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SF '승리호'가 거둔 절반의 승리
21.02.14 11:47최종업데이트21.02.14 11:47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 포스터. ⓒ 넷플릭스
코로나 19 판데믹이 시작된 지도 1년이 훌쩍 지나 2021년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 2020년 영화계를 돌이켜 보면, '황폐'라는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거의 매년 1000만 영화들을 양산하며 역대 최고의 관객몰이를 경신시키더니, 한순간에 역대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게 된 것이다. 단적으로, 2020년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 <남산의 부장들>도 채 500만 명도 동원하지 못했다.
2020년을 건너 뛰어 거슬러 올라간 2019년, 2020년에 우리를 찾아와 영화를 보고 즐기는 행복을 한껏 선사할 거라고 예상해 마지 않았던 기대작들 태반이 지금까지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제 개봉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중 <승리호>는 자타공인 최대 기대작이었는데, 2020년 여름에 1000만 관객 동원은 따놓은 당상의 텐트풀 영화로 예정했다가 추석 시즌으로 미뤄졌었고 다시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결국 넷플릭스와 손잡고 해를 넘겨 설날 시즌에 맞춰 공개되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 SF'라는 타이틀과 함께, 영화 <늑대소년> 이후 실로 오랜만에 함께하게 된 조성희 감독과 송중기 배우, 그리고 김태리, 유해진, 진선규, 리처드 아미티지 등이 합세한 궁극의 캐스팅까지. <승리호>는 당최 기대를 하지 않을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제는, 다분히 극장 스크린에 안성맞춤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졌을 영화라는 점. 과연, 안방극장에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할리우드 역사를 함께 했던 수많은 우주 SF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2092년 병들고 황폐해진 지구엔 모든 생물이 사라지고 사람들만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주 개발 기업 UTS는 지구를 피해 우주의 위성 궤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세워 지구의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선택된 5%의 시민들만이 살 수 있었고 나머지 95%의 비시민들은 지구에 남아 힘겹게 살아가거나 우주에서 역시 힘겹게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는 이들이 대표적인 우주 노동자인데, 한국의 '승리호'가 타국 청소선들을 제치고 월등한 실력을 자랑한다.
승리호엔 전 UTS 소속의 천재적인 실력의 소유자들인 선장 장현숙(장선장), 조종사 김태호가 타고 있고 몇 년 전까지 지구에서 마약 밀매조직 수괴이자 갱단 두목이었던 기관사 박경수(타이거 박)와 군사용 로봇으로 설계되었다가 장선장과의 인연으로 탑승하게 된 작살잡이(?) 업동이도 타고 있다. 이중 특히 김태호에겐 사연이 있는데, UTS 기동대장으로 있던 당시 뜻밖의 정으로 데려다 키우게 된 '딸' 순이를 순간의 실수로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다. 태호는 순이의 시신이라도 회수하고자 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만 늘어나던 그들 앞에 어느 날 강꽃님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나타나는데, 언론지상에서 외형만 인간이지 고성능 수소폭탄이니 조심하라고 떠드는 도로시였다. 처음엔 도망다니며 난리를 치던 승리호 선원들은 문득 큰돈을 만질 절호의 기회임을 간파한다. 결국 도로시를 빼돌렸다고 알려진 테러 단체 검은여우단과 조우해 큰돈으로 맞바꾸기로 한다. 하지만, UTS 수장인 설리반 또한 본인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고자 꽃님이를 찾고 있다. 과연, 승리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스토리의 약점
영화 <승리호>는 크게 두 측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완벽히 갈리다시피 할 텐데, 내면이라고 할 수 있을 '이야기'와 외형이라고 할 수 있는 'CG'가 그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약점이 많다. 동시에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훌륭한 그래픽이었다고 감히 확신할 만하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또 대하는 방식이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재밌게 즐기며 환호하든, 재미없게 보며 욕을 하든 말이다.
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이 주된 소재가 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차용한 만큼 세계관은 굉장하다. UTS라는 초국적 초거대의 온리 원 우주 개발 기업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독식하고 있는 와중에 도로시라는 지구 파멸이 가능한 나노봇 인간을 둘러싼 모험과 전쟁이 펼쳐지니 말이다. 그런데, 큰 이야기를 큰 스케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자잘한 이야기들로 잽을 날리듯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모양새가 그리 와닿지만은 않았다.
계급, 환경, 다양성 등 수많은 영화를 통해 진지하고 크게 다뤄졌을 문제의 메시지를 단타로 처리하며 모양만 갖추려고 했다는 이미지가 짙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목이기도 할 정도로 크게 부각되어야 마땅할 청소선 '승리호'만의 서사가 부족한 점이나 영화의 유일한 빌런이라고 할 만한 UTS 수장 설리반만의 서사가 부족한 점, 무엇보다 극을 이끄는 네 캐릭터가 꽃님이와의 조우 이후 탄탄하게 쌓아올려야 하는 연대의 서사가 부족했다는 점 등이 크게 다가왔다.
빼어난 그래픽
주지했듯 CG라는 측면만 보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제작비가 24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정도의 퀄리티를 할리우드에서 구현하려면 2400억 원의 제작비는 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주연 배우의 높은 출연비를 포함 우리나라보다 대체적으로 높을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단순히 1:10으로 무 자르듯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월등한 그래픽 기술을 보유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승리호>는 그 집약체와 다름 아니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핵심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오밀조밀 유기적이고 납득이 가면서도 안타깝기까지 한 모험 활극에 있을 텐데, 그만큼 핵심인 게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 식별하기 힘들 복잡한 전투 장면이다. 어수선한 듯 꽉 차 보이는 화려하고 웅중한 우주 공간 전투를 이 영화가 완벽에 가깝게 보여 줬다. <스타워즈>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기조 상으로 다분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연상되었다. '느낌'만으로 <승리호>를 따라가다 보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다. 처음으로 가는 길이 제대로 닦여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그럼에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 역사에 남을 게 분명하다. 큰 시도였고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비록 반쪽의 성공을 이룩한 듯보이지만 말이다.
좀더 큰 서사의 일환으로 보면, 한국 우주 SF 영화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보는 게 맞다고 본다. <승리호>를 두고, 기술력은 충분하고 이제 상상력만 충족하면 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기술력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만 상상력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충분하지 못한 기술력 때문에 상상력이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 기술력이 충분해졌다는 게 명약관화하니 상상력이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고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