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읽으며 웃은 적 있나? 내 목표는 최고의 해피엔딩!”
넷플릭스 1위 드라마 ‘브리저튼’ 원작자 줄리아 퀸 단독 인터뷰
19세기 초 런던, 사교계에 갓 데뷔한 브리저튼 자작가(家)의 맏딸 다프네는 바람둥이로 이름난 헤이스팅스 공작 사이먼과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이들은 과연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 상투적인데도 어쩐지 매력적인 이 이야기가 전 세계 안방 극장을 점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은 4주 만에 8200만 가입자 시청을 기록하며 2019년 ‘더 위처’(7600만 가입자)의 기록을 가뿐히 넘겼다. 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2월 8일 현재 2021년 TV 드라마 누적 시청률 전 세계 1위다.
원작은 미국 소설가 줄리아 퀸(51)이 쓴 9권짜리 로맨스물. 드라마 인기 덕에 2000년 나온 1권 ‘공작과 나’가 21년 만에 부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해 4주간 자리를 지켰다. 종이책이 한때 품절되면서 11달러짜리 책이 700달러 넘는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 LA 도서관엔 이 책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1000명 넘게 대기했다. 종이책이 절판된 국내에서도 전자책 하루 판매량이 드라마 개봉 이전의 20배 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 원작자인 미국 소설가 줄리아 퀸./숀다랜드
‘이 시대의 제인 오스틴’으로 불리는 줄리아 퀸을 이메일로 단독 인터뷰했다. 시애틀에서 의사 남편과 살고 있는 그는 “터무니없는 값에 책을 사는 건 미친 짓이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 책을 읽고 싶어한다는 건 짜릿하다. ‘우리 모두는 해피 엔딩을 원한다’는 나의 지론이 증명된 것”이라고 했다.
퀸은 어린 시절부터 ‘스위트 밸리의 아이들’ 시리즈 같은 소녀 소설을 탐독했다. 딸의 독서 취향을 마뜩지 않아 하는 아버지에게 “나중에 이런 책을 쓰려고 연구 중”이라 맞받아쳤다. 하버드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예일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머리 식히려 쓴 로맨스 소설이 호평받자 1990년대 중반 의대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다.
퀸은 스물네 살에 첫 소설 ‘애쉬번 공작, 1816’을 출간한 이후 마흔 권 가까운 책을 냈다. 그중 18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37개국어로 번역됐으며 미국 내에서만 1000만부 넘게 팔렸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래봤자 로맨스물’이라는 폄훼의 꼬리표는 늘 따라다닌다. “카뮈나 괴테처럼 불멸의 역작을 쓰고픈 야망은 없냐” 묻자 퀸은 “내 목표는 ‘극도로 잘 쓰여진 엔터테인먼트’”라고 했다. “교실에서 공부해야 하는 책이 아니라 독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머무르게 하는 책을 쓰고 싶다. 카뮈는 굉장하다. 고등학교 때 불어 원서로 ‘이방인’을 읽기도 했다. 그렇지만 읽는 동안 한 번도 미소 짓지는 않았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귀족 역에 흑인 배우들을 기용하는 등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퀸은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각색이 대단히 흥미롭다. 상상력과 경험을 끌어내 책을 쓰지만 결국 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TV 작업의 협업적 본성이 내 아이디어를 눈부시게 아름답고 더 다채로운 세계로 확장시켰다”고 했다.
정식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고 방콕 여행 가다 하룻밤 서울서 경유한 게 전부이지만, 팬데믹의 나날에 가장 그리운 음식은 즐겨 가는 한국 식당의 비빔밥이라고 했다. “배달도 시켜보았지만 지글지글 소리나는 뜨거운 돌솥에 담겨 나올 때의 그 맛이 아니었다”는 것. 일러스트레이터인 여동생과 함께 그래픽 노블을 준비 중이라는 그는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모두는 행복과 사랑을 찾을 권리가 있다.”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