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디즈니 36년 로드맵, K웹툰 세계정복 절반쯤 왔다”
[비즈 人사이드]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사원으로 입사해 대표 되기.
네이버웹툰 김준구(44) 대표는 누구나 꿈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뤄낸 인물이다. 단지 ‘만화가 좋아서’ 네이버 만화사업의 1호 사원이 된 그는 ‘K웹툰’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했다. 네이버웹툰의 지난해 결제액은 8200억원에 이른다. 편당 100~300원인 웹툰·웹소설로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었다. 지난달에는 네이버가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인 캐나다 왓패드를 약 6억달러(약 6624억원)에 인수하며 이용자 1억6200만명(네이버웹툰 7200만명·왓패드9000만명)의 거대 콘텐츠 왕국을 완성했다. 네이버웹툰은 전 세계 100여국에서 9개 언어로 서비스된다.
◇“총 36년 계획의 중간 지났다”
지난 8일 성남 크래프톤타워에서 만난 김 대표는 “아시아의 디즈니를 만들겠다며 2004년 세운 3단계 계획의 중간 지점을 막 지났다”고 했다. 그는 “처음 웹툰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작가들이 경험이 전혀 없는 네이버를 믿지 않았다”면서 “12년씩 3단계, 총 36년에 걸친 장기 로드맵을 보여주며 이들을 설득했는데 어느새 상당 부분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첫 단계는 웹툰을 돈이 되는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모두들 만화는 공짜라고 여겼다. 김 대표는 연재되는 웹툰을 공짜로 보여주는 틀을 유지하면서 후속편 미리 보기를 유료화했다. 웹툰에 붙는 인터넷 광고 수익도 작가들에게 나눠줬다. 작가 발굴을 위해 누구나 자기 만화를 공개할 수 있는 ‘도전 만화’ 시스템도 도입했다. 김 대표는 “도전 만화에서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 ‘노블레스’ 손제호·이광수 작가, ‘여신강림’ 야옹이 작가 등이 탄생했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2단계는 ‘규모의 경제’를 위해 세계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프랑스·일본 등 100국에 네이버웹툰을 출시했다. 미리 보기 유료화, 도전 만화 등 한국에서 테스트를 마친 사업 모델을 해외시장에도 적용했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만 월간 사용자 1000만명을 넘어섰고, 구글플레이 만화앱 수익 1위를 유지하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왓패드 인수는 ‘아시아의 디즈니’를 완성하는 3단계로 가기 위한 김 대표의 승부수다. 그는 “디즈니의 강점은 마블·스타워즈 같은 강력한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콘텐츠를 TV·영화관·인터넷 동영상 등 다양한 플랫폼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왓패드와 네이버웹툰의 결합은 네이버를 디즈니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기업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웹소설이 웹툰이 되고, 웹툰이 애니메이션·드라마·영화로 만들어지는 화수분 같은 콘텐츠 플랫폼이 목표다. 그는 이미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영화로 만들어져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된 ‘스위트홈’은 전 세계 2200만명이 시청했다. 현재 영화·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는 웹툰이 77편이다.
◇”한국 만화가 망해서 K웹툰이 탄생했다”
김 대표는 “역설적이게도 (오프라인 중심의) 한국 만화 산업이 철저히 망가졌기 때문에 K웹툰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만화는 주간지까지 사라질 정도로 피폐했다. 이 때문에 기존 시장에 미련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디지털 시장을 겨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빠른 전개, PC·모바일의 스크롤에 최적화된 그림체와 컷 크기 같은 K웹툰의 핵심 경쟁력이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망가’로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은 오히려 탄탄한 출판 시장 때문에 인터넷으로의 전환이 더뎠다”면서 “그 사이 한국이 플랫폼을 장악한 것”이라고 했다.
만화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네이버웹툰 작가의 평균 연수익은 3억원에 이르고, 톱클래스 작가의 경우 100억원씩 가져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이 흥행하면서 원작 웹소설이 다시 수퍼 히트작이 되는 역주행도 흔하다. 김 대표는 “한 웹소설 작가는 작년 여름 한 달 만에 16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만화 마니아인 김 대표가 느끼는 웹툰의 가장 큰 매력은 뭘까. 그는 ‘진입 장벽이 낮은 것'이라고 답했다. “영화나 게임을 만들려면 수백억을 쏟아부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웹툰은 작가 본인의 아이디어와 펜만 있으면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우리는 무궁무진한 얘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좀 더 물어봤습니다
- 지독한 만화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어릴 때 시골을 가거나 하면 기차나 버스 안에서 어머니가 만화책을 보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던게 시작인거 같다. 만화책은 3질씩 사서 하나는 소장용, 하나는 독서용, 하나는 대여용으로 구분해놓기도 했다. 집에 있는 건 1만권까지는 세어봤는데 그후로는 안세어본지 꽤 된 것 같다.”
