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뤼팽 활약상 v 신부의 신랑 살인사건
입력2021.01.30 10:00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현대에 나타난 뤼팽, 그런데 흑인이라고?(넷플릭스 '뤼팽')
괴이한 도둑이다. 도둑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 나름의 신사도를 지녔고, 절도에는 이유가 있다. 근엄한 척, 정직한 척하는 상류층의 위선을 까발리거나 지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다. 자유분방한 성격에 주변사람들을 배려하며 악당을 응징한다. 안티 히어로 뤼팽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①세네갈계 이민자가 부활시킨 ‘괴도’
프랑스 드라마 ‘뤼팽’은 1905년 첫 선을 보인 추리소설 시리즈 ‘아르센 뤼팽’을 밑그림 삼았다. 시공간은 현대 프랑스다. 흔한 고전물의 현대화는 아니다. 뤼팽처럼 행동하는 주인공은 세네갈계 이민자 아산 디오프(오마르 시)다. 대중의 통념을 깨는 설정이다.
아산은 뤼팽의 열렬한 팬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뤼팽처럼 생각하고 뤼팽처럼 행동한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 한시적으로 전시 중인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를 훔치려 한다. 돈에 눈이 먼 몇몇 불량배를 꼬드겨 작전을 실행한다. 절도 과정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아산은 목걸이를 손에 넣은 후 안전하게 루브르 박물관을 빠져 나온다.
아산이 절도에 나선 건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다. 아들과 프랑스에 착근하기 위해 성실히 일만하던 아버지는 펠레그리니 가문에서 앙투아네트 목걸이를 훔쳤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가난하지만 정직하기 이를 데 없던 아버지의 행동이라고 믿을 수 없다. 아산은 루브르박물관에서 훔친 목걸이를 지렛대 삼아 진실을 들추려 한다.
②절도로 정의를 세우다
아산이 맞서 싸우는 펠레그리니 가문은 프랑스 최고 명문가다. 대대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권력층과도 가깝다. 가문의 승계자 허버트가 수상쩍은 행동을 해도 보도가 되지 않는다. 가문이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서다. 아산은 허버트에 지혜와 용기로 맞선다. 유일한 조력자는 허버트의 악행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죄로 나락에 떨어진 언론인 정도다.
경찰이 아산의 뒤를 쫓고, 허버트 역시 사람을 동원해 아산을 잡으려 한다. 아산의 전 아내와 아들까지 위험에 처한다. 아산이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넘기는 과정이 서스펜스를 빚어낸다.
아산은 어려서부터 약자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다. 피부색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뤼팽은 영웅이다. 아산은 뤼팽처럼 홀로 강자에 맞서 악을 응징하고 정의를 세우려 한다.
③소설 활용한 속도감 넘치는 전개
드라마는 원작의 밑그림을 재치 있게 활용한다. 소설 속 어린 뤼팽은 어머니가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앙투아네트 목걸이를 훔친다. 뤼팽의 첫 절도다. 소설에서 뤼팽은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귀신처럼 빠져 나온다. 드라마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연출된다.
아산은 여러 가명을 활용하는데, 뤼팽의 철자를 재배열한 이름들이다. 아산의 아버지는 소설 속 문구를 활용해 자신의 억울함을 아들에게 알린다. 드라마가 지닌 깨알 같은 재미다. 아산은 거대 악과 싸우면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다. 시청자를 즐겁게 하는 매력이다.
감독은 루이 리터리어다. ‘인크레더블 헐크’(2008)와 ‘타이탄’(2010)과 ‘나우 유 씨미: 마술사기단’(2013) 등 상업영화를 연출해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뤼팽’은 리터리어의 상업적 재능이 잘 발휘된 드라마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는 반개)
강자와 싸우는 약자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시련을 이겨내고 장애를 뛰어넘어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은 통쾌함을 안긴다. 어디서든 이민자는 이등국민 취급을 받기 일쑤다. 세네갈계 아산이 뤼팽을 영감 삼아 강자를 코너에 몰아붙이는 과정은 짜릿하다. 서스펜스와 유머가 있는 드라마지만 허점이 있기도 하다. 아산이 움직이면 난이도 높은 문제들이 너무 쉽게 해결된다. 마치 신과도 같은 능력이 있는 것처럼.
