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이 바라본 로마의 이면...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바바리안> 로마시대 게르만족 영웅실화 이야기
김형욱
20.11.06 16:08최종업데이트20.11.06 16:08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바바리안> 포스터. ⓒ ?넷플릭스
로마 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게르만족을 점령하고 게르마니아 총독으로 바루스를 임명한다. 바루스는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가축과 곡물을 세금으로 걷는다. 이에 게르만족의 수장이자 케루스키 족장 세기메르는 여러 족장을 모아 로마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의한다.
치열한 토론 끝에 이들은 로마에 가축과 곡물을 바치고 평화를 유지하기로 한다. 그러나 열심히 모아 보지만 로마가 원하는 만큼 모을 수 없었다. 로마군과의 실랑이가 벌어지던 와중에, 케루스키족 부족장 세르게테스의 딸 투스넬다가 위기에 빠진다. 투스넬다의 어린 남동생도 이를 막으러 나섰다가 크게 다치고 만다. 투스넬다와 그의 연인 폴크빈은 복수를 결심한다.
투스넬다와 폴크빈은 친구들과 함께 로마군 진영을 급습한다. 그들의 목표는 로마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독수리 형상이었다. 로마에게 실질적 피해를 주진 못하겠지만 상징적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결국 성공하는 그들, 게르만족 모두가 환영하지만 다가올 후과가 무섭다. 하지만 로마군이 수없이 많은 게르만족 진영을 모두 조사할 수는 없다. 그들이 안심하는 사이, 로마군이 단번에 그들에게 당도한다. 지휘관은 다름 아닌 아리였다. 케루스키족장 세기메르의 아들이자 투스넬다, 폴크빈의 절친 말이다.
아리는, 과거 로마의 게르만족 점령 때 세기메르가 평화협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로마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두 아들 중 첫째다. 바루스 총독의 양아들로서 지휘관의 보직으로 아르미니우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그는 아버지도 만나고 어릴 때의 절친 투스넬다와 폴크빈과도 재회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다.
아르미니우스로서는 두 말 할 것 없이 독수리 형상만 가져가서 점수를 따면서, 케루스키족의 짓이 아니라고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투스넬다와 폴크빈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그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한 번 게르만족 전체를 한데 모아 일으켜 로마에게 반기를 들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친로마파 세르게테스가 뒤에서 로마에 붙어 그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 아르미니우스, 투스넬다와 폴크빈, 세르게테스, 바루스 등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로마와 게르만족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로마 시대, 게르만족의 이야기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의 게르마니아 실화를 바탕으로 재탄생된 독일 드라마 <바바리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되었다. 폴크빈과 몇몇을 제외하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실존 인물들이다. 신임 게르마니아 총독 바루스의 당연할 수 있는 세금 요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토이토부르크 전투로 끝난다. 아리가 로마로 끌려간 건 서기전 10년쯤이고, 아르미니우스가 이끈 토이토부르크 전투는 서기 후 9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을 이룩했던 로마인 만큼, 로마 시대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콘텐츠화되어 우리를 찾아왔다. 오랜 역사와 방대한 영토와 위대한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배울 점도 무궁무진하다. 자연스럽게 로마의 로마에 의한 로마를 위한 이야기들만 듣게 되는 것이다.
종종 로마 시대의 로마 아닌 이들의 이야기가 찾아온다. 그들에 대항하거나 그들과 관련된 이들 말이다. 대표적 인물로 한니발과 클레오파트라가 있을 테고, 대표적 직업(?)으로 검투사가 있을 테며, 대표적 나라로 그리스가 있을 테다. 그런데,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토이토부르크 전투와 관련된 이야기는 <바바리안>이 처음이다. 로마 시대 게르만족 이야기 자체를 영상 콘텐츠로 들어본 적이 없다시피 하다.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인정투쟁과 독립투쟁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생각하면, 절대로 불과 몇몇 인간이 이뤄냈을 것 같진 않다. 한편으론, 불과 인간 한 명이 이뤄낸 위대한 역사가 많지 않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 작품은, 아르미니우스로 대표되는 몇몇 인간이 바꾼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화도 드라마틱하지만, 드라마는 더욱더 드라마틱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실화를 거의 있는 그대로 따라가면서 드라마틱하기가 쉽지 않다.
