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피살 미국판 ‘나라슈퍼’…28년 억울한 옥살이 106억 배상
짓지도 않은 죄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감옥에 28년간 투옥됐던 체스터 홀먼 3세(49). 지난해 그는 죄가 없음이 인정되어 풀려난 데 이어 최근에는 배상금으로 980만 달러(약 106억원)를 받기로 합의했다고 미국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980만 달러는 미국에서도 이례적인 고액 배상금이다.
홀먼은 국내에서 벌어졌던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희생자들과 판박이다.부실·조작 수사로 장기간 억울한 옥살이을 하고, 재수사 끝에 결백을 증명했다는 점에서다.
사건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먼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 다니던 한인 유학생 총격을 받아 피살된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다. 우연히 살인사건 현장을 차를 타고 지나쳤다가 살인범으로 몰려 경찰에 붙들린 것이다.
경찰은 차량 번호판에 Y·Z·A라는 글자가 있었고 범인 중에 흑인이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만으로 그를 범인으로 단정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증언은 묵살됐다.
숨진 유학생과 함께 있던 친구는 "범인은 붉은색 바지를 입었고 안경이나 모자는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홀먼은 녹색 바지에 안경과 모자를 쓴 차림이었다. 피해자의 친구는 경찰이 데려온 홀먼이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취조 당시 경찰이 폭력을 쓴 사실도 이후 확인됐다.
결국 홀먼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됐다. 하지만 감방에서도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했고, 그의 결백을 확신한 변호사가 무료로 변호에 나서면서 결국 재수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홀먼의 죄는 경찰에 의해 날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노숙자에 "범인 얼굴을 봤다고 증언하라"고 강요했다. 훗날 이 노숙자는 자신이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거짓 증언을 했다며 홀먼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밝혔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에 대한 시민의 제보가 있었지만 무시됐고, 용의자가 홀먼이 탔던 흰색 차량과 동일한 모델의 렌트카를 타다 사건 이후 반납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홀먼의 무죄를 증명한 결정적인 증거는 재조사 과정에서 찾아낸 경찰의 증거 보관 상자 속에서 나왔다. 경찰 측이 피해자의 손톱을 깎은 것을 일부 보관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홀먼이 아닌 제3자의 DNA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어처구니 없는 사건 처리는 당시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던 필라델피아의 상황과 연관이 있다. 궁지에 몰린 경찰은 누구든 빨리 잡아 넣어 실적을 올리려고 했고, 검찰은 기소하고 유죄를 선고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분위기였다고 재조사를 담당했던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런 상황은 한참 뒤 필라델피아 검사장이 교체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잘못된 사법적 판단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홀먼의 사건 재조사도 탄력을 받았다.
사건은 넷플릭스 '결백의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로도 다뤄졌다. 홀먼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무죄 석방을 위해 애써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