신랑이 죽었다, 신부 손엔 칼이 들렸다(왓챠 '징벌')
신랑이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죽는다. 대형 케이크를 자르기 전 잠시 불이 꺼진 사이 벌어진 일이다. 신랑의 목에 깊게 베인 상처가 있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다. 신부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다. 신부가 범인으로 지목될 수 밖에. 하지만 거대한 물음표가 따른다. 하필 웃음꽃이 만발하던 피로연장에서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①결혼식 날 벌어진 참극
프랑스 드라마 ‘징벌’은 시작부터 서스펜스가 넘친다. 용의자는 명확한데, 동기가 불분명하다. 신부 나탈리(나디아 테레시키에비츠)는 결백을 주장한다. 그가 케이크를 자르기 전 들른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이다. 나탈리의 어머니 로자(도미니크 발라디)는 결혼식 직전 딸의 결혼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드라마의 초반은 조금 혼란스럽다. 프랑스 드라마지만 주요 배경은 이스라엘이다. 나탈리 가족은 유태계 프랑스인이다. 어쩐 일인지 몇 년 전부터 가족이 모두 이스라엘로 이주해 살고 있다. 가족 모두 국적은 여전히 프랑스라 나탈리가 경찰에 체포되자 나탈리의 아버지는 프랑스 영사관에 도움을 청한다.
이스라엘 주재 프랑스 부영사 카림(레다 카텝)이 자국민 나탈리를 도우려 경찰서로 향한다. 이스라엘 경찰 제시카(노아 콜러)는 프랑스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나탈리 취조를 맡는다. 두 사람은 단순해 보이던 살인사건이 복잡한 이면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한다. 각기 다르게 사건에 접근하다 협업한다.
②주변 사람 모두 수상하다
가족이 수상하다. 아니 나탈리 주변 사람 모두 수상쩍다. 로자는 사위의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딸 나탈리의 연애와 결혼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태운다. 나탈리에게 엄격한 유대교 관습을 강요한다. 동생이 죽으면 제수를 아내로 취해야 하는 유대교 전통에 따라서 사위의 형 샤이(로이 닉)와 절교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탈리는 진저리를 치면서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긴다.
유대교에 빠져든 샤이 역시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하다. 동생과 나탈리의 침실 장면을 촬영해뒀다. 로자가 의지하는 오랜 친구 루이자(아리안 아스카리드)는 많은 비밀을 아는 듯한데 카림 앞에서는 말을 최대한 아낀다. 나탈리는 까닭 모를 상처가 등에 자꾸 생겨난다.
카림은 나탈리 가족이 나탈리 남자친구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를 떠난 사실을 알아낸다. 나탈리 남편의 죽음이 연관돼 있다 생각하고 의문 많은 옛 남자친구를 추적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비밀의 심연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③다인종 다문화가 만들어낸 미스터리
로자는 튀니지계 유대인이다. 나탈리의 아버지는 폴란드계다. 같은 유대인이지만 관습이 다르다. 로자는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적으로 이어진 남자와 살 수 밖에 없다는 믿음에 빠져있다. 나탈리의 시련은 잘못된 남자와 결혼식을 올려서라고도 생각한다. 사위의 목에 깊게 패인 상처는 다른 남자의 여자를 취한 죄에 대한 징벌의 표식이라고도 주장한다. 로자는 알제리계인 카림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드라마는 황량한 대립의 땅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다인종과 다문화를 충돌시키며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고 극을 전진시킨다.
원제는 소지품 또는 소유물을 의미하는 ‘Possessions’이다. 다의적인 제목이다. 로자는 성년이 된 자식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강요한다. 자식들에게 “너희들을 다시 내 뱃속으로 넣고 싶구나”라는 말을 자주한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의 반영이다. 드라마가 뒤로 갈수록 원제는 다른 의미를 암시하기도 한다.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생각했던 오랜 인습에 대한 비유로 활용된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는 반개)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살인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벌어진 것인지, 간악한 살인자의 행위인지, 나탈리가 다중인격자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어느 인물이 용의선상에 오르면 또 다른 사람이 의심 받는 식으로 이야기가 죽 이어진다. 미스터리가 꼬리를 물고, 의문점이 해소되면 새로운 미스터리가 생긴다.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