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튀기는 액션, 알고 보니 ‘캐비어 좌파’ 비판
[영화 리뷰] 헌트
뉴욕타임스 “암울한 풍자” 평가… 트럼프, 트위터에서 비난하기도
11명의 낯선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들판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영화 시작 5분도 안 돼 절반이 사라진다. 총에 맞아 죽고, 달아나다 부비 트랩에 걸려 죽고, 지뢰를 밟아 터져 죽는다. 들판에서 게임처럼 인간을 사냥하는 모습에 ‘헝거게임’(2012)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장이 튀어 나오고, 반 토막 난 육체로 수다를 떠는 장면에 B급 슬래셔물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외피일 뿐이다. 사냥감이 보수 유튜버와 극우 성향 백인들이고, 이들을 공격하는 인물이 좌파 자유주의자들이라는 설정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 지난해 개봉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가 내린 “올해 가장 양극화되고 악명 높은 영화 중 하나”라는 평가도 이 때문이었다.
어느 날 채팅방에서 수다를 떨던 친구 사이인 유명 기업 CEO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맨션’ ‘사냥’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이들은 우리로 치면 ‘강남 좌파'. 큰 실수였다. 이 때문에 ‘좌파가 우파를 사냥한다’는 루머가 퍼진 것. 이들은 속해 있던 기업과 재단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헛소문이라 치부했던 계획들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긴다.
관객들은 사냥감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흑인은 배제할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신봉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짓는다. 이런 장면도 있다. 저택 주방에서 주인공 크리스탈(베티 길핀)과 격투를 벌이던 여성 기업인 아테나(힐러리 스왱크)가 자신을 향해 날아든 최고급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질까 봐 온몸을 던져 받아내고, 기내식을 서비스하는 여승무원에게 “캐비어 먹어봤냐?” 묻고선 “못 먹어봤다”는 말에 은근히 만족스러워하는 모습들... . ‘캐비어'란 소재를 꺼낸 것은 너무 직접적이지만, 입으로는 성평등을 추구하고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의 태도에 깃들어 있는 이중적 태도를 비웃고자 하는 의도가 읽힌다. 이런 세세한 설정과 의도를 숨긴 대화는 영화 곳곳에 숨어 있다. 다만, 미국에선 풍자와 디테일을 이해 못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를 공화당 비판 영화로 잘못 이해하고 트위터에서 영화를 맹비난한 것은 또다른 코미디였다.
국내 넷플릭스에 1월 마지막 주 공개된 이 영화는 현재 ‘오늘 한국에서 콘텐츠’ 순위 4위(2일 기준)를 달리고 있다. 미국의 잘난 체하는 리버럴에 대한 염증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강남 좌파에 대해 풍자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미국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도 평론가들은 그리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린 반면, 관객들 사이에선 ‘꽤 볼만하다’는 평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