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개봉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는 강인한 어머니 장선장(김태리 분)을 필두로 하여, 대뜸 삼촌이 되어버린 타이거 박(진선규 분), 언니라는 말이 싫지 않은 업동이(유해진 분), 그리고 '아버지' 태호(송중기 분)까지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았지만 그 어떤 가족보다도 끈끈한, 모호하지만 확고한 가족 관계를 보여준다.
조성희 감독에게 있어 '아버지'는 불온하고 불완전한 세계다. 마치 우리가 발을 딛고 현실처럼. 그 세계는 자크 라캉의 '상상계'와도 같다. 실재라고 믿고 다가서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처럼, 세상의 일부분이 될 수록 자기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지양'되어야 할 과정이다.
지양되어야 할 아버지의 세상
▲ 승리호 ⓒ 넷플릭스
<승리호>에서 아버지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선 태호와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 분)의 관계가 '부자' 관계의 양상을 띤다. 설리반은 태호를 입양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린 태호를 '살상 무기'의 선봉에 세운다. <늑대 소년>이 순이의 세계에 맞서 늑대 소년을 만들고 버린 남성중심의 세계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듯, <늑대 소년>의 세계관은 <승리호>에서 설리반의 세계로 이어진다.
설리반은 오염된 지구의 '메시아'를 자처한다. 깨끗한 공기와 여유로운 생활이 보장된 지구와 달 사이의 우주 궤도에 만들어진 낙원을 통해 지구인들이 자신을 구세주라 여기도록 만든다. 하지만 설리반이 만든 '아버지'의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152세의 외모를 지탱하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이 필요하듯이.
그 아버지의 세계에 '입양'된 태호는 작전 과정에서 발견한 순이를 입양한다. 설리반이 태호를 입양하여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과 달리 태호는 순이의 '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태호는 설리반과 또 다른 면에서 '조건부적'이다. 순이로 인해 더는 살상을 할 수 없게 된 이후 태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탱해 주었던 UTS기동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되자 '아버지'로서의 삶도 방기한다.
어쩌면 때늦은 '순이'를 향한 그의 맹목적 애정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자 반성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순이', 도로시를 끝까지 거부하려 한다. 심지어 살아있는 도로시를, 꽃님이를 이용해 순이에게 가닿으려 한다. 그의 철지난 부성은 맹목적이지만 실체가 없다. 결국 자신이 붙잡고 있었던 '아버지로서의 허상'을 놓는 순간 태호는 진짜 '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태호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순이에서 도로시로 바통 터치 되듯, 도로시에게 '아버지'는 친아버지로부터 <승리호>로 바통 터치 된다. 도로시의 친아버지는 아이를 살리고자 과학적 도전을 택하고, 그로인해 아이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과학 문명'을 등에 업은 '아버지'의 숙명이다.
▲ 승리호 ⓒ 넷플릭스
한편 태호가 보다 직접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과 달리, <승리호>에는 '삼촌'도 있다. '업동이'가 배우 유해진의 모션 캡쳐 연기에 기반했음에도 '언니'라는 호칭과 함께 '이모'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반면,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분)은 도로시의 '삼촌'을 자처한다.
'삼촌' 타이거 박은 <승리호>의 가족 중 가장 '순수'하다. 살상 로봇일지도 모를 도로시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보호자를 처음 자처한 사람도 타이거 박이다. 그리고 UTS 기동대의 공격으로 위협에 빠진 승리호를, 도로시를 자신을 던져 구한 것도 그다.
이렇게 <승리호> 속 아버지들은 진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자신을 '지양'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왜곡된 아버지 설리반의 세상에 대한 '극복'이다. 태호가 집착했던, 하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순이'를 놓아야 도로시를 받아들일 수 있듯이, 타이거 박이 자신을 던져 꽃님이를 구하려 하듯이, 아버지는 이전의 자신을 지우고 버림으로써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갈 수 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게 주어진 '숙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