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 대표 “아이패드 소개하듯 대동여지도의 혁신 풀었죠”
[출처: 중앙일보] 박웅현 대표 “아이패드 소개하듯 대동여지도의 혁신 풀었죠”
“이전까지의 지도와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지도를 소개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마치 아이패드 다루듯 손으로 지도 화면을 쓰윽 넘긴다. 밀착 촬영한 지도엔 10리마다 눈금 축적이 있고 다양한 산의 형태·높이와 함께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과 아닌 물길이 구분돼 있다. “펼치면 전체 높이 6.6m의 전국 지도, 접으면 노트 크기의 도별 지도. 분리와 합체, 휴대가 자유로운 놀라운 지도”라면서 광고하는 상품은 대동여지도.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1804~1866 추정)가 1861년(철종 12) 편찬·간행한 절첩식 조선전도 맞다.
'생각이 에너지다' 카피 쓴 광고계의 거장
문화유산채널과 손잡고 문화재 12편 광고
"우리 유산의 가치를 아는지, 되묻고 싶어"
‘대동여지도가 이랬나’ 싶은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화면에 흐르는 문구 ‘우리는 우리를 아는가’. 단순하되 묵직하게 가슴을 치는 광고카피에서 ‘생각이 에너지다’(SK이노베이션) ‘진심이 짓는다’(대림산업)와 같은 DNA를 느꼈다면 제대로 봤다. 대동여지도를 포함해 수원화성, 첨성대, 법화경 보탑도, 종묘, 조선왕조의궤 등 총 12편의 ‘문화유산 광고’를 총지휘한 주인공은 광고계의 거장 박웅현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CCO).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한 그가 “우리 유산을 고리타분하지 않게, 현대적으로 보여주려” 팔을 걷었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과 협력해 사실상 ‘재능 기부’에 가깝게 6개월여 매달렸다.
다른 것끼리 '이종결합' 때 창조 일어나
“5년전쯤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를 찍은 준초이(최명준) 작가의 사진에 홀딱 반해서 혼자서 1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봤다. ‘당신은 백제를 아는가’라는 타이틀도 붙이고. 그걸 확대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문화유산채널 측과 뜻이 맞아 떨어졌다. 유물 후보 30~40건을 놓고 젊은 스태프들과 난상토론을 거쳐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들로만 추렸다.”
19세기 지도의 혁신이었던 대동여지도를 오늘날 혁신의 대명사인 애플 광고처럼 소개하자는 발상은 그렇게 나왔다. 애플 국내 광고는 박 대표가 속한 TBWA코리아가 맡고 있다. “패러디니까 목소리도 (오리지널 광고의) 배철수씨 대신 배칠수씨로 섭외했다”고 했다. 밀레니얼-Z세대(MZ세대)가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전달 방식에 초점을 뒀다. ‘조선왕조의궤’는 어린이 목소리로, 마치 그림일기를 살펴보는 듯한 시선으로 조명했다. “서로 다른 게 충돌하고 어울리는 이종결합에서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는 생각에서다.
BTS·기생충…우리 문화에 세계가 집중
“광고에서 중요한 게 시대 문맥인데, 오천년 역사 동안 세계 중심이 돼 본 적 없던 나라가 지금은 ‘기생충’, BTS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 개·폐회식만 봐도, 내가 어릴 때 봤던 88올림픽 호돌이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나. 세계인들이 우리를 이채롭게 보는 게 아니라 우리 문화에 빠져서 함께 즐기고 있다. 우리 시대 책무는 주변의 보석들을 찾아서 ‘이게 이렇게 만든 거다’ 하고 알리는 거다. 서구 문화로 획일화되지 않게, 인류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화유산에 눈 뜬지는 오래 됐다. 첫손에 꼽는 계기는 1993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일기획 대리 시절 ‘그녀의 자전거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빈폴) 카피가 히트했을 즈음이었다. 서문의 첫 문장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를 읽는데, 글자가 벌떡벌떡 일어나는 것 같은 전율에 휩싸였다”고 했다. 누적판매 400만부를 넘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가 문자 세대를 위한 문화유산 해설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아는가’는 21세기 영상 세대 맞춤형이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가치를 알아야 한다. 법화경 보탑도 같은 건 나도 이번에 공부하고 알았다. 첨성대도 수학여행 때 본 게 전부가 아니더라”고 강조했다.
자극적인 것 아닌 '감동과 가치'가 오래 가
“객관적인 삶의 조건이 바뀌진 않아도, 인문적인 촉수가 있는 사람은 똑같은 출퇴근길에서도 행복을 음미할 줄 안다. 어깨에 내려앉은 낙엽에 고마워하는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 같은 시가 그렇듯. 내가 81학번인데, 나이 많음과 꼰대는 다르다. 나이와 관계없이 듣는 능력, 소통하는 기술을 닦아가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게 풍요롭게 사는 법 같다.”
‘우리는 우리를 아는가’는 지난 8일 수원 화성을 시작으로 4월26일 뜨거운 전언(유네스코 기록유산 모음)까지 순차적으로 문화유산채널과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다. 후속 시리즈 가능성에 대해선 “무형문화재 등 할 건 많지만, 일단 이번 12편의 호응을 봐야겠다”며 웃었다.
[숲속의새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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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박웅현 대표 “아이패드 소개하듯 대동여지도의 혁신 풀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