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손잡은 K-콘텐츠 '글로벌 한류' 이끈다
- 윤용섭
- 입력 2020-11-26 | 발행일 2020-11-26 제16면 | 수정 2020-11-26
서구권 시청자까지 사로잡아
영화 '승리호' OTT 직행 선택
세계시장서 위상 확인 계기로
한류가 새로운 발전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한국 드라마의 2차 시장으로 기능한 넷플릭스를 매개로 한류가 재점화되고 있는 것. 이를 통해 한류 팬으로 새로 입성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드라마의 오락성과 작품성을 높게 평가한다. 소설 '연금술사'로 유명한 브라질의 문호 파울로 코엘료 역시 '나의 아저씨'(2018)를 넷플릭스를 통해 보고 난 후 "인간의 조건을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이는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한국을 선택한 넷플릭스의 전략과도 맞아떨어진다.
◆한류 팬덤의 변화
코로나19로 전통적인 극장 산업은 심하게 흔들린 반면, 상대적으로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그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이를 방증하듯 국내 유료 가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가량 증가한 330만명이다. 가파른 성장세에 비례해 투자도 공격적이었다. OTT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올해 국내 콘텐츠 투자에 모두 3천331억원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진출 첫해인 2016년 150억원으로 시작한 걸 감안하면 덩치가 20배 넘게 커진 셈이다.
2010년대 후반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 진출을 결정하면서 취한 포지셔닝은 지역의 콘텐츠 강국인 한국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아시아 지역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한국 드라마를 활용해 교두보 전략을 펼치겠다는 심산이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시작으로 '미스터 션샤인' '킹덤'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홈' 등 한국 내 인프라를 활용한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 제작에 투자함으로써 점차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드라마 방영권 구입에도 적극적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김 비서가 왜 그럴까' '이태원 클라쓰' '스타트업'까지 12편에 달한다. 덕분에 이들 드라마를 시청한 전 세계 가입자들은 몰아보기를 해가며 한국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제작사들 역시 한류 초기 아시아 중년여성들을 사로잡았던 '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들 대신 속성을 다변화한 이야기와 소재, 장르로 남녀 모든 연령대를 공략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5일 일본의 한 해를 이끌었던 유행어를 발표하는 '현대 용어의 기초 지식 선거 2020 유행어·유행어 대상' 후보 30단어 중 한류와 관련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노미네이트됐다. 넷플릭스에서 처음 방영됐을 당시 일본의 한류 4차 붐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대만 또한 '사랑의 불시착'과 함께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가장 인상에 남는 드라마로 꼽았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최근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브라질과 페루 등 남미 전역에서도 10위권에 랭크됐다.
이를 통해 콘텐츠 소비가 문화 본질주의적 차원에서의 근접성보다는 대중문화적 감수성 차원에서의 근접성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시장경쟁력이 약한 자국 문화산업을 가진 동남아시아의 수용자들은 문화근접성(같은 한자문명권 혹은 유교문화권)을 언급하는 대신 한국 드라마의 세련된 스타일, 흥미로운 서사, 오락적 완성도에 매료돼 자신들이 한류 팬이 됐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서구의 시청자들도 한국 드라마에 대해 이와 유사한 평가를 하고 있다.
◆전 세계에 한류 전파
태생은 영화였지만 최종 정착지로 넷플릭스행을 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미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한 영화 '사냥의 시간'이 있고,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극장 개봉 후 단순 방영권만 산 영화도 '#살아있다' 등 6편에 달한다. 최근에는 '승리호' '콜' '낙원의 밤' '차인표' 등이 넷플릭스행을 결정했다. 팬데믹 상황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자구책의 일환이지만, 결과적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전 세계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알리고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김민영 넷플릭스 한국·동남아시아 콘텐츠 총괄 VP는 "2020년은 넷플릭스와 한국 영화계에 있어 주목할 만한 일이 많았다"며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한국 창작 생태계와 함께 수준 높은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훌륭한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든 만들어지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창작자가 만든 넷플릭스 영화를 비롯해 다양성과 재미로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승리호'의 메인 투자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 유정훈 대표는 넷플릭스를 선택한 결정에 대해 "코로나19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고, 콘텐츠 유통에 대한 기존 환경과 디지털 사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후속적인 슈퍼 IP 확장에 박차를 가해 세계시장의 높은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반 조성을 위해 더이상 개봉을 연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에 의한 '문화의 전 지구화'가 한류를 추동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약진이 전 지구적 문화 권력(미국)의 탈중심화를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다만 그 약진이 넷플릭스의 배급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선 주목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제작과 유통 간 권력의 추가 기울어지는 순간, 한국 콘텐츠산업이 글로벌 OTT의 '하도급공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