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희 감독 우주 SF '승리호' 장 선장 역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로 데뷔해 '1987', '리틀 포레스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거쳐 조성희 감독의 우주 SF '승리호'와 개봉을 앞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까지.
신인을 갓 벗어난 데뷔 6년 차 배우지만 김태리의 존재감은 또래 배우 중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조성희 감독이 선보인 한국의 첫 우주 SF 영화 '승리호'에서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장 선장 역 역시 전형적이지 않은 역할과 연기로 호평받고 있다.
15일 온라인으로 만난 김태리는 바로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너무 좋았지만, 장 선장이 내 얼굴로 읽히지는 않았다"며 "다른 시나리오나 대본을 보고 대사를 읊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그 안에 있는 모습이 쉽게 떠올랐는데 '승리호'는 그게 잘 안 됐다"고 했다.
감독을 만나자마자 캐스팅 이유를 물었을 때 조 감독의 답은 '전형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를 돌려줬다고 했다.
"선장이라는 타이틀도, 남자들을 이끌고 있다는 설정도 좀 과격한 느낌이라 보통 '에일리언'의 주인공처럼 좀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감독님은 저처럼 여리여리, 순둥순둥한 애가 조종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더 큰 효과가 날 거라고 믿는다면서 저를 설득하셨죠. 하하"
관객으로서 SF 장르를 좋아하고, 한국 최초의 우주 SF라는 타이틀에 설레고 기대가 컸지만, 촬영하면서는 어려움과 고민도 적지 않았다.
김태리는 "할리우드 SF를 보면서 학습된 부분이 있다 보니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장 선장 캐릭터도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고,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되는 업동이(유해진 분)를 상상하면서 연기할 때 시선 처리 같은 현실적인 촬영 조건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비롯해 장 선장의 모든 외양에 적응하는 것들도 거기에 포함됐다.
하지만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던 장 선장의 선글라스도, 타이거 박의 머리도, 태호의 구멍 난 양말도 각 인물에 캐릭터를 부여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녹아들게 했다"며 "장 선장의 오렌지색 우주복이 지금까지 상상하던 모양새가 아니라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영화 안에서 보니까 색깔들이 너무 매력적이었다"고도 했다.
극 초반 입었던 주황색 스마일 티셔츠와 함께 입었던 재킷은 기념으로 챙겨 두기도 했다.
함께 한 배우들과의 호흡을 자랑하던 김태리는 "업동이는 시나리오보다 유해진 선배가 100배, 200배 더 만들고 하나하나 조각했다.
내가 하면 너무 어렵고 힘에 부칠 것 같다"면서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라고 중얼중얼 덧붙이기도 했다.
또 "근데 젠더 프리로 남녀 배역 바꾸는 것처럼 타이거 박은 제가 하면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라며 "헤헤헤" 웃었다.
데뷔작인 '아가씨' 때는 촬영 현장에서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데 점차 나아지면서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고민과 의심은 여전히 많다고 했다.
"감독님이 OK를 너무 쉽게 하셔서 계속 의심이 갔어요.
충분해서인지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인지 저 혼자 계속 고민하고, 감독님한테 물어보면 다 좋다, 하고 싶은대로 해라 하시고. 저는 아직 저를 이끌어주셨으면 좋겠는데, 허허벌판에 놓여 고군분투하는 느낌이었죠. 저도 한 의심하는데 진선규 선배님도 의심이 많아요.
의심친구를 만나서 같이 고민을 많이 했죠."
연극 무대를 거쳐 20대 후반의 나이에 '아가씨'로 강렬하게 데뷔한 이후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채워오고 있는 그는 작품을 고를 때 "일단 시나리오를 재밌게 봐야 하고, 그 안에서 내가 맡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한다"고 했다.
"주체적으로 자기의 말을 하는지 많이 봐요.
이건 좋고, 이건 별로고, 이건 걱정되고 하면서 고민도 되게 많이 하는데 끝에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이 끌리는 것을 선택해요.
"
함께 했던 감독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특유의 털털하고 넉살 좋은 말투로 당부의 말도 남겼다.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시는 동안 작품 많이많이 하시고, 외국 작품 말고 한국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