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민방의 차이란 “콘텐츠 투자와 대주주 역할”[민방 30년 토론회] 책임지지 않는 대주주, 손놓은 방통위
김혜인 기자 승인 2020.10.28 07:41
[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콘텐츠 강자로 우뚝 선 넷플릭스와 지상파 SBS의 차이는 무엇일까.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27일 열린 <민방 30년, 생존과 개혁의 핵심 과제는?> 토론회에서 콘텐츠 투자와 주주의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2002년 나스닥 상장 당시 1달러에 불과했던 넷플릭스 주가는 현재 500달러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18년 간 단 한 차례의 주주 배당을 실시한 적이 없으며 이를 비난하는 주주는 없다. 오히려 투자 규모를 확대해 콘텐츠 제작에 쏟아붓고 있다.
윤창현 SBS본부장은 “SBS는 주가가 폭락한 반면 넷플릭스의 기업가치는 500배 성장했다. 대주주는 SBS에 380억 투자해 배당금 1000억 원을 빼먹는 동안 넷플릭스 주주들은 배당을 재투자했다”고 비교했다. 또한 “지배주주 소유지분 제한이 투자를 가로막는다고 목소리 높이는 민영방송 대주주와 달리 넷플릭스 창업자의 지분율은 2%에 못 미친다”며 “기업 경영은 지분율로 하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정필모, 조승래, 한준호 의원과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주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주관한 <민방 30년, 생존과 개혁의 핵심 과제는> 토론회가 2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기업집단의 부속품이면서 직접 지배를 받는 기업, 직접 지배의 영향력 아래에 있음에도 어떤 투자도 받지 못하는 기업, 그러나 지역 및 중앙 정치를 위한 상징 자본으로 사용되는 기업이 민영방송의 현주소”라고 짚었다.
김 위원은 “대주주들은 천억 이천억씩 자회사에 투자하는 등 내부 거래를 하면서 민영방송사에 전혀 투자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민영방송의 소유구조에서 방송사들은 대주주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역할만 수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윤창현 SBS본부장은 SBS의 대주주인 태영그룹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태영건설은 민영방송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2020년 도급순위 14위이며 자산규모는 SBS 창립 전 8천억 원 규모에서 현재 9.7조 원으로 11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자산규모 1조가 넘는 SBS의 기업가치는 현재 3,000억을 넘지 못하고 있다.
윤 본부장은 “태영건설의 SBS 투자액을 보면 창업 당시 자본금 300억, 코스닥 상장시 유상증자를 통한 80억 총 380억 원이 전부였다. 의미있는 재투자는 시행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SBS 입장에서는 신규 자본의 유입 없이 건설자본의 지배력만 높이는 부작용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주주가 방송사에 투자하지 않으면 콘텐츠 질은 떨어지고 제작 인력은 떠나게 된다. 박정희 부산민언련 사무국장은 KNN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 건강정보 프로그램 4편, 재무정보 프로그램 2편, 특집프로그램 등 절반이 넘는 프로그램이 노골적인 협찬 성격을 보였다고 했다. 의학프로그램 중에는 트롯 노래 가사에 맞춰 수술을 권유하기도 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경우, 뉴스에서 최대주주가 투자한 사업체인 테마파크 개장 소식을 전하거나, 대주주인 건설사의 아파트 분양 소식을 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SBS에서는 뉴미디어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스브스 뉴스’를 만든 기자가 최근 퇴사했다.
8월 25일 열린 '한국미디어 경영학회 특별세미나'에서 발제한 임정수 서울여대 교수의 자료 일부 |
이날 토론회에서 대주주의 콘텐츠 투자를 강제해야 한다는 안이 공감대를 얻었다. 올해 넷플릭스는 제작비로 21조, 한국IPTV는 1조 1712억원을 투자한 반면, 지상파는 3사를 합해 1조 원 규모로 집계됐다. 윤창현 본부장은 “넷플릭스 자본이 한국에 들어와 제작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는데 지상파는 자본이 없어 이를 바라보고만 있다”며 “SBS의 대주주가 방송사업을 계속할 의지가 있다면 재투자 의지를 보여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영방송 재허가 결정권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조건으로 부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원 위원은 민영방송 재허가제도를 ‘면허 갱신제’로 전환해 방송사업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주주는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넥센(KNN)이나 삼라(울산방송), 태영(SBS) 등은 자산규모 10조를 앞두고 있는 대기업이다. 해당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소유하고 있는 방송사 콘텐츠에 투자하지 않는 건 문제”라며 “방송사업을 하려면 콘텐츠 투자계획을 반드시 밝히고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운 언론노조 특임부위원장은 ‘채널 임대제’를 제안했다. 방송사업자가 국가로부터 특정 기간 채널을 임대받은 뒤 다시 입찰이 진행돼 다른 사업자에게도 방송사 운영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채널 허가제인 현 제도에서는 대주주가 제 역할을 못해도 허가권을 반납하지 않는 이상 방송사를 평생 소유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대안이다. 양 위원장은 40%로 확대된 대주주의 소유지분 한도를 10%로 축소하는 방안, 시청자위원의 역할을 강화해 프로그램 편성의 자율권 침해를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방통위의 의지를 물었다. 앞서 SBS 노조는 사장임명동의제가 포함된 노사합의서를 재허가 조건에 포함시켜 달라고 했지만, 방통위는 이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방송 콘텐츠 투자와 관련된 조건 명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처장은 “종편 재승인 심사 때는 구체적인 금액까지 명시해 투자 계획안을 제출받으면서 민영방송에는 왜 안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방통위가 유독 민영방송 문제는 외면하고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방통위는 사주에게 구체적인 콘텐츠 투자 계획이 포함된 사업계획서를 받아 그 수준에 맞춰 허가를 해야하며, 지역 민영방송 심사시 지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의 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인 기자 key_main@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