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스틸 컷 ⓒ Netflix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쓴 시인 로널드 홀은 자신의 불멸성이 장례식이 끝나고 6분 후면 소멸될 것이라며 위트 넘치는 '예언'을 했다. 하지만 평생 죽음을 자신의 화두로 삼았다던 노 시인의 예언은 빗나갔다. 비록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는 여든이 넘도록 그가 써내려간 글을 통해 아직 그를 기억하고 떠올린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 인간은 안타깝게도 그 '유한'의 숙명과 싸우는 '운명'을 짊어졌다. 영겁의 삶을 기원하며 무덤을 장식했고, 영적인 종교를 통해 영원과 소통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영원을 소망할 수록 눈 앞에 다가오는 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한부의 삶이다.
시간이 제한된 삶을 살아가는 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 넷플릭스 영화 <더 디그>가 한 마디를 전한다.
발굴을 통해 만나게 된 이디스와 배질
2차 대전을 앞둔 1939년 영국의 서픽. 그곳에서 이디스 프레티(캐리 멀리건 분)는 자신의 아들 로버트(아치 반스 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온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인데도 이디스는 생뚱맞게 자신의 사유지에 있는 둔덕을 발굴하기로 결심한다.
그 둔덕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디스 부부가 사두었던 땅이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고고학적 관심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치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이디스는 더 늦기 전에 발굴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 발굴을 위해 배질을 고용한다.
배질은 전문적인 고고학자가 아니다. 농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오랫동안 서픽에서 살아온 그는 그곳의 땅에 대해 잘 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홀로 연마해 온 인물이다. 이디스 부부가 사놓은 서픽의 둔덕을 발굴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사람이다. 사람 보는 눈이 밝은 이디스는 그런 배질을 알아보고 기꺼이 그를 고용한다.
배질은 '전쟁을 앞둔 시기에 발굴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란 주변의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디스 부인의 둔덕이 그간 영국의 고고학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앵글로 색슨의 기원을 밝혀줄 소중한 유산이라는 믿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내기 위해 변덕스런 영국의 날씨에 맞서 발굴을 주도해 나간다.
영화는 둔덕이 자리잡은 드넓은 영국의 서정적 풍광을 배경으로 이디스 부인의 마지막 소망과 그런 소망에 공명한 배질의 신념을 풀어낸다. 기약할 수 없는 '발굴'이라는 과제 앞에 두 사람은 맹목적으로 교감한다.
이디스와 배질의 교감은 어쩌면 그들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를 '과제'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지역 의사는 '소화가 안 돼서'라고 하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가슴 통증은 결국 이디스에게 '시한부 삶'을 선고한다. 그리고 지역향토학자로서 그 누구보다 서픽의 땅에 대해 잘 알지만 지역 박물관, 그리고 대영 박물관의 전문가들 앞에서는 무력하게 발굴의 권한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배질에게 있어 이디스 부인의 둔덕은 자신이 추구해온 '발굴'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 <더 디그> 스틸컷 ⓒ 넷플릭스
영화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이지스와 배질이라는 두 사람이 '발굴'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통해 교감하는 과정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배질 역을 맡은 랄프 파인즈의 폭넓은 연기와 이지스 역할을 한 캐리 멀리건의 깊이 있는 연기 앙상블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캐리 멀리건은 그녀가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였음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의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런 두 사람을 잇는 건 그간 엄마 말고는 정 붙일 곳 없던, 4차원의 정신 세계를 가진 이디스 부인의 아들 로버트다. 우주를 향한 부푼 꿈을 가진 로버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배질이었다. 로버트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곧 로버트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할 처지의 이디스 부인은 그런 배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전쟁 통에 쓸데없는 짓'으로 취급 받던 배질의 '발굴'은 대영박물관의 교수진을 발벗고 뛰쳐오게 만드는 성과를 낸다. 너른 풀밭 위에 솟아 있던 둔덕 속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배의 유적이 그가 장담한 대로 당시 영국에서는 흔했던 바이킹의 유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영국인의 조상인 앵글로 색슨족의 유장품이었기 때문이다.
