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넷플릭스법, ‘1% 트래픽’ 국내 중소CP 잡는 법?
2020.12.02
100만명과 1%.
앞으로 이 숫자에 해당되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는 서비스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기 때문입니다. 시행령은 공포를 거쳐 오는 10일부터 시행됩니다.
시행령을 살펴보면 적용대상은 전년도 말 3개월간의 하루 평균 국내 이용자 수 100만명 이상, 국내 전체 트래픽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부가통신사업자입니다. 대부분의 CP는 부가통신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업을 하죠.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시행령 적용 대상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민의 일상 생활과 경제·사회적 활동에 영향이 큰 국내·외 사업자를 포함하되 그 대상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심한 끝에 100만명과 1%라는 기준을 설정했습니다. 100만명과 1% 조건을 충족할 정도의 서비스라면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서비스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한거죠. 국내 전체 트래픽의 1%는 약 3만5000명이 하루 종일 HD급 동영상을 시청할 때 발생하는 트래픽의 규모에 해당됩니다. 약 5000만명이 메신저·SNS·정보검색을 할 수 있는 트래픽 규모이기도 합니다.
현재 기준으로 100만명과 1%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서비스를 갖춘 사업자는 △네이버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5곳입니다. 이들의 서비스는 시행령이 제시한 기준을 이미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네이버가 시장조사기관 코리안클릭의 수치를 인용해 3분기 사업보고서에 공개한 순이용자수(UV)를 보면 네이버의 9월 월간 UV는 4040만명, 카카오의 UV는 3950만명입니다. 단순히 30으로만 나눠봐도 일일 UV가 100만명을 넘어섭니다.
이처럼 인터넷 사용자들이 많이 찾다보니 안정적 서비스 제공은 필수입니다. 사업자들은 접속이 안되거나 오류가 나는 경우가 잦으면 사용자들이 다른 서비스를 찾아 떠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안정적 서비스를 위해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국내 포털 1위 사업자 네이버를 볼까요? 네이버의 사업보고서에 공개된 올해 3분기 누적 시설투자(CAPEX) 비용은 4943억원입니다. 최근 5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네이버의 CAPEX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CAPEX에는 서버 유지보수와 비품 구매, 토지 및 건물을 비롯해 각종 무형자산에 대한 비용이 포함돼있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주요 사업자들은 시행령에서 제시한 서비스 안정성을 위한 의무 조치 사항 중 대부분은 이미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이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법이 되어 버린 거죠. 이에 사업자들은 ‘이미 하고 있는데 어떤 걸 더 해야 하나?’, ‘법에서 규정한 서비스 안정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장애가 발생했는데 시행령의 조치 사안들을 모두 지켰으면 처벌 받지 않는 건가’ 등의 의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00만명·1% 기준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소 CP들에게 눈길이 갑니다. 중소 CP들은 우선 자신들이 100만명·1% 기준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UV는 시장조사기관들이, 트래픽은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이 집계합니다. CP들이 매번 자신들의 UV와 트래픽 점유율을 점검할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불안합니다. 자신들이 100만명·1% 기준에 충족된 것을 모르고 있다가 시행령을 지키지 않았다며 처벌을 받는 것 아니냐는 거죠. 그렇다고 ‘우리는 100만명·1% 기준을 절대 넘지말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많은 이용자를 모으고 이윤을 내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니까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정부는 미리 알려주겠다는 입장입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전체 트래픽 중 차지하는 비중이 0.8~0.9% 정도 되는 기업들에게는 시행령 의무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소 CP들은 불안합니다. 나름 안정적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사업자들 때문에 생긴 법이 결국 대기업에 비해 돈과 인력이 부족한 국내 중소 CP들만 잡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마련된 배경을 살펴보면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페이스북은 KT와 계약을 맺고 캐시서버를 국내에 두고 있었습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인터넷 가입자들은 KT망에 설치된 캐시서버를 통해 페이스북을 이용했습니다. 통신사들은 자사의 가입자가 다른 통신사의 망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접속료를 서로 정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호접속고시가 개정되면서 발생한 트래픽만큼 상호접속료를 정산하게 됐습니다. 결국 페이스북 관련 트래픽이 많은 KT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접속료를 줘야 하는 처지가 됐죠. 이에 KT가 페이스북에 캐시서버 비용을 더 받거나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망에도 캐시서버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들이 이용하는 접속경로를 KT의 캐시서버가 아닌 홍콩 등의 해외로 변경했습니다. 때문에 접속에 시간이 더 걸리게 됐고 이용자들은 불만을 나타냈죠. 방송통신위원회는 페이스북이 이용자 이익을 저해했다며 3억96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제재를 부과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이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하고 마지막 3심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북을 비롯한 넷플릭스, 구글 등 거대 해외 사업자들이 국내에서 매출을 올리지만 망 사용료는 제대로 내지 않으려 한다며 이들과 같은 CP들에게도 망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고 결국 관련 법안 발의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후 이 법은 이른바 넷플릭스법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법은 국회를 통과해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CP와 ISP들은 새 시행령이 어떻게 실제로 적용되는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 편익 증진’이라는 시행령 개정의 목표가 어느 한 쪽의 희생으로 달성되면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