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기가 가져온 디지털 혁명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
[LA중앙일보] 발행 2021/01/14 미주판 16면 입력 2021/01/13 19:00
작년에 만난 많은 분들은 한결같이 지난 한해처럼 힘들었던 적은 없다 이야기합니다. 바로 전해만 해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수의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 일을 하거나 여유를 즐기던 것이 벌써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축하할 일이 있거나 고된 하루를 마치고 나면 가까운 사람들이 만나 음식과 소식을 나누는 일상 역시 불안감 속에 줄어들었습니다. 산책길에서 마스크를 안 한 분을 보면 흠칫 놀라서 피하게 된다는 글들을 보며 생존을 위해 오랜 기간 협력해 온 같은 종을 두려워하게 만든 바이러스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행성 위 모든 사람이 겪게 된 이러한 공통의 경험 속에서 사람들은 놀라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위로하고 위안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데이터를 통해 관찰하고 마음을 캐는 일을 하게 된 지도 이제 20년이 넘었기에 이러한 삶의 다이나믹한 적응에서 깊게 생각해 볼 이슈들이 한꺼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통상 십수 년이 걸린다는 백신의 개발이 1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 지구적 협력의 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재정이 어려운 지역의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질병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관심했던 우리 인류의 차가운 면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초 건물마다 체온을 재던 아르바이트 직업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자동화된 기계로 대체되는 것을 보며 노동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만나지 않아도 가능한 비대면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늘며, 지점의 폐쇄를 고민하고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의 확산으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소식이 오버랩됩니다.
외부 활동의 제한으로 넷플릭스와 왓챠 같은 온 디맨드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 미디어 산업의 지형도가 바뀌는 것을 보며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 변화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 보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송국의 ‘편성’에서 시간의 축이 사라집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각자 선택하게 되면 알리고 싶은 것을 푸시할 수 없게 되기에 채널의 힘보다 플랫폼과 콘텐츠 제작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는 것이 당연함을 이해합니다.
온라인으로 펼쳐진 BTS의 콘서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유료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국경과 물리적 한계가 사라진 ‘글로벌 마켓’의 진정한 도래를 목도하였습니다. 전 지구적인 공연이 무한대의 청취자를 대상으로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재능있는 천재들의 영향력은 지수 함수와 같이 증가할 것이지만 작은 동네의 무대를 채우던 예인들의 시장은 그만큼 제한될 것이기에 모두에게 ‘글로벌 역량’을 요구하는 비정함이 다가올 것을 걱정합니다.
매일같이 눈뜨면 찾는 확진자 수의 추이와 검사의 수, 확진율, 확진자들의 동선에 이르기까지 감염병을 막아내기 위한 실시간 정보의 접근성은 역학 추적의 용이함을 제공하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문화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자유와 보건의 안전이라는 상반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줄다리기가 자칫 통제사회의 도래로 흐르게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실감합니다.
이처럼 우리 인류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에 생존을 위해 과감하게 인공지능, 자동화, 비대면, 초연결성과 같은 새로운 기법들을 삶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엄청난 실험을 일상에서 펼치며 그간 쌓은 기술과 협력의 시스템이 생각보다 꽤나 효율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혁신이 적용 가능하고 편리함을 알게 된 순간 지금까지의 전제와 같던 관행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다음의 순서는 각자에게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리라는 것 역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이번 위기로 변화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삶을 위한 진화라는 지난한 역정에 한 번 큰 변화가 다가왔지만 우리는 또 헤쳐나가 유전자를 남기려 노력할 것이기에 다시 한번 스스로를 채근하며 고단한 길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