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은 영화가 있다. 바로 '에놀라 홈즈'다. 누군가는 '페미니즘 영화다' 혹은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보면 좋은 영화다' 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한 인간의 성장 영화 같기도, 모험 영화 같기도 하다. 가족 영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 영화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여성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에놀라가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듯, 이 영화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다.
물론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거나, 기존 불합리한 관습에 대항하는 여성의 말과 행동을 보면 페미니즘 정신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주인공 에놀라는 '좋은 신부' 혹은 '좋은 어머니'를 양육하기 위한 여자 기숙학교의 관습을 거부한다. 좋아하는 남자애가 먼저 고백하길 기다리기 보다 자신이 먼저 대놓고 고백을 한다. 그리고 에놀라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착용해야 했던 코르셋을 거부한다. 그녀는 코르셋을 자신을 보호하거나 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할 뿐이다. 또한 영향력 있는 가문의 '튜크스베리 자작'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제안했지만 에놀라는 거절한다. 매 순간 에놀라 홈즈는 자신의 두 다리로 독립하려 애쓴다. 에놀라의 성장 방향은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좋은 성장의 본보기는 에놀라 홈즈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에놀라는 한 인간이 갖는 자유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목표를 세우고, 주체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에놀라는 이런 에너지를 자신에게만 쓰지 않고 튜크스베리 자작을 도와주는데에도 사용한다.
튜크스베리 자작은 귀족원으로 입성한 후, 상원 활동을 통해서 진보적인 사유지 관련 법안을 상정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군인이 되라'는 가족의 입김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그 역시 어떤 관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몸이다. 결국 자작은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에놀라 홈즈는 튜크스베리를 내칠 수도 있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그의 진심과 자유 의지를 확인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만일, 에놀라 홈즈가 없었다면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에놀라의 도움을 받고 무사히 탈출한 튜크스베리는 이후 에놀라의 탈출을 돕기도 한다.
영화는 '에놀라 홈즈'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관객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톤을 유지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경쾌하고 발랄하고 통쾌하다. 또한 영화는 엄마의 역사와 서사 역시 적당히 버무려 내 지루함을 덜어낸다.
반면 에놀라가 튜크스베리 자작을 도와주게 된 동기와 개연성이 약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셜록 홈즈 시리즈나 심오한 추리 영화는 아니라서 보는 이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낸시 스프링어의 서적 '에놀라 홈즈 시리즈' 중 '사라진 후작'을 바탕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