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터 OTT 드라마까지…인기 콘텐츠에 들어 있는 한국의 요소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

《미나리》의 씨앗이 세계에서 잎줄기를 뻗어 올렸다. 한국적인 인간애와 가족의 가치를 담은 스토리가 질긴 생명력과 강한 번식력을 가진 미나리처럼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원더풀’한 이야기, 영화 《미나리》를 둘러싼 반응이 뜨겁다. 미국 최고 권위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기점으로 전 세계 시상식에서 70개가 넘는 왕관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영화는 실제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 가정에서 태어난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미국 영화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한국적인 요소들이 스며들어 있다. 세계가 영화 속에 담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나리》뿐만이 아니다. 최근 전 세계가 열광하는 콘텐츠들 속에 한국이 있다. 미국 애플TV플러스가 제작에 나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파친코》에도, 넷플릭스의 인기 콘텐츠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도, 캐나다 국영방송 CBC에 편성돼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에도 한국의 역사가, 한국의 문화가, 한국적 코드가 들어 있다.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인기 콘텐츠들 속에 들어 있는 한국의 요소들은 무엇일까. 왜 지금 세계의 콘텐츠 시장은 한국을 주목하는 것일까.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판씨네마㈜ 제공 

영화 속에서 주목받는 한국적 요소

《미나리》에서는 한국(혹은 한국계) 배우들과 한국어가 서사를 이끈다. 보편적인 가족애와 일명 ‘아메리칸 드림’을 다룬 미국 영화를 한국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첫 번째 요소다. 여기에 더해진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 것들’이다.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모니카(한예리)의 요청에 순자(윤여정)는 미국 땅을 밟는다. 순자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한 식탁에는 진간장과 깍둑썰기를 한 무가 올려진다.

순자가 ‘엄마’의 마음으로 싸들고 온 것은 고춧가루와 멸치다. 향수에 빠져 있을 딸을 위해 바리바리 챙겨온 한국 먹거리들을 보며, 모니카는 ‘여기서는 찾아도 그 맛이 아니더라’고 환호하며 눈물을 쏟는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도 있다. 순자는 “미국 바보들은 이게 뭔지 모른다”며 미나리 씨를 물가에 뿌린다. “미나리는 김치에도, 찌개에도, 국에도 넣어 먹는다. 아플 때는 약으로도 쓴다”며 미나리를 ‘원더풀’이라 칭한다.

영화 속 할머니는 여느 ‘미국 할머니’처럼 손자에게 쿠키를 구워주지 않는다. 대신 외손자 데이빗(앨런 킴)에게 건네는 건 화투다. “지금 배워놔야 나중에 딴 놈들을 이겨먹을 수 있다”며, 바닥에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 구수한 욕을 던지며 화투를 알려준다. 데이빗이 미국 친구의 집에 가서 꺼내든 것도 화투다. 데이빗의 친구가 ‘끝내주는 게임’이라고 평가한 이 화투는, 선댄스영화제에서도 가장 주목받았던 요소였다. 손주들에게 화투를 가르쳐주고 함께 치는 장면이 외국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것이다. 영화는 한국 노래도 소환한다. 1970년대 혼성듀엣 라나에로스포의 노래 《사랑해》다. 이 노래는 모니카와 제이콥의 ‘꿀물 떨어지는 로맨스’를 기억시킴과 동시에, 한국의 7080시대를 배경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붓글씨와 매듭공예 장식품, 꽃무늬 이불도 그 시절을 비춘다.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콘텐츠 속 K팝·K푸드의 역할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OTT 속에도 한국이 있다.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보자.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보편적인 하이틴 로맨스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특이점이 있다. 한국의 문화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세 번의 시리즈를 거치면서 꾸준히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쌈채소와 밥, 국이 펼쳐진 상차림이, 한국의 명절 음식이, 한복이 화면에 등장한다. 한국 고유의 정서라 불리는 ‘정’을 소개하는 장면도 있다. 세배를 하고 가족들과 덕담을 주고받는 풍경은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장면으로 기억됐다.