- 어떻게 네이버웹툰을 맡게 됐나.
“2004년 네이버에서 개발자로 병역특례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출판만화를 스캔해서 인터넷으로 보여주는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길래 손들고 지원했다. 어차피 병역특례가 끝나면 학교(서울대 응용화학부)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막막했었던 것 같다. 하루 방문자가 8000명~1만명 정도였다.”
- 네이버웹툰 사업의 성공을 언제 확신했나.
“두번의 사건이 있었다. 2005년 ‘입시 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라는 웹툰에 댓글이 100개 달렸다. 다들 난리가 났다. 그때 ‘아 이 사업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웹툰에 댓글이 수천~수만개 달리는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는 댓글이 달리기만 하면 좋은 시절이었다. 그 다음은 2013년에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작가와 팬의 만남’을 주최했을 때다. 베를린 같은 독일 지역은 물론 우크라이나, 영국에서 팬들이 몰려들었다. 세계에서도 성공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 작가들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만화 시장이 너무 좋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일부 작가들은 수익을 내지 못해 전업 작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이버웹툰 초기 히트작인 ‘정글고등학교'의 김규삼 작가 같은 경우는 만화를 접고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유머코드가 디지털과 맞는 사람을 찾으려 노력했다.(당시 김준구 대표를 겪은 작가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웹툰에 ‘마감을 독촉하는 김 대리·김 과장’을 등장시켰다.) 도전만화 코너를 도입하고 작가들을 대거 발굴하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됐다.”
- ‘K-웹툰’의 인기를 해외에서 실감하나.
“웹툰은 콘텐츠 천국인 미국이나 망가 왕국인 일본에서도 전혀 새로운 시장이다. 아직 웹툰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못 믿는 사람도 많다. 특히 저작권을 작가가 갖도록 하는 네이버웹툰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어린 웹툰 작가와 계약을 하고 저작권도 주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사기라며 말리는 일도 있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도 자주 느낀다. 미(美)의 기준이 변했다고 할까. 야옹이 작가의 ‘여신강림(외국 서비스명 True beauty)’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우리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해외에서도 똑같이 예쁘다고 느끼더라. 전세계에서 동시에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모바일 시대의 확산 덕이라고 생각한다.”
- 2004년 처음 시작할때와 비교하면 만화의 위상이 얼마나 변했나.
“웹툰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던 부모들이 자녀가 그린 웹툰이 새겨진 옷을 입고 친구들을 만나 자랑할 정도라고 하더라. 돈을 많이 버는 작가들이 생기니 웹툰 작가가 워너비(되고 싶은) 직업이 되기도 했고.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하는 건 마치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인식도 생겼다.”
- 웹툰처럼 트렌디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세대 차이가 있나.
“요즘 편집자나 직원들은 확실히 다르긴하다. 우리(X세대)는 출판 만화를 거쳐 웹툰을 접하게 된 세대이다. 하지만 지금 들어오는 세대는 아예 웹툰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화 역사에 기념비적인 작품들도 잘 모른다. 슬램덩크를 보지 않았다는 직원들도 많다. 확실히 웹툰세대로 태어난 직원들이 더 감각적이고 트렌드를 빨리 잡는 것 같다.”
- 6억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왓패드를 인수했다.
“코로나 때문에 캐나다에 가보지도 못하고 계약을 했다. 캐나다가 입국할 때 격리해야되는 문제도 있고, 또 귀국하면 격리를 해야하니까.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우리가 세계적인 사기극에 당하는게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사실 왓패드를 지켜본지 아주 오래됐다. 네이버웹툰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회사가 투자한 것이다.”
- 덕업일치(좋아하는 것과 직업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유일한 취미인 잃어버리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일과 취미를 구분하려 애쓰고 있다. 회사에서는 내 주관이나 선호를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적으로 만화를 가리지 않고 보려고 노력한다. 집에 가서는 정말 좋아하는 만화만 골라본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차피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만화를 보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