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K-콘텐츠 시리즈,
이번엔 웹툰 잡아라
유승목 기자
2020.10.22 16:32
영화·드라마·게임 등 원천콘텐츠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매력…국정감사에서도 "웹툰 해외진출 지원해야"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는 K-콘텐츠로 가득하다. 방탄소년단(BTS)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라 말하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극찬하더니, 지난달엔 외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국내 웹툰을 소개해 화제를 낳았다. 허니비 작가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는 '아는 여자애'의 한 장면인데, 지난 7월부터 글로벌 서비스되며 파울로 코엘료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코로나19(COVID-19)로 국내 산업 전반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지만, 언택트(Untact·비대면)를 바탕으로 한 K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BTS로 대표되는 음악과 '기생충'으로 저력을 알린 영화 뿐 아니라 넷플릭스를 타고 드라마까지 '집콕' 중인 세계인을 사로잡는 가운데 1020세대나 보는 국내용 콘텐츠로 여겨졌던 '웹툰'이 콘텐츠 신(新)한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K-웹툰' 인베이젼 시작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웹툰 콘텐츠 시장의 성장성이 돋보인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해외 콘텐츠시장을 분석한 결과 올해 전 세계 만화시장은 81억 달러(약 9조2000억원) 규모다. 일본이 4조6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중국, 미국도 1조원이 넘는다. 전통적인 종이만화 소비가 하락세지만, 디지털 만화가 이를 대체하며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다. 만화산업에서 PC·스마트폰을 통해 소비하는 디지털 만화 비중은 72%를 차지한다.
디지털 만화 시장을 이끄는 것은 단연 한국이다. 디지털 만화를 일컫는 고유명사가 된 '웹툰'이란 용어와 스마트폰에 최적화한 세로 스크롤 형식으로 진행방식 자체가 한국에서 나왔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1500억원 수준이던 국내 웹툰시장이 2018년 8000억원을 기록, 올해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등 한국은 이미 세계 주요 만화시장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주목할 점은 국내 웹툰시장 규모가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만화시장이 K웹툰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단 것이다. 국내 대표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가 2014년 미국을 시작으로 100여 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 8월 글로벌 월간 순 이용자(MAU)가 6700만명, 월 거래액 800억원을 돌파하며 글로벌 1위 플랫폼으로 올라섰다. 네이버 '라인 망가'와 카카오 '픽코마'는 만화의 고장 일본 시장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점유할 정도다. 일본에서 온 만화 문화가 K웹툰이 돼 일본을 점령한 셈이다.
MZ세대 잡은 스낵컬처…탄탄한 생태계
네이버웹툰 미국 페이지 메인화면. /사진=네이버웹툰 |
글로벌 만화 시장이 한국 웹툰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플랫폼과 콘텐츠 경쟁력 때문이란 분석이다. 영상이나 활자와 달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 가능한 '스낵컬처'의 대표 콘텐츠란 점에서 MZ(밀레니얼·제트)세대를 사로잡았다. 일찌감치 정착한 세로 스크롤 방식의 만화 진행방식도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특화됐단 평가다.
무엇보다 콘텐츠 경쟁력에서 차별화 요소가 크다. 히어로물 등 다소 천편일률적인 미국 만화 시장에서 각종 로맨스나 학원물, 가벼운 일상을 다루는 국내 웹툰 소재는 신선한 반응을 얻고 있다. '외모지상주의'나 '여신강림' 등이 각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고, '신의탑'이나 현지에서 발굴한 '로어 올림푸스'는 북미와 유럽권 소비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단 반응이다.
이처럼 다양한 웹툰이 쏟아지는 이유는 웹툰 생태계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요일 웹툰에 연재할 경우 신인작가의 경우에도 연봉이 1억원에 가깝다. 음원 저작권과 달리 네이버웹툰 결제 쿠키의 경우 창작자인 작가에게 대부분이 돌아갈 만큼 인기 작가의 수익구조가 탄탄하다.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북미 아마추어 창작 공간 플랫폼 '캔버스'에서 아마추어 작가 64만명, 프로작가 2000명이 활동하고 있다.
웹툰의 묘미는 IP확장성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왼쪽)는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영상화돼 화제를 낳았다. /사진=네이버웹툰, OCN |
콘텐츠 산업에 있어 웹툰의 가치는 단연 원천콘텐츠의 확장성에 있다. 사실 웹툰 등 만화콘텐츠의 수출액은 전체 콘텐츠 산업 분야를 놓고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연 평균 15%씩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2018년 수출액이 46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웹툰 IP(지식재산권)를 통해 게임부터 영화, 드라마, 웹소설,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전 장르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유즈'인 셈이다.
이미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들이 국내에선 익숙하다. '신과 함께'와 개봉을 앞둔 '승리호'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끈 '롯폰기 클라쓰'는 국내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태원 클라쓰'의 현지화 버전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쌉니다 천리마마트' 등은 드라마로 탈바꿈해 인기를 끌었다. 웹툰 '스위트홈'과 '지옥'은 '킹덤'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나온다.
이에 따라 K웹툰 경쟁력을 강화해 신한류의 첨병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높아진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웹툰은 그 자체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무한한 부가가치 창출의 잠재성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 중 하나"라며 "웹툰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