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하면 그동안의 공이 수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잘하는 것 못지않게 잘못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작금의 언론은 오보를 줄이려는 노력을 포기한 듯해 참으로 우려스럽다.
인터넷이 기사 유통의 기본 경로가 되면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이 오타이다. 기사에 오타 하나 있는 게 대수냐고 반문하는 언론인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여하튼 오타 기사에는 기자의 수준을 의심하는 댓글이 달린다. 언론의 신뢰를 갉아 먹는 하나의 요인이다. 그런데 하루 이상이 지나도 그 오타를 수정하지 않는다. 교열기자가 초긴장하여 오타·비문을 잡아내고, 신문이 국어 교과서라는 불리던 과거의 영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타·비문이 수시로 나오는 기사를 보면서 수용자가 언론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오타는 의도적인 것은 아닐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파성과 상업성에 따른 의도적 왜곡이다. 언론은, 특히 신문은 경향성을 인정받는 매체로서 정치적 관점을 가질 수 있고, 기업으로서 수입이 중요한 요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론이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받는 것과 정파적 관점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라 해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다. 요즘 언론을 비하하는 풍조가 만연해서 ‘언론’ 자체의 존재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못 우려스럽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언론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론의 오보는 줄지 않는다.
이름도 생소한 인터넷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력한 전국 일간지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뉴욕 사교계 흔든 가짜 상속녀… 가석방 뒤 진짜 돈방석 앉을 판’. 한 일간지의 제목이다. 유력한 가문의 상속녀 행세를 하던 여성이 사기 대출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야기를 다루는 조건으로 넷플릭스로부터 32만달러를 받기로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사는 본문에서 이 액수보다 더 많은 돈을 피해배상금, 벌금, 변호사 수임료 등으로 지불해야 해서 실제로 수중에 들어올 돈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전형적인 낚시성 기사다. 클릭 수를 올렸을지 모르지만 신문 이미지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다른 언론은 예외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 비평에 따르면 한 일간지 제목이 ‘이재명이 전광훈 살렸다’였다고 한다. 이재명 지사 대법원 선고에 인용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숨 쉴 공간’ 논리가 전광훈 목사 건에도 적용됐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본문에는 이 논리가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유래했고, 한국 대법원에서도 2011년부터 차용했다고 적혀 있다. 전형적인 낚시성 제목이다. 상업적 이유에 덧붙여 정치적 의도도 개입했다고 의심해볼 만하다.
‘“명절 선물도 정치적이냐” 소리도 들은 文선물 수취인 보니’.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그런데 기사 본문은 고정 명단 외에 코로나19 방역에 종사하는 사람들, 수해 현장 복구에 관여한 사람들 등이 그때 상황에 따라 바뀌었을 뿐이라는 점에 기사 대부분을 할애했다. 단지 2017년 추석에 12·12, 5·18 등으로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제외했을 때 명절 선물도 정치적이냐는 비판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사실 좋은 기사, 좋은 프로그램도 많다. 그런데 왜 언론 전반의 신뢰도가 계속 하락할까?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국가 중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계속 꼴찌다. 정치적으로 크게 논란이 됐던 사건에서 보인 언론의 왜곡보도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오보가 언론 신뢰를 갉아 먹는다. 이제 좋은 언론, 좋은 언론인의 개별적인 활동만으로 회복될 수 없다. 오보·왜곡보도를 줄이려는 언론계의 노력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