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획)명맥 끊긴 대하 드라마, 부활 쉽지 않은 이유
감당 안 되는 제작비·달라진 시청자 안목·인력 부족
입력 : 2020-11-13 00:00:00
[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2016년 KBS 드라마 ‘장영실 이후 대하 드라마의 맥이 사실상 끊겼다. 1980년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대하 드라마가 36년 만에 안방극장에서 종적을 감춘 셈이다. 다양한 케이블 채널을 통해 과거 방송된 대하 드라마가 재방송을 통해 꾸준히 방송되고 있다. 그렇다는 의미는 대하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수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제작 시스템 속에서는 대하 드라마가 부활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하 드라마는 내용의 전개 과정이나 길이가 길고 규모가 큰 드라마를 통칭한다. 그렇다 보니 대하 드라마의 주요한 소재는 보통 역사, 혹은 역사 속 인물을 다루는 사극이 주로 대하 드라마로 제작 되어왔다. 사극이 아니더라도 유명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도 원작의 긴 호흡을 담아내기 위해서 대하 드라마로 제작된 경우가 있었다.
대하 드라마는 1980년대 ‘대명’ ‘풍운’ ‘개국’ 등 제작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당시 드라마의 기본 편수는 40~50회였다. 박경리 작가의 장편 소설 ‘토지’의 경우 103회 분량으로 제작이 됐다. 1990년대 후반에는 ‘찬란한 여명’ 100회, ‘용의 눈물’ 159회, ‘왕과 비’ 186회로 대하 드라마의 기본 회차가 100회가 넘어가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용의 눈물’과 ‘왕과 비’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2000년대 초 뒤를 이어 제작된 ‘태조 왕건’의 경우 200회로 제작이 됐다. 또한 ‘무인시대’ 158회, ‘불멸의 이순신’ 104회’ ‘대조영’ 134회 등의 긴 호흡을 자랑했다. 하지만 2010년이 넘어가면서 대하 드라마의 인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회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하 드라마의 마지막 작품인 ‘장영실’의 경우 24회에 불과했다.
지난 10월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혜숙 의원은 양승동 KBS 사장에게 경영 악화 속에서도 대하 드라마를 중단 시키면 안 된다고 지적을 했다. 또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영상물 제작의 필요성과 국내 OTT가 해외 진출을 하게 되면 영상을 통해 한국을 알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양승동 KBS 사장은 현 재정상태로는 대하 드라마의 제작이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내년 대하 드라마를 부활 시킬 계획이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드라마 관계자는 대하 드라마의 부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대하 드라마 제작, 결국 돈 문제
대하 드라마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긴 호흡을 담아낼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역사, 혹은 역사적 인물을 다룬다. 하지만 사극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되야 한다. 역사적 고증이 반영된 의상과 대규모 전쟁 장면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보통 사극은 시청률 30%가 넘어야 제작비가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의 시청률은 한자릿수 시청률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극을, 그것도 대하 드라마를 제작하는 건 적자를 안고 가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전쟁 장면을 위해서 각종 갑옷을 보조 출연자에게도 지급을 해야하기 때문에 모든 의상을 자체 제작을 해야 한다. 또한 당시 주요 교통 수단인 말이 등장하기 때문에 동물 출연료가 발생을 한다. 더구나 드라마 제작 현장의 ‘주 52시간 근로’로 인해 인건비 상승 등도 대하 드라마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드라마의 경우 PPL을 통해서 제작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의 흐름을 깨는 PPL이 등장해 시청자들이 비판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때로는 영리하게 PPL를 해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대하 사극은 이러한 PPL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광고 관계자는 “광고주들은 사극보다는 현대물을 선호한다. 자신의 제품을 드라마 속에 넣어 광고를 해야 하는데 사극에는 PPL을 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제작진의 실수로 현대 물건이 나오거나 배우들이 염색, 혹은 시계를 차는 것만으로도 사극 마니아들은 옥의 티를 지적하며 완성도에 불만을 품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하 사극은 PPL 자체가 불가능 한 것이다.
