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리가 깨져도 믿을 것인가, 메시아의 재림 [왓칭]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
모두가 무언가를 숭배한다
오랜만에 친지들과 마주한 명절 연휴라면, 섣불리 꺼내지 말아야 할 대화 주제가 ‘정치’와 ‘종교’다.
올해는 정부 방침에 따라 4인 이상 모일 수 없는 사상 초유(初有)의 설날.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백신 접종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인 ‘이스라엘’이 등장하는 매우 논쟁적인 정치·종교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한다.
홈랜드나 지정생존자처럼 국제 정세나 테러리즘을 다룬 시리즈물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메시아 또한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메시아가 재림한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Messiah)’는 ‘어느날 문득 세상에 신이 나타난다’는 설정으로 정치와 종교·문명의 충돌을 정면으로 건드린 문제작이다.
드라마는 한 편당 40~50분씩 모두 10편으로, ‘정주행’하는 데 5시간쯤 걸린다. 치열한 콘텐츠 시장에서 ‘메시아 재림’이라니, 작품을 선택한 넷플릭스의 용기가 놀랍다. 드라마는 쉽게 다루기 힘든 묵직한 소재들을 수제비 반죽처럼 한 솥에 숭덩숭덩 던져 넣고, 그럴싸하게 끓여낸다. 초반 1~2회 줄거리를 차근차근 쫓고 나면, 3회 이후부터 속도감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메시아는 공개 직후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로부터 일제히 항의를 받았지만, 콘텐츠 평점 사이트에선 시청자 열에 여덟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차피 뿔뿔이 흩어진 ‘언택트(untact·비대면)’ 명절, 이 대담한 정치·종교 스릴러로 연휴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신출귀몰, 이 남자 정체는?
#1.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시한폭탄 같은 삶을 사는 군중 앞에 기적을 말하는 사내가 나타난다. ‘IS 가 물러나고, 모래 폭풍도 사라진다’는 허무맹랑한 예언은 곧 현실이 되고,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난다.
추종자들은 남자를 ‘알마시히’(아랍어로 메시아라는 뜻)라 부르며, 이스라엘 국경까지 함께 진격한다. 남자는 국경을 넘다 체포되지만, 분신술 부린 듯 감쪽같이 탈출해 종적을 감춘다. 며칠 뒤 느닷 없이 이슬람·유대교·기독교의 ‘공동 성지’ 예루살렘 성전산에 출몰한 남자.
이곳에서 그는 총 맞은 아이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고, 이 모습을 찍은 스마트폰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세계로 확산한다. 연출된 쇼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본 것은 메시아의 재림인가, 사기꾼의 기망인가.
#2. 미 CIA(중앙정보국) 요원 에바 겔러는 CIA 중동 요원이었던 삼촌을 터키 폭탄 테러로 잃었고, 남편과도 사별했다. 사연 많은 그녀가 의지하는 절대 가치는 오직 CIA다. 사람 목숨을 다루는 CIA 업무는 성직(聖職)이며, 매일 따라야 할 교리(敎理)라고 믿는다.
에바에게 알마시히는 검거해야 할 잠재적 테러 분자일 뿐. 군중을 현혹하는 이 남자 배후에 러시아가 끼어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3. 예루살렘에서 기적을 부린 남자가 이번엔 무대를 미국 텍사스의 한 시골 동네로 옮긴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종교 대통합이라도 이루려는 걸까. 남자는 토네이도가 마을을 집어 삼킬 때, 낡은 개척교회 한 곳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예루살렘 메시아가 텍사스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SNS에 퍼지고, 전국에서 추종자들과 CNN 중계차까지 몰려온다.
아무도 찾지 않던 시골 동네는 시끌벅적한 락 페스티벌 현장처럼 변하고, 믿음이 무뎌졌던 시골 교회 목사는 남자를 앞세워 신(神)으로 떠받들기 시작한다. CIA 정보에 따르면 분명 이 남자의 기적 같은 동선(動線)에는 조력자가 존재했다. 대체 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대깨’가 될 것인가, 끝까지 의심할 것인가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의 정체를 속 시원하게 밝히지 않은 채, 추론 가능한 여러 단서들을 죽 늘어놓는다. 시청자는 ‘합리적 의심’을 거두지 않는 CIA 요원이 되어 남자가 사기꾼이나 무속인, 러시아 스파이가 아닌지 파헤치게 된다. 알마시히와 시청자 간에 벌어지는 ‘심리전’은 이 드라마의 백미다. 특히 중반 이후 워싱턴DC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남자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기적’을 여러차례 선보이는데, 나중엔 차라리 그가 구원자가 맞다고 믿어버리는 게 더 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남자는 CIA 요원에게도 이렇게 말해 요원을 흔들리게 만든다.
“모두가 뭔가를 숭배해요. 숭배의 대상만이 선택사항이죠. 누군가는 돈 앞에 무릎을 꿇고, 누군가는 권력, 지성을 숭배해요. 당신은 CIA 신봉자죠. 그 관념 하나에 모든 걸 바쳤고, 그 관념을 조ㅊ을수록 당신이야말로 고립됐어요. 밤에 자려고 누우면, 이제껏 포기한 모든 게 과연 그럴 만했나 싶죠.”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을 정치와 국가 시스템이 해결해주지 못할 때, 대중은 비과학적 우상(偶像)에 미혹(迷惑)되기 쉽다. 남자가 기적을 행할 때마다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이다.
결말은 열려 있다. 판단과 해석도 각자의 몫이다. ‘대가리’가 깨져도 그 분을 섬길 것인가, 이성의 끈을 붙잡고 끝까지 의심할 것인가. ‘종교화·성역화된 정치’를 마주한 우리에게 이 질문은 무겁게 다가온다.
개요 드라마 l 미국 l 40~50분·10편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논쟁적·도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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