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금이 OTT 거버넌스 다툴 때냐
입력 2021.03.15 06:00
한국의 OTT 플랫폼 산업이 위기다. 구글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탄탄하게 정착한 데 이어 디즈니플러스까지 진출을 고심 중이다. 이대로 가다간 토종 플랫폼 기업의 텃밭마저 다 뺏길 처지다.
하지만 정부 부처들은 최근 아귀다툼을 펼치며 주도권 싸움만 벌인다. 명분도 다양하다. 진흥 정책을 통해 OTT 부흥을 해보겠다는 부처도 있지만, 한쪽에서는 방발기금 등 유료방송 업계에 들이밀었던 퀘퀘묵은 규제부터 꺼내드는가 하면 플랫폼보다 콘텐츠에 방점을 찍는 곳도 있다. 진흥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 중심의 방송통신위원회, 콘텐츠 기반의 문화체육관광부가 그 주인공이다.
바둑을 둘 때 훈수 두는 이가 많으면 그 판은 필패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최근 우리 OTT 산업이 그 모양새다. 국무조정실은 2020년 6월 22일 ‘미디털 미디어 생태계(이하 디미생) 발전방안’을 통해 과기정통부를 콘트롤타워로 내건 ‘범부처 OTT 협의체’를 마련했다. 2022년까지 글로벌 플랫폼 기업 최소 5개를 육성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세웠다. 방통위와 문체부도 협의체에 참여하며 과기정통부 정책에 힘을 실었다. 과기정통부는 2020년 8월 OTT를 특수유형의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해 규제 최소화를 통한 진흥에 방점을 찍으며 정책 추진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디미생 발전방안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OTT 거버넌스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과기정통부가 아닌 방통위나 문체부가 키를 쥐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방통위는 기존 유료방송이나 레거시 미디어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OTT 규제를 주장했다. 최근에는 방송의 공공·공익성 강화를 위한 시청각미디어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국무조종실이 범부처 OTT 협의체 마련을 발표할 당시에도 별도 연구반을 운영하며 OTT 관련 국내·외 현황을 살폈다.
방통위는 방송 서비스별 경쟁관계나 영향력에 비례한 규제 수준을 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방송법과 IPTV법을 포괄하는 시청각미디어법은 기존 레거시 미디어 관련 소유 규제나 중간 광고 폐지 등 내용을 담은 만큼 입법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청각미디어법이 국내외 기업간 규제 형평성을 지킬 수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유료방송 업계 한 관계자는 "방통위가 OTT 규제를 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구글이나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은 잡지 못한 채 토종 기업만 규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2월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콘텐츠를 중심으로 OTT 관할을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문체부는 내부에 ‘OTT 콘텐츠팀’을 신설해 OTT 주요 정책을 만들어 나갈 전망이다. 하지만 복수의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문체부의 정책 방향이 아전인수하는 격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토종 플랫폼이 없어지면 콘텐츠의 설 자리역시 사라지는데, 문체부가 한국의 콘텐츠 산업을 외산 OTT 플랫폼 기업의 생산공장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관련 풍부한 기술을 보유한 현대차가 애플카 생산의 전초기지화 되는 것처럼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플랫폼이 중요하다는 점은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FAANG)의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자체 플랫폼이 없는 국가는 미국 IT 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잘나가는 일부 한국 유튜버는 매달 수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지 모르지만, 대다수는 수익을 올리더라도 소액이다. 그사이 플랫폼의 주인인 유튜브는 온라인 광고 시장 장악을 통한 막대한 수익을 거머쥔다. 트래픽을 만든 것은 유튜버지만, 전체적인 수익은 플랫폼 기업에 집중되는 구조다. OTT 업계에 충격을 준 문체부발 넷플릭스 펀드 조성 관련 이슈는 다행히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지며 해프닝을 끝났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불만이 꾸준히 이어진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서비스는 한국 방송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산업 생태계 전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파괴력 역시 상당하며, 대안 마련을 위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은 정부부처간 아귀다툼을 할 때가 아니다. 어렵게 OTT 콘트롤타워를 정리한 마당에 이제와서 다시 흔들 시간이 없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OTT 플랫폼 육성부터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
하지만 정부 부처들은 최근 아귀다툼을 펼치며 주도권 싸움만 벌인다. 명분도 다양하다. 진흥 정책을 통해 OTT 부흥을 해보겠다는 부처도 있지만, 한쪽에서는 방발기금 등 유료방송 업계에 들이밀었던 퀘퀘묵은 규제부터 꺼내드는가 하면 플랫폼보다 콘텐츠에 방점을 찍는 곳도 있다. 진흥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 중심의 방송통신위원회, 콘텐츠 기반의 문화체육관광부가 그 주인공이다.