배질의 주장은 '사실'로 확인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발굴에서 배질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는다. 일개 발굴자인 배질은 전문적인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그저 일꾼에 불과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자신이 팽당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배질은 발굴지를 떠나려고 하지만 자신 아내와 그를 찾아온 로버트, 이디스 부인을 만난 뒤 진짜 자신이 원하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발굴 현장의 일꾼으로 남기로 결심한다.
발굴의 '참 의미'
▲ <더 디그> 스틸컷 ⓒ 넷플릭스
배질의 주장처럼 앵글로 색슨의 활동 시기를 6세기까지 끌어올릴 유적은 '배'다. 아니 정확하게는 배의 흔적이 남은 흙의 자국이다. 바다에서부터 둔덕까지 끌어올려져 앵글로 색슨 족의 무덤이 되었던 나무 배는 사라졌고 부장품만을 품은 채 흙에 그 '흔적'만 남겼다. 발굴을 통해 부장품은 수확되고 배는, 아니 배의 흔적은 다시 흙으로 덮인 뒤 둔덕으로 돌아간다.
배질의 열정, 그 열정을 눈밝게 지지해준 이디스 부인의 신뢰, 유적을 둘러싼 여러 집단의 이해 관계들이 엇물리던 한바탕의 '이벤트'는 결국 흙과 함께 사라진다. 영화의 초중반부 갈등의 '초점'이 되던 유적이 후반부 들어 그 흔적을 감추게 되는 과정이 허무하기까지 하다. 마치 유한의 삶을 극복하려 애써보지만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사처럼.
그렇다면 '인생무상'이 결론일까? 박물관 관계자들이 돌아가고 다시 흙을 덮기 전, 배질은 로버트의 청에 따라 그곳에 이디스를 초청한다. 곧 다시 흙으로 돌아갈 앵글로 색슨의 배는 그곳에 이디스 모자를 싣고 우주를 향한 로버트의 꿈을 담아 마지막 항해를 한다. 그 과정에서 로버트는 엄마가 지금 자신의 곁을 떠나도, 엄마와 계속 함께할 것임을 약속한다.
이디스의 청에 따라 발굴 현장에 남은 배질은 후에 이디스와 함께 발굴 현장의 부장품 전시에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더 디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더 디그>에서 가장 여운이 짙은 장면은 이디스와 로버트, 배질의 항해 순간이었다. 아버지 병구완을 하느라 남편의 청혼을 뒤늦게 받아들인 이디스는 결혼 후 남편과 오래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어린 로버트를 홀로 남겨두고 가야하는 게 안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철부지인 줄로만 알았던 로버트는 배질의 도움을 받아 한 마지막 항해를 통해 이디스의 마음을 다독인다. 어쩌면 이디스가 배질을 독려하며 집요하게 유적 발굴에 애썼던 이유도 마지막 항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디스와 배질이 결국 대영박물관에 그들의 이름을 남긴 건 다행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성취한 건 박물관에 새겨진 그 이름이 아니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앵글로 색슨의 유적처럼 아들에게 영원한 빛으로 남겨질 엄마,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실현해낸 발굴자로서의 실천이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에서 로널드 홀은 자신이 죽은 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친지들과 슬픔을 나눌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은 후 버려질 자신의 집에 남겨질 사랑했던 사람들과 물건들의 처지를 걱정한다.
유적은 결국 먼저 살고간 이들이 남긴 '흔적'이다. 부장품으로 다시 돌아온 앵글로 색슨의 유적이 담겼던 언덕은 이제 아들 로버트에게 엄마와 항해를 했던 장소로, 그리고 배질에게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발굴의 '유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기에 발굴 현장에서 피어난 페기와 로리의 로맨스 역시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전쟁터에 나간 로리와의 또 하나의 '유적'으로 기억될 일이다. 실화는 그렇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관계와 사랑, 그리고 삶으로 복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