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낳은 복수... 무심코 하는 게 가장 무섭다
▲ <레드 닷> 포스터 ⓒ 넷플릭스
'복수는 식혀서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 영화 <킬 빌>을 통해 유명해진 이 옛 속담은 복수는 천천히 하는 게 좋다는 의미를 지닌다. 복수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고 선명해진다.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의 '와신상담(臥薪嘗膽)'처럼 복수는 고통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해주는 혹독한 과정이다.
<레드 닷>은 설원을 배경으로 이런 차가운 복수를 보여주는 스웨덴 영화다. 주인공 다비드는 오랜 기간 끝에 공대를 졸업하게 된다. 졸업식에 참석한 연인 나디아를 위해 분위기 있는 프로포즈를 선보이는 다비드.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이제는 의사를 준비하는 나디아를 위해 다비드가 헌신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막상 부부가 되고 나니 쉽지 않다. 다비드는 직장에 다니다 보니 휴일마다 쉬고 싶어 하고, 나디아는 집안일에 부담을 느낀다. 여기에 임신까지 하게 되자 막연한 미래에 불안을 느낀다.
▲ <레드 닷> 스틸컷 ⓒ 김준모
나디아가 힘들어 하는 걸 알게 된 다비드는 지친 일상을 위해 둘 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자연 속에서 함께 눈 위를 걷고 텐트 안에서 오로라도 보고 하는 로맨틱한 시간을 준비한 것. 여행을 떠나던 길에 들른 주유소에서 사냥꾼 형제를 만난 다비드는 그들의 인상과 태도에 불쾌함을 느낀다. 주유소를 빠져나가던 중 그들의 차를 실수로 친 다비드는 연락하자는 나디아의 말을 무시하고 크게 티가 안 난다며 장소를 떠난다.
숙소로 도착한 두 사람. 그곳에서 다비드는 다시 사냥꾼 형제를 보게 된다. 설마 하는 의심은 현실이 된다. 부부의 차가 긁혀 있고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문구까지 써 놓은 것. 이에 분노한 나디아는 사냥꾼 형제의 차도 똑같이 긁고 도망친다. 불안도 잠시. 둘 만의 캠핑을 즐기는 커플은 행복에 젖어든다. 설원의 텐트에서 오로라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그들의 텐트 안으로 '레드 닷'이 들어온 걸 발견한다.
레드 닷은 저격총의 붉은 레이저를 말한다. 이 레이저가 나타난 순간 작품은 급격하게 스릴러의 구조를 취하게 된다. 커플은 누군가의 위협을 받게 되고, 숲으로 도망친다. 추위 속에서 밤새 벌벌 떤 두 사람은 텐트로 돌아와 그들의 강아지가 죽은 걸 발견하게 된다. 이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사냥꾼 형제다. 산에 대해 잘 아는 그들이 자신들을 노린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섬뜩한 공포를 느낀다.
▲ <레드 닷> 스틸컷 ⓒ 김준모
작품은 온도차를 통해 스릴러의 질감을 가져온다. 배경이 되는 설원은 새하얀 눈과 벌벌 떠는 두 주인공의 모습으로 차가운 느낌을 준다. 이 감촉은 차갑게 식은 복수를 보여준다. 배경을 통해 시각적으로 복수를 표현한다. 이 복수의 감정을 피해 도망치는 다비드와 나디아는 뜨거운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은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뱃속에서 느껴지는 태동처럼 쿵쿵 뛰는 심장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청각적으로 표현한다.
시각과 청각에 있어 인상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만큼 전개에 있어서도 스릴러의 공식을 모범적으로 따른다. 스릴러 영화의 전개적인 묘미가 서스펜스라면 극적인 재미는 반전이다. 이 작품은 결말부에 이르기 전까지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멀리서 레이저를 통해 부부를 위협하고 총을 쏘기만 할 뿐, 상대는 절대 접근전을 택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과연 범인이 정말 사냥꾼 형제인가'라는 의문을 지니게 된다.
▲ <레드 닷> 스틸컷 ⓒ 김준모
이런 의심을 유발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로 모든 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린다. 도입부에 등장한 나디아가 마음을 털어놓는 친절한 이웃 토마스, 유색인종인 나디아를 혐오하는 시선으로 바라본 숙소 주인의 누나, 부부에게 친절한 숙소 주인까지. 인물 하나하나에 의심을 지니게 만든다.
이런 설정은 드라마를 최소화 하며 85분이란 짧은 런닝타임 동안 속도감 있게 극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정석적인 킬링 타임 구성의 스릴러인 만큼 특별함을 찾기 힘들다는 점은 단점이다. 다만 그만큼 장르적인 매력이 강하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왼편 마지막 집>처럼 고전 복수 스릴러가 지닌 단순하면서도 잔혹한 복수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겨울처럼 차갑게 식은 복수를 맛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