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비대면 설 명절’ OTT 영화 추천 7선
2021.02.22ㅣ주간경향 1415호
코로나19로 극장산업이 멈춘 지 1년, 비대면 시대 영화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은 OTT라 불리는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왓챠·웨이브와 같은 OTT 플랫폼들이 서비스 중이며, 올해 안으로 디즈니플러스도 런칭할 예정이다. 이 지면에 소개하는 영화들은 넷플릭스·왓챠 등에서 설 연휴에 볼 수 있는, 혹은 보아야만 하는 리스트다. 거기에는 대면 명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영화도 있고, 명절이면 연례행사처럼 보아야만 하는 영화도 있다. 심지어 이 리스트에는 그동안 몰랐던 영화도 있을 것이다. 명절 기간 영화만 한 영혼의 안식처가 있겠는가?
영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관람의 수단이 바뀔 뿐이다.
취권
(醉拳·Drunken Master·1978·12세 관람가) 넷플릭스, 웨이브
“명절엔 성룡 영화지”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중장년층에 설과 추석 명절은 성룡의 ‘신작 프로’를 만난다는 또 다른 설렘의 기간이기도 했다. 명절이면 성룡의 ‘신작 프로’들이 가족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홍콩 무협영화 역사에서 성룡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 때문이다. 슈퍼스타 이소룡의 사망 후 홍콩의 무협영화계를 이끌었지만 성룡은 이소룡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성 호르몬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것 같았던 이소룡과는 다른 성룡만의 귀여운 외모와 익살맞은 몸동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극장 앞을 문전성시로 만들었다. 물론 이제 세월이 흘러 아무도 명절 기간에 성룡의 신작을 기다리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고 역사를 찬양하는 프로파간다 영화 중심의 후반부 필모그래피와 티베트와 홍콩에 대한 친중 발언 등으로 인해 그의 팬들조차 등 돌린 지 오래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홍콩 영화계를 이끌었던 GOAT(greatest of all time)이었던 성룡의 선택이 못내 아쉽고 때론 화가 나지만, 무협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의 족적은 영화 역사에 기록돼야 마땅하다. 성룡의 ‘신작 프로’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기억을 간직한 영화팬들에게 비대면 명절에 <취권>만큼 옛 명절을 추억하기 좋은 영화는 없을 것이다.
헌트
(The Hunt·2020·청소년 관람 불가) 넷플릭스, 웨이브, 구글플레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특정 영화를 언급하며 저주를 퍼붓는 광경은 전 세계 영화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취임까지의 과정만큼이나 요란하게 퇴임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라면 그걸 가능케 한다. <헌트>가 일반 관객에까지 공개되는 과정의 우여곡절 또한 지난 미국의 대통령선거 못지않다. 영화의 원제는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강세 지역을 의미하는 ‘레드 스테이트 vs 블루 스테이스트’였다. 논란 끝에 타이틀이 <헌트>로 변경됐으나, 미국 내 총기 난사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그 여파로 개봉이 연기됐다. 또한 영화의 예고편을 본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진보적 할리우드는 엄청난 분노와 증오에 찬 인종차별주자들로 가득하다”며, 구체적으로 영화의 제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헌트>에 대한 비난임이 분명한 트윗을 날렸다. <헌트>가 사회 엘리트층이 분명한 ‘좌파’들이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의 시민을 납치해 사냥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비난은 절반만 옳다. 정작 <헌트>는 특정 세력을 옹호하고 다른 세력을 비난하며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영화가 아니라 트럼프 시대에 극단적으로 나뉜 미국 그 자체를 풍자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극단으로 치달았던 미국의 자화상은 미 국회의사당 난입 폭력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때론 영화가 현실의 정치보다 위대하다.
