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OTT 매출이 극장 매출 넘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도
코로나19 탓에 붐비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영화관에 모처럼 긴 줄이 늘어섰다. 지난 1월 27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굿즈(기획상품)’ 구입과 함께 현장 관람을 즐기려는 발걸음을 이끌어냈다. 개봉 첫날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2위에 머물던 흥행도 지난 3일 5만1977명, 누적관객 27만9397명을 동원하며 1위까지 올랐다. 1위를 내주고 2위로 내려온 개봉작 역시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이라는 점을 보면 위기의 극장가를 애니메이션 2편이 근근이 먹여 살리고 있는 모양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긴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기대작 개봉을 미루는 영화계 분위기 때문에 그러잖아도 썰렁해진 영화관은 관객들을 불러모을 작품들을 걸기 어려웠다. 그나마 두 애니메이션 영화가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내진 않을까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미 진행된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위기는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영화관 산업과 무관할 수 없는 영화 제작 현장 역시 팬데믹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코로나19가 오기 직전 <기생충>의 영광만을 되새기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영화관의 불투명한 미래
“이제 문 닫을 예정이라 말하는 거지만, 코로나19가 끝나도 회복이 안 될 거라 판단했다.” 한 멀티플렉스 프랜차이즈의 위탁가맹점 대표는 한국의 영화산업 전체와는 달리 ‘영화관업’만 놓고 보면 이전부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대표적인 OTT 시장의 확장은 물론이고, 일부 지역에서 특히 극심한 상영관 포화상태 등의 이유가 겹쳐 여러 차례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봤다. “흥행 대작이 나오면 직영이건 위탁이건 가리지 않고 그 영화만 틀어대니까 결국 경쟁이 안 되는 오래된 위탁점 위주로 적자를 만회하기 어려운 사정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추가 자본을 이끌어낼 여력이 부족한 일부 위탁점의 사례만으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위탁점 업주나 본사 관계자들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위기의 근본 원인은 피할 수 없는 코로나19 때문이다. 그럼에도 향후 산업이 회복될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이 애매하다.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업체 관계자는 “3대 멀티플렉스 모두 영화만 상영해선 사람이 안 오니까 다양한 이벤트를 하지 않나”며 “일단 현시점에서는 그게 발버둥이 아니고 뭐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서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이 와야 영화관에도 가려는 생각이 들 것이고, 그때까지는 사람 많은 곳을 피하려는 심리가 한동안 강하지 않겠느냐고도 말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한 영화관은 말마따나 영화만 상영하는 대신 상영관을 다양하게 변주해 개방하거나 스크린에 올리는 콘텐츠를 보다 다각화하는 해법들을 내놓고 있다. 비록 궁여지책일지라도 생존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CGV는 전국 34개 지점에서 콘솔 게임용 스크린을 빌려주는 행사인 ‘아지트엑스’를 진행하며 대형 스크린을 활용한 게임 체험을 이끌고 있다. 예매한 이용자들이 사전에 원하는 게임기만 준비해가면 최대 4명까지 2시간 동안 크고 선명한 게임영상을 보며 다채널 음향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수도권 4개 지점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행한 뒤 반응이 좋아 점차 지점수를 늘렸다.
CGV는 이외에도 스탠드업 코미디쇼와 시 낭독회, 북토크 등 다양한 문화와 결합한 대관행사를 열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도 모색 중이다. 메가박스 역시 가수 송가인의 첫 단독 콘서트 실황 및 인터뷰 영상을 개봉하는 등 충성도 높은 특정 팬덤을 목표로 영화관에 불러들이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롯데시네마도 지난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경기를 생중계하며 직접 경기장에 갈 수 없던 야구팬들을 모아 공동응원하는 자리를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한 바 있다.
스크린을 게임용으로 대여 사업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영화산업 전반이 코로나19라는 분기점을 맞아 재편될 것이란 관측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미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부터 전 세계 OTT 시장 매출은 오프라인 극장 시장 매출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 드러난 성적표를 봐도 지난해 OTT 시장 매출은 582억달러(약 64조2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없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의 2020년 극장산업 매출 규모가 491억달러(약 59조4231억원)였던 점에 비하면 두 분야 간 역전이 나타난 것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아예 극장들이 문을 열지도 못한 기간이 상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격차는 더욱 컸을 가능성이 높다.
TV방송 대신 OTT로 이동하는 ‘코드커팅’ 현상에 이어 OTT를 통한 미디어 환경에만 익숙해진 ‘코드네버’ 세대가 등장하는 상황은 영화관뿐만 아니라 영화산업 전반의 변화를 예정하고 있다. 2017년 5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칸영화제에서는 최초로 OTT 배급 작품으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야유를 받았을 때와는 상반되는 상황이다. 당시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는 건 엄청난 모순”이라는 말로 <옥자>를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을 밝힐 정도였다.
당시의 흐름과는 180도 다른 평가가 지난해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2020년 최고의 영화’ 목록에서 나타났다. 선정된 영화 10편 중 4편이 넷플릭스 영화였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규제도 약한데다 제작비를 충분히 지원받는 대형 OTT 업체의 오리지널 영화에 영화계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고 이 변화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OTT 영화의 수준이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화면으로 관람하는 경우를 상정하기 때문에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서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반대로 대형 스크린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화려한 영상과 입체적인 음향으로 승부하는 영화에만 특화되면서 국내 영화제작 현장과 다른 길을 걷게 될 가능성도 크다. 규모와 제작비만으로는 경쟁하지 못하는 국내 영화판의 현실 때문에 OTT 업계의 목소리만 점차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광래 J&C미디어그룹 대표는 “월정액을 내고 구독하는 OTT 방식은 판권사가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영화당 평균 100원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콘텐츠가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구조”라며 “극장과 OTT가 상생하기 위해선 월정액 구독 콘텐츠로 풀리기 전까지 최소 1년의 유예기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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