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넷플릭스를 한류 최대 수혜자로 만드는 미디어정책
- 입력 : 2020.12.09 00:06:01
도요새와 조개가 싸우면 누가 이득을 볼까. 답은 어부다. 고사성어 어부지리(漁父之利) 얘기다. 현재 국내 방송 콘텐츠 시장의 형세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글로벌 OTT기업 넷플릭스의 성장세가 무섭다. 금년 3분기 기준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는 1억9500만명으로 급성장했다. 국내 가입자는 330만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가입자 184만명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한 달 결제액만도 500억원에 달한다. 넷플릭스 스스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가입자가 전체 유료회원 증가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는 2018년 한국사무소를 설치한 데 이어 금년 9월 별도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국내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를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그만큼 한국 시장, 더 나아가 한류 시장의 가치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웃어야 할지, 걱정부터 해야 할지 판단이 잘 되지 않는다. 우리 방송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소위 `킬러 콘텐츠`로 인정받고, 그래서 국내 콘텐츠 확보가 글로벌 OTT기업의 성공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쁘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투자가 없었다면 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시청률 하락과 이에 따른 방송 광고 수익 급감, 그 대안으로 유료방송 시장에서 수신료 배분 인상 요구와 힘없는 중소 PP들의 수신료 배분 감소 등 악순환 구조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방송 콘텐츠 이용의 대세로 부상한 글로벌 OTT에 대한 유통망 의존도 심화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첩첩산중이다. K드라마와 BTS를 중심으로 한 K팝 등 한류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지만, 그 토대가 되고 있는 국내 시장의 주도권을 글로벌 OTT기업에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글로벌 유통망으로 중무장한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시장을 `침공`하여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동안 우리 정부의 대응은 너무 안이하고 굼뜨다. 지난 6월 범정부 차원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각 부처가 전기통신사업법(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문화체육관광부), 방송법(방송통신위원회) 우선 개정을 거론하면서 OTT 정책을 주도하기 위한 다툼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외양간은 불타고 있는데, 그 외양간의 주인이 누군지 다툼만 하고 있는 꼴이다.
지금은 넷플릭스와 국내 콘텐츠 기업들이 힘의 균형 속에 `전략적 제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힘의 중심이 거대 글로벌 OTT기업으로 기우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전략적 제휴도 우리가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힘의 균형이 한번 무너지면 그것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디지털 대전환으로 우리 산업과 경제, 사회 문화와 일상생활이 크게 바뀌고 있다. 전혀 다른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는, 기존 틀을 과감하게 탈피하는 새로운 발상과 시도가 미디어 정책에서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고삼석 前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