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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막장’이라 적고 ‘마라맛’이라 읽는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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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2.11 10:57 1,20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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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이라 적고 ‘마라맛’이라 읽는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1 10:00

 

 

넷플릭스와 K막장 드라마의 기묘한 동거…시청자 시각 크게 변화


최근 들어 ‘막장의 대모’라 불리는 김순옥 작가와 임성한 작가가 나란히 드라마로 복귀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막장 드라마 논란이 거세지 않다. 심지어 ‘마라맛’이라며 이를 즐기는 시청자들도 나오고 있는데,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든 걸까. 

최근 시즌1을 끝낸 SBS 《펜트하우스》는 역시 김순옥 작가의 작품답게 시작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자극적인 전개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헤라팰리스라는 초고층 주상복합에 사는 이들과 그 자녀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 이 드라마는, 현대인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부동산과 교육 문제를 소재로 다뤘다. 물론 그 소재가 건드리는 관심과 기대가 분명했지만, 이보다 이 드라마는 김순옥 작가 특유의 불륜, 치정, 살인, 복수가 이어지는 자극의 세계에 더 집중했다. 매회 몰아치듯 사건들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마저 외면하는 천서진(김소연)의 패륜 장면이나 심수련(이지아)마저 배신하는 오윤희(유진)의 불륜, 그리고 아내마저 죽이는 주단태(엄기준)의 악마적인 모습까지. 이런 자극적인 상황들이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로 채워진 건, 여전히 막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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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SBS


‘마라맛 드라마’로 불리는 《펜트하우스》

하지만 《펜트하우스》 시즌1은 최고 시청률 28.8%(닐슨코리아)와 연일 높은 화제성을 기록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고, 막장이라는 지칭보다는 ‘마라맛’이라는 색다른 호칭을 얻었다. 마치 김순옥표 드라마는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며 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그 드라마의 성격은 과거랑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시청자 반응은 어째서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걸까. 물론 여전히 이러한 자극의 끝판으로 흘러가는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며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를 즐기는 시청자들도 생겨나게 됐다. 

여기에는 최근 몇 년간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해진 넷플릭스의 영향이 적지 않다. 사실 넷플릭스를 통해 전해진 해외의 많은 드라마는 소재나 표현 수위 등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극적인 작품이 적지 않다. 노출은 기본이고, 베드신 수위도 높으며, 폭력성도 우리에게는 ‘블러’ 처리를 해야 될 것 같은 장면들조차 적나라하게 보여주곤 한다. 그런데 그런 수위 높은 드라마들은 또한 완성도나 작품성도 높다. 그래서 우리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일종의 신세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우리네 드라마가 그간 건드리지 않았던 자극적인 세계들을 작품성까지 갖춘 완성도 높은 드라마 속에서 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니 《펜트하우스》 같은 (물론 완성도가 높다고 말할 순 없지만) 충분히 자극적인 드라마가 생각만큼 자극적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이는 만일 《펜트하우스》가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정도의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뭐 그리 놀라울까. 

 

실제로 김순옥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을 애초 넷플릭스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한 바 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오리지널 시즌제를 염두에 뒀다”고 한 것. 그만큼 현재의 드라마 작가들에게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갖는 의미는 새롭다는 걸 김순옥 작가가 상기시켜줬다. 그처럼 다양한 드라마가 포진한 플랫폼의 세계 속에서 그의 작품은 단순히 막장이 아닌 남미의 ‘텔레 노벨라’ 같은 부류의 한 작품처럼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피비(Phoebe)라는 새로운 예명으로 돌아온 임성한 작가의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도 그 상황이 유사하다. 워낙 ‘막장 드라마의 대가’로까지 이야기됐던 작가의 작품인지라, 시작부터 셀 것이라 추측했지만 이 드라마는 예상외로 담담한 전개를 보여줬다. 물론 불륜이라는 코드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게 일종의 ‘판 깔기’였다는 게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4회 엔딩에 이르러 유달리 남편 사랑이 깊은 줄로만 알았던 김동미(김보연)가 영화관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킨 남편 신기림(노주현)을 방치한 채 죽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이 드라마는 숨겼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이 드라마의 상상을 초월하는 불륜 관계를 의심하게 됐다. 동성애나 쌍둥이 설정 그리고 심지어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 아들이 아버지 후처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 섞인 추측과 달리 《결혼작사 이혼작곡》 역시 최고 시청률 8.8%를 기록하며 TV조선 사상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이렇게 된 건 TV조선이라는 보수적인 중장년 시청층을 가진 플랫폼에, 이 드라마가 알맞은 소재와 자극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의 소재를 가져온 게 그것이고, 그 틀을 뒤집는 불륜이라는 자극을 더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역시 티빙이나 웨이브가 아닌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가진 특성이 이 작품이 가진 자극성을 충분히 받아주고도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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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넷플릭스 웹드라마 《브리저튼》의 한 장면,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한 장면ⓒ넷플릭스·TV조선


지상파 이미지 가진 플랫폼들에게 안겨진 고민 

이처럼 넷플릭스는 우리네 안방에서도 전 세계의 드라마들을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눈 또한 바꿔놓고 있다. 김순옥 작가나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들이 막장이라 불리기보다 ‘마라맛’이라고 불리며 특정 취향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건, 다분히 넷플릭스의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만든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영향은 드라마의 자극성에만 미친 게 아니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tvN 《루카: 더 비기닝》이나 OCN 《경이로운 소문》 같은 작품은 물론이고 앞으로 방영될 예정인 tvN 《빈센조》 《마우스》, OCN 《타임즈》, JTBC 《괴물》 《시지프스》 같은 색다른 장르물에도 여지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작비가 대폭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이들 작품은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 콘텐츠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글로벌한 장르물의 영역까지 넓혀 나가고 있는 중이다. 

 

SBS야 상업방송으로서 일찌감치 지상파의 흐름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었지만, KBS나 MBC처럼 지상파의 이미지를 가진 플랫폼들은 그래서 이런 변화가 하나의 위기로 다가온다. 지상파에 요구하는 윤리적 잣대들과 제한들이 이런 변화된 환경 속에서는 너무나 큰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네 드라마는 이 OTT가 열어놓은 글로벌 시장이라는 격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이고, 또 그것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분명한 건, 현재 과거 지상파 기준의 보편적인 잣대는 이 변화한 환경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채널, 다플랫폼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준과 목표 설정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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