칼날’의 흥행은 단순한 작품의 흥행을 넘어, 작품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의 맥락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되게 이끌고 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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