다이하드
(Die Hard·1988·15세 이상 관람가) 넷플릭스, 웨이브, 구글플레이
모든 명절을 통틀어 한편의 영화만을 봐야 한다면 그건 바로 <다이하드>다. 크리스마스를 기회로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뉴욕으로 향한 존 맥클래인은 아내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잔인무도한 테러리스트 갱단을 만나 죽도록 고생한다. <다이하드>는 빼어나게 잘 만든 액션 영화다. 물론 이것만으론 전설이 될 수 없다. 마초맨이 연약한 악당을 대량 살육하던 시대에 평범한 백인 형사가 위트를 뽐내며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아내를 구해낸다. 게다가 완벽한 액션 서사까지 보여준다. 누구는 이 영화를 일컬어 액션 영화의 구약 성서라 말한다. 신약 성서는 뭐냐고? 마이클 베이 감독의 <더 록>이다.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사건
(American Murder: The Family Next Door·2020·청소년 관람 불가) 넷플릭스
넷플릭스에 한국의 영화관객들이 환호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자막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넷플릭스에는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에 관련된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존재한다. 또 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범죄 다큐멘터리 장르다. 전 세계의 온갖 잔혹한 범죄와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딱 하나의 작품을 봐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사건>일 것이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 횟수를 기록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CCTV와 페이스북 영상 그리고 경찰이 촬영한 영상과 방송 화면 등을 통해 새롭게 구성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게 사건 발생 당시부터 시작해서 일종의 추리극 형식처럼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에 여러 반전이 있고, 관객들은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캐릭터를 스스로 구축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면 웬만한 비극영화 못지않은 슬픔과 여운을 남긴다. 이 엄청난 비극 앞에 과연 이 표현이 윤리적으로 허용될지 모르겠지만, 영화적으로도 이 작품은 엄청나게 재미있다.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이 있고, 극영화보다 더 긴장감 넘치고 슬픈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다. 꼭 보시라.
분닥 세인트
(The Boondock Saints·1999·청소년 관람 불가)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열혈 형제가 물리치고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이처럼 뻔한 스토리라도 영화가 얼마나 막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되기도 한다. <분닥 세인트>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열혈 형제는 그들만의 신념으로 무시무시한 갱단을 단둘이서 박살 내 버린다. 물론 여기엔 조력자가 있다. 서서히 형제의 신념에 동조해 가기 시작한 윌리엄 데포가 최후의 일격으로 여장을 하는 순간 우리는 이 영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The Last Dance·2020·15세 이상 관람가) 넷플릭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NBA 시카고 불스팀의 왕조 시대의 마지막 1년이었던 1997-1998시즌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무려 22년 만의 공개로, 총 10화다. NBA와 나이키를 지금의 위상으로 만든 사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 혹은 그 범위를 스포츠 선수 전체로 넓혀도 무리가 아닌 선수. 바로 마이클 조던이다. 마이클 조던은 3년 연속 팀을 NBA의 챔피언으로 이끌었고, 2년간 프로야구 선수로의 외유 이후 다시 NBA로 복귀한다. 그리고 팀을 다시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다. 마이클 조던과 그가 이끄는 팀은 NBA 역사상 전무후무한 두 번의 쓰리핏(3연속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팀의 사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마이클 조던의 은퇴가 멀지 않았고, 조던 최고의 조력자였던 스카티 피펜은 리그 최고의 ‘2번째 선수’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했다. 데니스 로드맨은 언제나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그 상황에서 팀의 GM 제리 크라우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완전히 갈아엎기로 결심한 것이다. 과연 마이클 조던과 그의 팀원들은 두 번째 쓰리핏을 무사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스포츠팬들, 특히 NBA 팬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다큐멘터리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500시간에 이르는 촬영분이 편집을 통해 공개됐고, 그간 소문으로만 돌던 시카고 불스 왕조의 마지막 1년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다큐멘터리의 유일한 단점은 마이클 조던의 승부욕이 지나쳐 때때로 그가 악당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익사일
(Exiled·2006·청소년 관람 불가)넷플릭스, 구글플레이, 웨이브
<익사일>은 두기봉의 최고 걸작이 아니다. 게다가 21세기는 홍콩 누아르의 종말을 고하고 <무간도>와 같은 사실적인 누아르가 등장한 세상이다. 이처럼 싸늘한 시대에 두기봉은 흡사 전성기 홍콩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갱단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익사일>은 홍콩 누아르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제 역사가 되어 버린 홍콩 누아르에 보내는 만가이면서 그 시절 우리가 스크린에서 느꼈던 감동과 열광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그리하여 영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영화에 관한 영화가 탄생했다.
<이성원·김정곤 장르영화전문 채널 배드테이스트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