특히 ‘엄마의 나라’인 한국으로 여행을 오게 된 라라 진 가족의 스토리로 시작하는 3편은 그간 시리즈에서 녹여냈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광장시장에서 둘러앉아 국수를 먹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쇼핑을 하고, ‘노래방’에서 자매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연인들의 필수 코스라는 남산타워도 배경으로 등장한다. 남산타워에서 사온 ‘사랑의 자물쇠’, K뷰티를 대표하는 마스크팩은 남자친구에게 주는 여행 기념품이 된다. 제니 한 작가는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한국이 어떤 곳인지 보여줄 수 있어 행복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화면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전에는 한국에서 인기를 끈 작품들이 해외에 소개되거나, 해외 작품에 한국 배우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다르다. 한국을 소재의 중심에 두거나, 한국적 코드를 작품에 녹인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글로벌 콘텐츠들이 한국을 담는 것은 한류의 성장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BTS와 블랙핑크를 필두로 한 K팝 그룹의 성장은 한국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배경음악은 그 지표다. 전편에서는 블랙핑크의 노래 《Kill This Love》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완결편인 3편의 도입부에는 소녀시대의 《Gee》를 삽입해 여행의 발랄한 분위기를 버무려냈다. 블랙핑크의 《Pretty Savage》와 체리블렛의 《Q&A》도 배경음악으로 등장해 K팝의 인기를 증명했다.

실제로 한식, 패션, 한국 문화가 등장하는 K콘텐츠의 부흥은 해외 팬들에게 한국 방문 의사를 늘리는 역할도 한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관광에 잠시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콘텐츠로 시작된 해외 팬들의 ‘한국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류 관심층의 한국 방문 의향은 62.5%로 높게 나타난다. 한국관광공사가 넷플릭스와 함께 특별 영상 《Explore Korea》를 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적인 화제작이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전통 의복, 한국의 전통 건축물을 비롯해 한복을 입고 있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주인공들의 모습, 푸드 콘텐츠에 등장한 한국 시장 등이 영상에 담겼다. 유튜브 영상에는 ‘언젠가 한국에 꼭 가고 싶다’는, ‘한국 광장시장에 가보고 싶다’는 해외 팬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한국의 다양한 매력을 널리 알리고,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미를 넷플릭스에서 즐길 수 있도록 돕겠다”고 영상의 취지를 설명했다.


캐나다 CBC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의 한 장면 ⓒCBC 제공

한국의 시대·역사적 상황이 더해진 콘텐츠들

콘텐츠 시장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주목하면서, 한국의 시대와 역사를 적극적으로 소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애플TV플러스가 제작하는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가 그중 하나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이후 부산 영도에서 오사카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들이 타지에서 겪는 역경을 다룬다. 배경은 1930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반세기 남짓. 한국 배우로는 윤여정, 이민호, 정은채, 정웅인 등이 캐스팅됐다.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현재는 캐나다를 배경으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OTT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애플의 이 행보는 한국을 다룬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한국이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의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캐나다 국영방송에서 방영한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은 이민자 가족의 일상이라는 스토리에 한국적 코드를 삽입했다. ‘이민자의 국가’인 캐나다에서 한국인 이민자라는 것 자체는 독특한 설정이 아니다. 그러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시트콤에는 한국의 문화·경제적인 발전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가부장적인 아빠가, 아이들의 성적과 직장 내 승진 문제로 경쟁하는 한국인 가족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중간중간 멘트로 등장하는 일제강점기의 한국 역사와 아빠의 투철한 애국심은, 작품을 보는 캐나다 시청자들이 한국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캐나다 시트콤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시즌 4까지 마무리됐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떠오르는 콘텐츠들에는 보편적인 장르나 스토리에 한국 특유의 고유성이 더해진다는 특성이 있다. 세계를 흔든 한국의 콘텐츠들도 그렇다. ‘계급 격차’라는, 전 세계에서 통하는 스토리를 지닌 《기생충》의 성공은 한국이라는 배경이 이야기의 터전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시초가 됐다. 당시 외신은 영화에 등장하는 ‘반지하’라는 코드에 집중했다. 대다수 나라가 ‘반지하’를 모르는 상황에서, 보편적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생소한 코드가 해외 팬들을 자극한 것이다. 《킹덤》은 해외 팬들에게 익숙한 ‘좀비’ 이야기를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풀어내면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소품들은 해외 팬들을 사로잡았다. ‘갓’은 해외 팬들에게 ‘끝내주는 모자’라고 불렸고, ‘《킹덤》은 좀비와 모자(갓)에 대한 드라마’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6·25 전쟁 이후 분단된 국가라는 정체성도 평범한 로맨스에 차별화를 더하는 하나의 요소가 됐다. 이 내용이 기반이 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일본과 동남아 등 아시아를 넘어 영미권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