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치킨과 우유 뒤에 흐르는 누군가의 눈물
- 기자명 이로운넷=양승희 기자
- 입력 2021.02.06 08:00
[부패의 맛 리뷰③] ‘큰 날개 휘날리며’ ‘우유의 경제학’
양계업자, 낙농업자 울리는 거대 기업의 횡포 조명
생산 과정에서 착취 당하는 동물·사람에 주목해야
바삭바삭한 치킨과 따뜻한 카페라테. 내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최애’ 음식들이다. 나를 포함 대다수의 사람들이 맛있는 요리와 음료를 즐기는 동안, 그 원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치킨과 카페라테는 고기와 우유로 만들었고, 그 시작은 닭과 소라는 살아있는 동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가 먹는 닭고기와 우유는 대부분 대규모 농장에서 키워져 기업형 공장에서 가공된 것들이다.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는 단 6~7주간 급속도로 사육된 뒤 닭고기가 된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암컷이면 젖소가 되어 매일 우유를 짜이고, 수컷이면 소고기로 길러진다. 다큐멘터리 ‘부패의 맛’은 가축을 키우고 가공해 유통하는 과정에서 맨 처음 단계에 있는 양계업자와 낙농업자들이 처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주목했다.
시즌1 4회 불공정한 계약으로 키운 닭 ‘큰 날개 휘날리며’
역사상 20세기 초반까지 닭고기의 존재는 미미했지만, 현재 미국의 1인당 연간 닭 소비량은 12kg에 이를 만큼 크게 성장했다. 소비자들의 닭고기를 선호한 흐름도 있지만, 양계업의 성장을 이끈 건 빠른 속도와 대규모로 닭을 번식하는 방식 덕분이다. 양계업을 하는 회사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갖추게 됐고, 전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미국에서는 필그림스 프라이드 등 총 4개의 큰 기업에서 닭고기 시장을 장악 중이다. 이들은 이른바 ‘계열화 회사’로 불리는데 부화에서 사육, 도살에 이르기까지 닭고기를 생산하는 모든 요소와 과정을 소유하고 관리한다. 이 단계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사육’을 양계업자에게 맡긴다. 시중에서 파는 닭 한 마리가 7달러라고 했을 때, 양계업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단 36센트뿐이다.
‘부패의 맛’에 따르면 양계농장을 운영하는 농부와 이를 관리하는 회사가 체결한 계약은 일방적이다. 특히 같은 지역 양계업자끼리 서로 경쟁시키는 ‘토너먼트 시스템’은 잔인한 효율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느 농장이 더 적은 사료로 더 큰 닭을 생산하느냐로 가격을 결정하고, 실적이 나쁜 농장의 몫을 떼서 실적이 좋은 농장에 보너스로 주기 때문이다. 닭 중량의 변수인 병아리 종류와 사료, 약품까지 회사에서 관리하면서 농부에게 성과를 강요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JBS 역시 닭고기 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는데, 1년에 20억 마리를 사육하고 도축한다. 이들은 미국에서 완성한 불투명하지만 효율적인 사업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에 따라 닭들은 매우 밀폐되고 오염된 환경에서 자라나고, 농부들은 불공정한 계약에 따라 적은 돈을 받고 착취당한다. 그러는 동안 몸집을 키운 JBS는 정치 세력과 결탁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부정부패의 길로 들어선다.
시즌1 5회 충분히 받지 못하는 가격 ‘우유의 경제학’
과거에 비해 우유 소비량은 점차 줄고 있으나, 기술의 개발로 생산량은 늘고 있다. 최근 젖소 한 마리의 하루 착유량은 26L 정도인데, 이전 세대보다 25%나 많은 양이다. 그러나 우유의 생산량이 증가해도 낙농업계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의 낙농업은 흔히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가족 농장’의 형태였으나, 2000년 이후 3만곳 가량이 폐업했다. 인디애나주의 웨인 카운티 지역에는 한때 젖소 농장이 1200곳에 달했으나 현재는 60곳 정도뿐이다.
가족 농장이 사라진 대신 공장형 농장이 떠올랐다. 현재 시중에 판매하는 우유는 수백~수천 마리의 젖소를 키우는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되는데, 규모의 원리에 따라 수익을 내는 구조다. 미국의 우윳값은 시장의 영향을 받아 변동성이 매우 큰 편이다. 더욱이 글로벌 시장으로 개방되면서 세계 정세에 따라 유제품 가격은 날뛰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45kg당 29달러였던 우유 가격이 18달러까지 떨어졌다. 22달러는 받아야 흑자 유지가 가능함에도 말이다.
가격의 변동 폭이 크고 안정적 수익이 나오지 않자, 소규모 낙농업자들은 파산 위기에 처한다. 가족들이 대를 이으며 키운 농장을 지키기 위해 부업을 하거나 다른 농장과 협업해 우유를 납품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우윳값 때문에 악순환은 반복된다. 농부들은 “예전에는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농장 운영이 가능했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며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큰 날개 휘날리며’와 ‘우유의 경제학’은 우리가 즐겨 먹는 닭고기와 유제품이 어떻게 생산돼 유통되는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과 노동자가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보여준다. 기업이 원하는 대로 품질 좋은 고기와 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먼저 닭을 닭처럼, 소를 소처럼 키우면 된다.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이들을 건강하게 기르는 것이다.
또한 가축을 기르는 양계업자, 낙농업자에게 적정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 아닌, 농부들의 억눌린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분별력 있는 소비자들은 누군가의 불행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치킨과 카페라테라고 해도.
이로운넷=양승희 기자 yang@erou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