<바바리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한 개인의 '인정투쟁'과 부족의 '독립투쟁'이 아닌가 싶다. 아르미니우스는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적국 로마에 떨어진다. 바루스 의원에게 맡겨져 살아남고자 투쟁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세기메르를 잊고 자신을 알아 준 바루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지휘관이 되고 기사 작위까지 얻게 된 아르미니우스지만, 바루스 또한 그를 이용하고자 게르마니아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에서 홀로 우뚝 서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간 것이다.
아르미니우스가 홀로서기를 선언하며 함께한 이들이 다름 아닌 투스넬다와 폴크빈, 그들은 게르만족 독립투쟁의 상징이다. 게르만족의 대 로마 화평 정책을 한순간 돌이켜 세운 이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다. 투스넬다의 남동생이 로마군에 의해 크게 다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투스넬다를 사랑하는 폴크빈이고 말이다. 역사적이고 대의적인 이유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한 목숨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묵직하다
주요 캐릭터들이 입체적이라고 말하기 힘든 면이 있다. 오히려 굉장히 단순하다고 하겠다. 결정적 사건 때문에 굳은 결심을 한 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기에 스토리는 입체적일 수 있었다. 나름의 신념들이 내외부로 부딪히고 또 이어지며, 헷갈리지만 이해되게끔 선을 지킨다. 억지가 없다. 실화를 상당 부분 빌려온 힘이 실렸다고 하겠다.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묵직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빨려들어가게 하면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같은 감정선 대신 어느 순간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특히, 주인공 아르미니우스로선 확고히 보장된 성공의 길을 내팽겨치고 확고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도박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했을 때 성공의 길을 가야 하지만, 신의 개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회들이 보이기에 도박의 길을 가게 된다.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 도박으로 이끌었지만, 정작 도박을 성공시키려면 어느 때보다 또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명품 드라마의 자질이 충분한 <바바리안>, 다분히 게르만족의 입장에서 바라본 로마 시대의 일면이다.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독일 드라마 또한 접하기 힘들다. 넷플릭스라는 인터넷 영상 서비스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은 다시 한데 모여 주류를 형성하겠지만, 또다시 퍼져 다양성을 형성시킬 것이다. <바바리안>은 다양성에 기반한 게르만족 이야기를 내보이며 콘텐츠 자체로 빛을 발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콘텐츠 외적으로도 다양성에서 빛을 발한다.
치열한 토론 끝에 이들은 로마에 가축과 곡물을 바치고 평화를 유지하기로 한다. 그러나 열심히 모아 보지만 로마가 원하는 만큼 모을 수 없었다. 로마군과의 실랑이가 벌어지던 와중에, 케루스키족 부족장 세르게테스의 딸 투스넬다가 위기에 빠진다. 투스넬다의 어린 남동생도 이를 막으러 나섰다가 크게 다치고 만다. 투스넬다와 그의 연인 폴크빈은 복수를 결심한다.
투스넬다와 폴크빈은 친구들과 함께 로마군 진영을 급습한다. 그들의 목표는 로마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독수리 형상이었다. 로마에게 실질적 피해를 주진 못하겠지만 상징적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결국 성공하는 그들, 게르만족 모두가 환영하지만 다가올 후과가 무섭다. 하지만 로마군이 수없이 많은 게르만족 진영을 모두 조사할 수는 없다. 그들이 안심하는 사이, 로마군이 단번에 그들에게 당도한다. 지휘관은 다름 아닌 아리였다. 케루스키족장 세기메르의 아들이자 투스넬다, 폴크빈의 절친 말이다.
아리는, 과거 로마의 게르만족 점령 때 세기메르가 평화협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로마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두 아들 중 첫째다. 바루스 총독의 양아들로서 지휘관의 보직으로 아르미니우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그는 아버지도 만나고 어릴 때의 절친 투스넬다와 폴크빈과도 재회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다.
