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그들이 K팝을 밝혔는데, 우린 왜 이 산업의 불편한 진실이 눈에 밟힐까
김지예 기자 kimg@kyunghyang.com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저 하늘 높이 뜬 별의 날씨를 가늠할 수 없듯이, 화려한 ‘스타’일수록 그 진면목을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성공 이면에 가려졌던 스타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통해 레이디 가가와 테일러 스위프트 등 세계적인 팝 스타의 ‘맨 얼굴’을 꾸준히 담아온 넷플릭스가 이번엔 K팝 가수 최초로 그룹 블랙핑크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K팝이라는 세계적 현상의 상징처럼 굳어진 ‘블랙핑크’의 이름을 만들기까지, 연습생 시절부터 꼬박 10년을 쏟아부은 멤버들의 진솔한 목소리가 담겼다. 지난 14일 전 세계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이야기다.
“블랙핑크가 특별하고 눈에 띄는 이유는 다양한 문화의 결합이에요.”(프로듀서 테디)
2016년 8월 데뷔 이래, 계속해서 정점을 갱신해온 5년이었다. 데뷔하자마자 K팝 시장을 장악하고, 곧 월드투어 전석 매진과 세계 최대 음악 축제로 꼽히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걸그룹으로 거듭난 블랙핑크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소금. 산. 지방. 불>로 유명한 감독 캐럴라인 서는 각기 다른 국가와 문화권에서 자란 멤버 4명의 성장기부터 차분히 되짚기로 한다. ‘다양한 문화의 결합’이 성공의 힘이 됐다는 테디의 말을 열쇠 삼아 다큐멘터리는 각 멤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K팝을 K팝답게 만드는 것은
연습생 시간이었다는 그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엉뚱하지만 똑 부러지는 맏언니 지수. 어려서 뉴질랜드에서 홀로 유학해 독립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래퍼 제니. 호주 출신 교포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가 돋보이는 보컬 로제. 어릴 때부터 뛰어난 춤 솜씨로 온갖 대회를 휩쓸던 태국의 댄싱 퀸 리사.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한 이들은 시종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국적 불명의 대화를 하면서도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평균 5년에 달하는 연습생 기간, 데뷔 하나만 보고 달려온 노력의 시간을 함께해온 ‘전사’들이기 때문일까. 제니는 말한다. “K팝을 K팝답게 만드는 건 연습생으로 지낸 시간인 것 같아요.” 블랙핑크를 블랙핑크로, K팝을 K팝으로 만드는 ‘연습생’의 시간은 이들을 비로소 하나로 엮어줬다.
가혹한 경쟁의 시간 회고하며
성공에 감격하는 모습 ‘뭉클’
한국 시청자에겐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다. K팝이 ‘고도의 훈련’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은 사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 정상에 오른 K팝 걸그룹 멤버들이 연습생 시절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회고하는 것을 듣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경쟁’이었어”라는 리사의 말은 다른 멤버들의 인터뷰를 통해 점점 선명해진다. “매달 친한 친구가 한 명씩 시험에서 탈락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게 기억나요.” “2주에 한 번씩 쉬는 날이 있고 그다음에 다시 13일간 연습하는 거죠. 하루에 14시간씩 훈련만 하는 거죠.” “어린 소녀들이 모여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거니까요.” 기약도 없는 데뷔를 향한 끝없는 훈련과 경쟁의 연속, 그 끝에 블랙핑크가 탄생했다.
앞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의 도발>(2017), <미스 아메리카나>(2020)가 레이디 가가와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최정상급 스타의 내면과 가치관, 일상을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면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그와 함께 K팝이라는 현상의 골격을 드러내는 이중의 임무를 수행한다. 계속되는 성공과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에 버거워하면서도 코첼라 무대에서 수많은 북미 관객을 만난 뒤 “연습생으로 지낸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라고 감격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진솔한 모습과 함께 드러나는 K팝의 ‘맨 얼굴’이 자꾸 눈에 밟힌다. 성공이 이토록 뭉클하다고 해서, 미성년자 시절부터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가혹한 훈련의 시간이 미화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다큐가 함께 드러내는
K팝의 민낯도 미화될 수 있나
블랙핑크 멤버들의 빛나는 매력과 산업적 모순에 대한 불편함이 1시간19분의 러닝타임 내내 충돌한다. K팝의 어둠을 일부 담아냈지만 결국은 그 빛을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에 대해 “어린 연습생의 재능을 설계하고 상품화하는 YG의 방식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면서 “기업들이 아이들의 노동을 쥐어짜 수백만달러를 챙기는 경제가 여기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늙어도, 새롭고 젊은 세대에 교체돼도 상관없어요. 우리 얘길 하는 분이 아직 있다면 괜찮아요. 우리가 얼마나 밝게 빛났는지 여전히 기억하실 테니까.” 데뷔 5년 만에 ‘세대교체’를 생각하는 리사의 밝은 미소가 못내 씁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세상을 ‘밝힌’ 이 빛나는 상품화의 이면을 우리는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