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9호 (2020.11.16) [66]목차보기
[한세희의 테크&라이프] 넷플릭스 VS 통신사… 잘 싸우는 법은?
“망에 공짜로 편승” vs “이중 과금, 책임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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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춘이 나른한 주말에 편안하고 무익하게 세월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 게임, 웹툰, 웹소설, 혹은 넷플릭스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허송세월하게 만드는 엔터테인먼트는 문화적 창작물인 동시에 큰 사업 기회이다. 요즘은 ‘소비자의 시간을 점유하려는 경쟁’이라고 멋있게 표현한다.
최근 가장 성공적인 허송세월 제조기는 넷플릭스다. 10월 기준 세계 1억9500만명이 가입해 보고 있으며 덕분에 넷플릭스는 지난해 201억 6000만 달러(약 2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넷플릭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눈에 띄게 성장 중이다. 국내 가입자는 9월 기준 33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84만명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웨이브’의 3분기 유료 가입자 수인 230만명을 훌쩍 앞선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9월 국내 넷플릭스 결제액은 462억원이다.
너무 성공적인 나머지 넷플릭스는 분기 실적 발표에서 특별히 우리나라를 언급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들의 영화와 드라마를 전송하는 국내 통신사는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키며 돈을 벌어가면서도 망 이용료를 내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망 공짜로 쓰나?
정부와 국회는 ‘역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부가통신사업자에 통신 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를 지우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2019년 11월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 망 이용 대가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중재를 요청했고, 지난 4월 넷플릭스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말 1차 변론을 계기로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이용자에게 전송하고 망 품질을 유지 관리하는 것은 통신사의 책임”이라며 “사용자에게 이미 요금을 받는 통신사가 콘텐츠 제공자(CP)에게 이중 과금을 하려 한다”는 입장이다. 통신 업계는 구글이나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해외에서 망 사용료를 내면서 한국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며 이중성을 비판한다. 넷플릭스가 일으키는 트래픽은 국내 전체 트래픽의 약 5%로, 네이버나 카카오 트래픽의 2~3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넷플릭스는 망을 공짜로 쓰고 있을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공짜가 가능한가? 이 궁금증을 풀려면 인터넷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중앙 관리자가 없다. 네트워크의 일부가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파괴되어도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 통신이 유지되도록 설계된 것이 인터넷이다.
네트워크마다 규모는 다르다. 어떤 한 지역의 통신망은 고객에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규모가 더 큰 다른 네트워크에 연결해야 한다. 더 큰 네트워크는 다시 국가 수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더 큰 망에 물린다. 이런 대형 네트워크들은 다시 다른 나라들의 초대형 네트워크와 연결, 전 세계에 걸쳐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이들 망 사이의 통신료는 네트워크가 서로 물릴 때 오가는 데이터의 양 등을 고려해 정산한다. 그런데 국제 규모의 대형 통신망을 운영하는 회사들은 서로 오가는 데이터가 워낙 방대하고 일일이 사용료를 계산하려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냥 서로 정산하지 않고 데이터를 주고받곤 한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자신들의 서버에 물린 통신사, 주로 미국의 통신사에 망 이용료를 낸다. 넷플릭스의 콘텐트는 이후 세계 각지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다른 나라로 흘러간다. CP는 이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네트워크 제공 기업에 사용료를 내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 서비스를 해외에서 쓴다고 해서 네이버가 해외 사용자가 가입한 통신사에 돈을 지급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통신사들이 넷플릭스에 망 이용료를 요구하고, 넷플릭스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분쟁은 보통 넷플릭스의 트래픽을 받아 다른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중계 통신사와 국제 규모의 초대형 통신사 사이에서 벌어진다.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코젠트 같은 인터넷 백본 사업자와 계약해 트래픽을 내보내고, 코젠트는 다시 컴캐스트 같은 대형 통신사 망에 연결해 트래픽을 보낸다. 코젠트와 컴캐스트 같은 회사들은 서로 데이터 착발신에 대한 포괄적 계약을 맺은 상태다.
그런데 넷플릭스와 유튜브 트래픽이 늘어나자 컴캐스트나 프랑스 대형 통신사 오렌지는 용량을 증설하지 않거나 화질 저하를 방관해 사용자 경험을 낮추는 방식으로 CP들을 압박했다. 넷플릭스나 구글은 결국 이들 대형 통신사와 직접 연결 계약을 체결하고 사용료를 냈다. 이것은 통신사의 현명한 비즈니스 전략이라 할 수 있지만, 망에 대한 접근을 볼모로 한 갑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넷플릭스는 고화질 영상의 안정적 공급이 최우선 과제인 만큼 통신사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네트워크는 크고 작은 CP들의 망 접근을 차단하지 않고, 망 사용자는 통신사가 망을 유지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수익을 유지할 사용료를 내는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정확히 각자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큰 틀 안에서 세세한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아쉬운 쪽이 굽히고, 소비자가 더 원하는 쪽의 협상력이 높아진다. 넷플릭스를 보고 싶은데 화질이 열악해 사람들이 통신사를 갈아탄다면 통신사가 아쉬워진다. 사람들이 답답한 넷플릭스 대신 다른 동영상 서비스나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간다면, 그리고 한국이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면, 넷플릭스가 양보할 수밖에 없다.
망 사용료 논쟁은 디지털 독과점의 또 다른 모습?
한가지 문제는 소수의 글로벌, 아니 미국 테크 기업들이 점점 세계 디지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회사는 1~2개밖에 없고, 대부분 미국에 있다. 반면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나 이 사용자에게 망을 제공하는 통신사는 나라마다 있다. 트래픽이 소수 해외 기업에 대거 몰리는 상황에서 과거의 인터넷 시장에서 생겨난 암묵적 상호접속 룰에 대한 의구심은 커진다.
그러니 외국 기업인 넷플릭스를 규제하는 것이 균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서둘러 넷플릭스법을 만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터다. 그런데 만약, (만약이다), 네이버가 한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만들어 외국에서 대박이 난다면, 그리고 외국에서 이 ‘K-플릭스’ 때문에 망 부하가 심하다고 망 사용료를 내라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을까?
그보다는 법과 행정력으로 넷플릭스 팔을 비틀어 우리나라 통신사 망에 직접 연결하고 망 사용료를 내게 하는 편이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이런 걸 감수하고도 그들이 우리 시장에 남아 있도록 시장 크기를 키우거나 한국에서 꼭 사업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나라의 매력을 키우거나,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된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