달라진 시청자의 안목
시청자들의 수요 역시 빠르게 변화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인 배경, 시대적 배경을 재현하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최근 시청자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양질의 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대하 드라마의 제작 형태인 ‘재현’에 만족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다룰 수 있는 시대의 한계도 시청자들이 대하 사극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사실상 과거의 주요한 시대, 주요 인물은 이미 드라마, 영화 등으로 나올 만큼 나온 상태다. 그렇다고 시청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시대나 인물을 다루기에는 사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작가의 상상력으로 빈 공백을 채워야 하는데 이는 역사 왜곡 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관계자의 말처럼 사료가 충분한 시대나 인물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상황이고 사료가 충분치 않은 시대나 인물은 역사 왜곡 논란에 빠질 수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의 경우도 기존의 역사적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창제를 다루면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더욱이 넷플릭스 등을 통해 시청자들은 고 퀄리티를 자랑하는 해외 사극을 접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스파르타쿠스’ ‘류더스’ ‘롬’ ‘마르코 폴로’ 등이 국내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롬’의 경우 편당 900~1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대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과 사전 제작 등으로 국내 대하 드라마와 차원이 다른 영상미와 완성도를 보여줬다. 이러한 상황에 국내 시청자들은 사극 마니아 사이에서 ‘사골’이라고 칭할 정도의 뻔한 시대와 인물, 제작비 부족으로 인한 빈약한 전쟁 장면 등 꾸준히 문제 지적을 받고 있는 국내 대하 사극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밖에 없다.
해외 판로도 사실상 제로
국정감사에서 언급된 국내 OTT가 해외 진출로 인한 판로 개척 혹은 해외 방송사나 글로벌 OTT를 통한 제작비 역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대하 드라마가 해외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동남아 지역에서 판매된 작품들은 퓨전 사극이다. 더구나 해외 방송사나 글로벌 OTT가 요구하는 한국 드라마 장르는 로맨스다”고 했다.
물론 ‘대장금’ ‘주몽’과 같은 대하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방송사를 통해 TV 시청보다는 OTT 시장을 통한 해외 진출이 주요하다. 그런 가운데 실제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인 국내 시대물 드라마는 퓨전 사극이다. ‘나의 나라’ ‘기황후’ ‘미스터션샤인’ ‘성균관 스캔들’ 등이 대표적이다. 대하 드라마는 단 한 편도 없다는 점이다.
맥 끊기면 이어붙이기도 힘들다
국내 사극 마니아 층에서 대하 사극 부활을 두고 가장 걱정하는 요인이 인력 부재를 꼽는다. 대하 사극은 기존의 드라마와 달리 긴 호흡을 자랑한다. 그만큼 긴 호흡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필력 좋은 작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는 되려 편수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기본 20부작인 드라마는 어느 순간 16부작, 12부작으로 편수가 줄어들었다. 그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대하 드라마의 긴 호흡을 감당할 작가가 남아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역사, 혹은 역사적 인물을 다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료를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역사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한 뒤에 대본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하기에는 최근 드라마 제작 시장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완성도 높은 대본이 나올 때까지 제작사, 방송사가 묵묵히 지원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끝으로 과거 사극이 활발히 제작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극 전문 배우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6년을 끝으로 4년이라는 공백이 생기면서 자연스러운 사극 전문 배우들의 세대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최근 퓨전 사극의 경우 기존의 정통 사극과 달리 말투나 복식 등에 자유로운 편이라 대하 드라마가 가진 정통 사극의 분위기를 다시금 구축해야 하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한국과 다른 일본, 중국 대하 드라마
명맥이 끊긴 한국 대하 드라마와 달리 일본과 중국은 꾸준히 대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NHK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대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NHK는 올해 ‘기린이 온다’를 제작했다. 일본 대하 드라마 역시 국내와 마찬가지로 평균 시청률의 못 미치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HK는 2021년에는 ‘청천을 찔러라’가, 2022년에는 ‘가마쿠라도노의 13인’이 이미 제작이 확정된 상태다. 중국 역시 다양한 사극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중국 사극 작품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더구나 총 95회 분량의 ‘삼국지’의 경우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이라는 점이다. 최근 정통 사극이 아닌 무협을 기반으로 한 중국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 ‘대장금’이나 ‘주몽’을 통해 이미 해외 시장에서도 국내 대하 사극의 경쟁력이 입증됐다. 하지만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 상황을 보면 과거 제작 시스템에 갇혀서 해외 OTT 시장과의 협업 등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제때 구축되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중국 제작 상황만 보더라도 자체 제작된 드라마의 판매 뿐 아니라 넷플릭스와 협업한 무협 드라마 제작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징비록 장영실. 사진/KBS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