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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명절 수다, 낙이었는데... 공허해진 날 위로해준 '소녀' [랜선명절, 가족에게 권하고픈 OO] 넷플릭스 <빨간 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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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yamuchi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2.12 16:50 9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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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혹시 이 노래 기억나니? 너랑 나랑 어릴 때 즐겨보던 바로 그 만화영화 <빨간 머리 앤> 말이야. 너와 함께 이 만화 영화를 본 후 스케치북에 다이애나랑 앤의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어린 시절, 우린 티격태격하면서도 참 많은 걸 공유했었지. 매일 수다 떨며 일상을 나누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서로의 편이 되어줬던 우리가 만난 지 참 오래구나.
 
결혼 후 나는 대구에 너는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가 만나는 일은 연중행사가 되어버리고 말았지. 각자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처지라 한 번 보려면 정말 날 잡고 왕래해야 했으니 말이야. 다행인 건 우리가 자매인지라 명절 연휴 때 각자의 시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명절 당일 저녁이면 결혼 전 그랬듯 외가에 모여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거였어. 언제부턴가 명절 연휴가 달콤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연휴가 좋았던 건 너와 만나 수다를 떨 수 있었기 때문이었단다.
 
난 태어나서 자란 서울을 떠나 대구에 사는 데다 부모님마저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종종 나의 과거와 뿌리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단다. 그럴 때 나와 피를 나눈 유일한 사이인 네가 떠오르곤 했었어. 명절에 만나 너와 수다를 떠는 것으로 이런 공허함을 채우곤 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이런 시간을 가진 지도 너무 오래구나. 2020년 설엔 네가 시가에서 일찍 출발하지 못해 얼굴을 보지 못했고, 그 후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져서 이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야.
 
이번 설에도 얼굴 보긴 불가능한 상황이니 우리 모두 '집콕'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혹시 이번 연휴 때 <빨간 머리 앤> 한 번 봐보지 않을래? 예전 만화 버전 말고 캐나다에서 제작한 드라마 <빨간 머리 앤> 시리즈인데 넷플릭스에서 시즌3까지 볼 수 있단다.

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어릴 적 너와 함께 한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 특히, 시즌3는 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내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내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아 눈물을 훌쩍이면서 봤단다. 마치 우리의 성장과정을 대변하는 듯한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전화로라도 수다 한 번 떨어볼까?

다양성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우리의 이야기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시즌3 포스터

▲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시즌3 포스터 ⓒ 넷플릭스

 
시즌1은 우리가 어릴 적 봤던 그 만화 영화 속 앤의 이야기야. 그림으로만 보았던 초록지붕집과 아름다운 풍경이 정말로 눈 앞에 펼쳐진단다. 강직하고 절제된 삶을 평생 살아온 마릴라와 매슈 남매. 둘과는 너무나 반대의 성격을 가진 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들은 어릴 적 만화에서 봤던 원작 속 그 이야기 그대로란다. 다 아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배우들의 몸으로 재현된 만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고 때로는 아련하게 다가올 거야.
 
하지만 시즌2부터는 완전히 달라진단다. 추억 속 에피소드에 더해 편견과 다양성 존중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 시즌2에서 앤은 에이번리의 마을의 사람들과 보다 깊은 관계를 맺어가면서 편견 없는 태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늘 놀림을 당하는 콜을 앤은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콜이 자신의 '다름'을 수용할 수 있게 도와준단다. 콜은 앤의 공감과 존중으로 용기를 얻고, 조세핀 할머니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꿈을 펼쳐가게 돼.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흑인을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길버트의 모습도 너무나 멋졌고, 과감히 코르셋을 벗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스테이시 선생님의 등장은 참 반가웠단다. 2편은 이렇게, 약자의 입장에 처한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억압과 편견에 저항하는 태도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지를 잘 보여준단다.
 
다양한 사람들과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떠가는 앤의 모습은 안락했던 집을 떠나 우리 각자가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시간들을 떠올리게도 했단다.

나의 뿌리 찾기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려 애쓰는 에이번리 사람들

▲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려 애쓰는 에이번리 사람들 ⓒ 넷플릭스

   
특히, 이번 설에 너와 함께 나누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어지는 시즌3란다. 시즌3는 첫 에피소드부터 '연결과 뿌리'를 이야기해. 첫 장면에서 앤은 말을 타고 숲속을 거닐다 솔방울을 맺은 소나무를 발견하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해.

"이 숲의 모든 나무는 연결되어 있어. 인생에 그런 확신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진정한 소속감 말이야."

