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동물-장례… ‘다큐 맛집’ 된 넷플릭스
크립 캠프-장애는 없다’ 장애인 인권 발달사 카메라에 담아
‘나의 문어 선생님’ 인간과 문어의 교감과정 그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생생한 표정, 가슴 먹먹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 자체 제작에 힘을 쏟으면서 다큐멘터리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틀을 넘어 다양한 주제를 새로운 형식이나 분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강점. 특히 지난해 선보인 작품들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아 국제다큐멘터리협회상(IDA)을 다수 수상하면서 ‘다큐 맛집’으로 각광받고 있다.
“캠프 첫날 지도교사가 키스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제 생애 가장 훌륭한 치료였죠.”
한 남성 장애인이 말한다. 난생처음 장애인도 성적 욕구를 지닌 한 인간으로 존중받았다고 느꼈다며, 이는 병원에서 받아 온 어떤 물리치료보다 삶에 더 도움이 됐다고 한다. 미국의 장애인 인권 발달사를 다룬 다큐 ‘크립 캠프―장애는 없다’의 한 장면이다.
다큐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1971년, 한 마을에서 열린 장애인 캠프에서 시작된다. 장애인이 소수자가 아닌 환경에 놓인 참가자들은 비장애 친구들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보여준 적 없었던 편안한 표정으로 캠프를 즐긴다. 캠프 말미에 이들이 나누는 토론은 장애인의 마음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의 가슴을 때린다.
“아무리 엄마에게 화가 나도 화를 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 엄마는 나를 씻기고 보살피는 사람이어서 자칫 화를 냈다간 도움을 못 받게 되거든.”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의 심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우연히 바닷속에서 마주치게 된 인간과 문어가 교감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의 인물들처럼 인간의 손과 문어의 빨판이 최초로 닿는 모습은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번식하며 희생하는 작은 암컷 문어는 조용한 경외심에 사로잡히게 한다. 영상 전반에 낮게 깔려 바다의 모습을 더욱 장엄하게 만드는 배경 음악이 일품이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감독 커스틴 존슨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수십 년을 살다 은퇴 후 노년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 딕 존슨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로 한다. 주제는 다름 아닌 ‘딕 존슨의 죽음’.
딕은 미리 치르는 장례식을 통해 막역한 친구의 추도사와 조문객들의 표정을 엿본다. 평생을 성치 못한 발가락으로 살았지만, 딸이 만든 ‘천국 스튜디오’ 영상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온전한 다섯 발가락을 얻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 함께 맨발로 춤춘다. 익살스러운 장면이 끊임없이 튀어나오지만 이 작품이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던 딸의 반성문이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커스틴 감독이 제안하는 이 독특한 아이디어는 부모의 죽음과 남은 삶을 동시에 생각하게 만든다.
시리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프로풋볼 리그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미식축구 시리즈 ‘라스트 찬스 대학’은 2016년 첫선을 보인 후 지난해까지 5개 시즌이 제작됐다.
이들 작품에 외계인과의 교신에 일생을 바친 남자를 다룬 ‘존의 컨택트’를 더한 5개 작품은 미국 HBO, 내셔널지오그래픽 등과 겨루는 국제다큐멘터리협회상(IDA)에서 최근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는 유연한 장르”라며 “시의성 있는 작품을 발 빠르게 제작하는 것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