바둑을 둘 때 훈수 두는 이가 많으면 그 판은 필패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최근 우리 OTT 산업이 그 모양새다. 국무조정실은 2020년 6월 22일 ‘미디털 미디어 생태계(이하 디미생) 발전방안’을 통해 과기정통부를 콘트롤타워로 내건 ‘범부처 OTT 협의체’를 마련했다. 2022년까지 글로벌 플랫폼 기업 최소 5개를 육성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세웠다. 방통위와 문체부도 협의체에 참여하며 과기정통부 정책에 힘을 실었다. 과기정통부는 2020년 8월 OTT를 특수유형의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해 규제 최소화를 통한 진흥에 방점을 찍으며 정책 추진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디미생 발전방안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OTT 거버넌스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과기정통부가 아닌 방통위나 문체부가 키를 쥐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방통위는 기존 유료방송이나 레거시 미디어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OTT 규제를 주장했다. 최근에는 방송의 공공·공익성 강화를 위한 시청각미디어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국무조종실이 범부처 OTT 협의체 마련을 발표할 당시에도 별도 연구반을 운영하며 OTT 관련 국내·외 현황을 살폈다.
방통위는 방송 서비스별 경쟁관계나 영향력에 비례한 규제 수준을 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방송법과 IPTV법을 포괄하는 시청각미디어법은 기존 레거시 미디어 관련 소유 규제나 중간 광고 폐지 등 내용을 담은 만큼 입법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청각미디어법이 국내외 기업간 규제 형평성을 지킬 수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유료방송 업계 한 관계자는 "방통위가 OTT 규제를 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구글이나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은 잡지 못한 채 토종 기업만 규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2월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콘텐츠를 중심으로 OTT 관할을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문체부는 내부에 ‘OTT 콘텐츠팀’을 신설해 OTT 주요 정책을 만들어 나갈 전망이다. 하지만 복수의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문체부의 정책 방향이 아전인수하는 격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토종 플랫폼이 없어지면 콘텐츠의 설 자리역시 사라지는데, 문체부가 한국의 콘텐츠 산업을 외산 OTT 플랫폼 기업의 생산공장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관련 풍부한 기술을 보유한 현대차가 애플카 생산의 전초기지화 되는 것처럼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플랫폼이 중요하다는 점은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FAANG)의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자체 플랫폼이 없는 국가는 미국 IT 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잘나가는 일부 한국 유튜버는 매달 수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지 모르지만, 대다수는 수익을 올리더라도 소액이다. 그사이 플랫폼의 주인인 유튜브는 온라인 광고 시장 장악을 통한 막대한 수익을 거머쥔다. 트래픽을 만든 것은 유튜버지만, 전체적인 수익은 플랫폼 기업에 집중되는 구조다. OTT 업계에 충격을 준 문체부발 넷플릭스 펀드 조성 관련 이슈는 다행히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지며 해프닝을 끝났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불만이 꾸준히 이어진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서비스는 한국 방송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산업 생태계 전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파괴력 역시 상당하며, 대안 마련을 위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은 정부부처간 아귀다툼을 할 때가 아니다. 어렵게 OTT 콘트롤타워를 정리한 마당에 이제와서 다시 흔들 시간이 없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OTT 플랫폼 육성부터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
출처 :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13/20210313000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