이후 앤은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부모의 흔적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단다.
 
이런 앤의 모습이 친정 식구들과 멀리 떨어져 대구에서 살면서 '연결감'을 그리워했던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 같았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원가족보다 시가와 더 교류가 잦은 편이잖니. 물론, 결혼해 내가 꾸린 가족, 새로 맞이한 시가도 나의 정체감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종종 과거와 현재의 내가 단절된 느낌이 늘 들곤 했었어. 때문에 자신의 뿌리가 되는 원가족을 그리워하는 앤의 마음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단다.
 
시즌3에서 앤은 부모의 흔적을 찾아 멀리 여행을 하는데, 아무런 정보를 찾지 못해 무척이나 괴로워하곤 한단다. 물론, 앤답게 그런 가운데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긴 하지. 난 이런 앤의 모습을 보고 네가 많이 떠올랐어. 앤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저토록 애쓰지만, 나는 너와 대화를 나누면 금세 나의 뿌리에 가 닿을 수 있으니 말이야.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너는 나의 어린시절,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거의 모든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면 지금 내 모습의 토대가 되어준 일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싶었어.
 
결혼 후 우리가 주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때는 명절 당일, 시가에 들렀다 외가에서 만났을 때였는데, 1년 넘게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게 너무나 아쉽기만 하단다. 수다스런 이모들과 함께 어릴 적 추억들을 나눌 때 느꼈던 그 행복감이 아마도 앤이 느끼고 싶어했던 '진정한 소속감' 아니었을까 싶어. 그 느낌을 올 설에도 맛보지 못한다니 속상하기까지 하더라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속상함을 앤이 달래주더구나. 시즌3에서 앤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끊임없이 '연결'을 이야기해. 길버트와 함께 살게 된 흑인 친구 배시는 사랑하는 아내 메리를 패혈증으로 잃게 되지. 하지만 메리는 죽은 후에도 계속 연결되어 있었어. 메리가 가꾼 정원의 식물들, 그녀만의 요리 레시피 등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지. 게다가 메리가 죽은 후 마을 사람들이 아기를 함께 돌보면서 서로 더 긴밀하게 연결된단다.
 
결국엔 앤도 초록지붕 집을 떠나게 돼(이건 원작에도 있는 내용이니 스포일러는 아니겠지?). 앤은 자신의 꿈을 위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지만, 메슈와 마릴라 곁을 떠나는 것을 매우 슬퍼한단다. 하지만 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후에도 이들은 서로의 안녕을 기원해주면서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마지막 부분이었어. 앤이 뿌리를 찾으면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했던 마릴라는 앤이 보다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때 행복하다는 걸 깨닫고 앤의 부모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나서지. 그리고 그 결과를 알려주려 앤의 숙소를 찾아가게 돼. 앤은 마침내 부모에 대해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을 더 수용하게 된단다(심지어 빨간 머리까지도 말이야). 이 때 앤과 마릴라, 매슈는 함께 앉아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세 사람이 온전하게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
  
마릴라는 앤이 자신의 뿌리를 찾도록 도와주고, 이를 통해 앤과 더 깊게 연결된다

▲ 마릴라는 앤이 자신의 뿌리를 찾도록 도와주고, 이를 통해 앤과 더 깊게 연결된다 ⓒ 넷플릭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깨달은 건, 결국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때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거였어. 메리가 죽은 후 사람들은 메리만의 독특함을 통해 연결되었고, 앤 역시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며 자기 자신을 지켜왔기 때문에 배타적이었던 에이번리 사람들과 진심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또한 자신의 뿌리를 찾으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 했기에 메슈와 마릴라와 더 온전하게 연결될 수 있었을 거야.
 
앤이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들은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과 내가 여전히 연결되어 있음을,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했단다. 또한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더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어. 그러고 보니 우리의 명절이야말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서로 연결되는 날 아니겠니? 하지만 지독한 가부장제 문화가 명절의 이런 의미를 퇴색시켜 버린 건 아닌가 싶어. 명절이 가부장 문화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나다움'의 근원인 뿌리를 확인하고 서로 연결되는 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단다.
 
'가부장 문화의 소산'과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이번 설 연휴. <빨간 머리 앤>을 통해 나다움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길, 그래서 우리가 보다 온전하게 연결될 수 있길 소망한단다.
 
P.S.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빨간 머리 앤> 예고편엔 이런 문구가 나와.
"가장 큰 모험은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어딘지 뭉클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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