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넷플리스…설 곳 잃은 토종 OTT
넷플릭스 여성 스토리텔러 콘텐츠 모음. / 넷플릭스
[메트로신문]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보건교사 안은영',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이들 콘텐츠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다.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여성 코미디언 사상 국내 최초 스탠드업 코미디, 여성 크리에이터 참여, 다국적 출연진이 등장하는 등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사회에 진입하면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콘텐츠 시장에서 발을 넓히고 있다. '글로벌 공룡' 넷플릭스는 인종과 성별, 문화적 정체성 등과 관련한 '다양성'에 방점을 찍으며, 글로벌 시장으로 콘텐츠를 뻗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USC 애넌버그 포용정책연구팀과 다양성 리포트를 발간하기도 하고, 차세대 여성 스토리텔러 육성에 500만달러(한화 약 57억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 토종 OTT 또한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넷플릭스의 행보를 뒤따라 가며 '방어전'을 펼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뚜렷하게 흥행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미비하고, 투자액 또한 차이가 있어 갈 길이 멀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국내 콘텐츠 유출을 막고, 토종 OTT가 공동 투자조합을 만들어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국내 OTT 플랫폼에 유통을 시키는 등 힘을 합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넷플릭스, 다양성 앞세워 국내 시장 공략 가속화
9일 CJ ENM의 OTT '티빙'은 지난해 10월 독립법인 출범 후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통해 라인업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올 한 해 약 20여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OTT 각축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이 웨이브, 왓챠, 티빙 등 토종 OTT 또한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OTT에 쿠팡과 카카오, 네이버까지 가세한 혼전이 이어져 토종 OTT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의 경우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는 물론, 이에 한발 앞서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내걸며 글로벌 공략에 속도를 가하는 모양새다.
다양성 지표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영화 및 TV 시리즈에서 유색 인종의 여성감독, 시리즈물의 여성 크리에이터 비율이 높아졌고, 단독 주연과 공동 주연, 주요 출연진의 흑인 배우 비율도 업계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차세대 여성 스토리텔러 지원 계획 또한 다양성 확보 차원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 내 '여성 최초'의 타이틀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같은 행보는 젠더나 인종, 장애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콘텐츠가 힘이 있고, 이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포석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넷플릭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60%에 달하는 성장세를 나타낸다.
국내 콘텐츠 시장 공략도 가속화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시장 진출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 콘텐츠에 770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에만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55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선택권이 확대돼 이를 반기는 모양새다. 콘텐츠 창작자나 제작자 또한 넷플릭스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여력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미디어 생태계가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0년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OTT시장에서 넷플릭스 등 해외 OTT 서비스의 점유율이 88.2%에 달한다. 닐슨코리아클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순이용자수는 넷플릭스가 637만명으로, 2위인 웨이브 344만명을 크게 웃돌며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인 '승리호', '스위트홈', '킹덤' 등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콘텐츠로 부상했다.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어바웃타임'. / 콘텐츠웨이브
◆토종 OTT 설 자리 좁아져…"공동 투자조합 만들어야"
반면, 토종 OTT는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자체도 녹록치 않아 경쟁력을 강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상파와 SK텔레콤의 연합 '웨이브'는 2023년까지 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KT의 '시즌'은 지난 1월 250억원을 투자해 콘텐츠 전문 기업 KT 스튜디오 지니를 설립했다. 왓챠도 투자액 590억원을 콘텐츠 발굴에 이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투자액인 5500억원과 비교해 체급에서부터 차이가 나고, 웨이브가 내놓은 오리지널 콘텐츠인 '녹두전', '꼰대인턴' 등은 시장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뽐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티빙'이 올 한 해 약 20여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혔지만, 로컬 콘텐츠가 어느정도 효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에 막강한 자체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디즈니플러스까지 국내에 진출하면 토종 OTT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로 인해 국내 콘텐츠 생태계 종속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콘텐츠 기술·개발 세제 지원 제도 개선 등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디어미래연구소가 발표한 '콘텐츠 R&D 세제지원 문제점 및 개선방향' 리포트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영상 콘텐츠 기업 300개 중 76%는 콘텐츠 사업에서의 R&D 활동은 콘텐츠의 기본적인 질적 향상과 사업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인식하고 있다.
미디어미래연구소 측은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콘텐츠 사업자의 국내 진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내 콘텐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R&D 세제 지원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볼 때 토종 OTT가 공동 투자조합을 만들어 네이버, 카카오 등 양사 포털 업체들의 웹툰 등 다양한 원천 콘텐츠를 확보, 공동 제작해 국내 OTT 플랫폼에 유통해야 한다는 대안도 있다.
한국OTT포럼 회장인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글로벌 플랫폼 뿐 아니라 웨이브, 쿠팡 등 국내 OTT플랫폼까지 난립한 상황에서 콘텐츠 빈곤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가 심화될 것"이라며 "국내 콘텐츠 유출을 막고 토종 OTT들이 공동 투자조합을 만들어 넷플릭스와 맞서는 다양한 원천 IP를 발굴, 공동 제작해 국내 플랫폼에 배급해야 가입자를 유인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