아르미니우스로서는 두 말 할 것 없이 독수리 형상만 가져가서 점수를 따면서, 케루스키족의 짓이 아니라고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투스넬다와 폴크빈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그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한 번 게르만족 전체를 한데 모아 일으켜 로마에게 반기를 들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친로마파 세르게테스가 뒤에서 로마에 붙어 그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 아르미니우스, 투스넬다와 폴크빈, 세르게테스, 바루스 등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로마와 게르만족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로마 시대, 게르만족의 이야기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의 게르마니아 실화를 바탕으로 재탄생된 독일 드라마 <바바리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되었다. 폴크빈과 몇몇을 제외하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실존 인물들이다. 신임 게르마니아 총독 바루스의 당연할 수 있는 세금 요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토이토부르크 전투로 끝난다. 아리가 로마로 끌려간 건 서기전 10년쯤이고, 아르미니우스가 이끈 토이토부르크 전투는 서기 후 9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을 이룩했던 로마인 만큼, 로마 시대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콘텐츠화되어 우리를 찾아왔다. 오랜 역사와 방대한 영토와 위대한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배울 점도 무궁무진하다. 자연스럽게 로마의 로마에 의한 로마를 위한 이야기들만 듣게 되는 것이다.
종종 로마 시대의 로마 아닌 이들의 이야기가 찾아온다. 그들에 대항하거나 그들과 관련된 이들 말이다. 대표적 인물로 한니발과 클레오파트라가 있을 테고, 대표적 직업(?)으로 검투사가 있을 테며, 대표적 나라로 그리스가 있을 테다. 그런데,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토이토부르크 전투와 관련된 이야기는 <바바리안>이 처음이다. 로마 시대 게르만족 이야기 자체를 영상 콘텐츠로 들어본 적이 없다시피 하다.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인정투쟁과 독립투쟁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생각하면, 절대로 불과 몇몇 인간이 이뤄냈을 것 같진 않다. 한편으론, 불과 인간 한 명이 이뤄낸 위대한 역사가 많지 않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 작품은, 아르미니우스로 대표되는 몇몇 인간이 바꾼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화도 드라마틱하지만, 드라마는 더욱더 드라마틱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실화를 거의 있는 그대로 따라가면서 드라마틱하기가 쉽지 않다.
<바바리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한 개인의 '인정투쟁'과 부족의 '독립투쟁'이 아닌가 싶다. 아르미니우스는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적국 로마에 떨어진다. 바루스 의원에게 맡겨져 살아남고자 투쟁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세기메르를 잊고 자신을 알아 준 바루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지휘관이 되고 기사 작위까지 얻게 된 아르미니우스지만, 바루스 또한 그를 이용하고자 게르마니아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에서 홀로 우뚝 서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간 것이다.
아르미니우스가 홀로서기를 선언하며 함께한 이들이 다름 아닌 투스넬다와 폴크빈, 그들은 게르만족 독립투쟁의 상징이다. 게르만족의 대 로마 화평 정책을 한순간 돌이켜 세운 이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다. 투스넬다의 남동생이 로마군에 의해 크게 다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투스넬다를 사랑하는 폴크빈이고 말이다. 역사적이고 대의적인 이유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한 목숨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묵직하다
주요 캐릭터들이 입체적이라고 말하기 힘든 면이 있다. 오히려 굉장히 단순하다고 하겠다. 결정적 사건 때문에 굳은 결심을 한 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기에 스토리는 입체적일 수 있었다. 나름의 신념들이 내외부로 부딪히고 또 이어지며, 헷갈리지만 이해되게끔 선을 지킨다. 억지가 없다. 실화를 상당 부분 빌려온 힘이 실렸다고 하겠다.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묵직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빨려들어가게 하면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같은 감정선 대신 어느 순간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특히, 주인공 아르미니우스로선 확고히 보장된 성공의 길을 내팽겨치고 확고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도박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했을 때 성공의 길을 가야 하지만, 신의 개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회들이 보이기에 도박의 길을 가게 된다.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 도박으로 이끌었지만, 정작 도박을 성공시키려면 어느 때보다 또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명품 드라마의 자질이 충분한 <바바리안>, 다분히 게르만족의 입장에서 바라본 로마 시대의 일면이다.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독일 드라마 또한 접하기 힘들다. 넷플릭스라는 인터넷 영상 서비스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은 다시 한데 모여 주류를 형성하겠지만, 또다시 퍼져 다양성을 형성시킬 것이다. <바바리안>은 다양성에 기반한 게르만족 이야기를 내보이며 콘텐츠 자체로 빛을 발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콘텐츠 외적으로도 다양성에서 빛을 발한다.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