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영화산업] ①관객이 없다? 영화도 없다!
입력 2020-10-19 06:00
배준호 기자
-글로벌 극장 체인, 코로나19 사태 초기는 관객 없는 것이 최대 문제
-현재는 최신 상영작 부재 시달려 -세계 1위 영화관 체인 AMC “연말에 현금 고갈될 수도”
-2위 시네월드, 007 최신작 개봉 연기에 미국·영국 극장 일시 폐쇄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초기에는 각국의 도시 봉쇄 정책으로 영화관이 폐쇄되면서 관객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소소한 작품은 물론 블록버스터급까지 영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영화관들이 상영작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고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진단했다.
세계 1위 영화관 체인 AMC는 13일(현지시간) “4분기에 극장에 내걸 신작이 크게 줄었고, 관객도 현 수준에서 뚜렷하게 늘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보유 현금이 연말이나 내년 초면 고갈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AMC는 지난 9일 시점에 미국 내 약 600개의 영화관 중 494곳을 재개장했다. 그러나 수용인원은 전체의 20~40%로 제한했다. 세계 2위 영화관 체인 시네월드는 9일 미국 내 ‘리갈시네마’ 극장 536곳과 영국 내 127개 극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시네월드는 극장 폐쇄의 가장 큰 이유로 MGM과 유니버설픽처스가 공동 제작한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최신작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 개봉 연기를 꼽았다. 이 영화는 당초 11월 개봉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작사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를 개봉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결국 ‘노 타임 투 다이’는 내년 4월로 연기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관객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으나, 지금은 대작들의 잇따른 개봉 연기가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워너브라더스의 ‘원더우먼 1984’의 경우, 세 차례나 개봉이 연기된 끝에 올해 크리스마스를 상영일로 잡았으나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원더우먼의 감독 패티 젠킨스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극장에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영화관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 세계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디즈니 산하 마블의 영화는 올해 단 한 편도 극장에 걸리지 못하게 됐다. 올해 5월 개봉 예정이었던 ‘블랙위도우’가 몇 차례의 연기 끝에 결국 내년 5월 개봉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영화관들을 살리기엔 이미 늦었을 수 있다고 한탄했다. 영화관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부상으로 관객 감소에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관객들에게 직접 음식을 날라주는 등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차별화 전략을 펼쳤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부채만 늘어났다. 지난해 AMC의 총부채는 약 100억 달러(약 11조4800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올해 코로나19라는 사상 최악의 재난이 극장가를 덮쳤다. 업계는 블록버스터 상영작의 부재로 9개월 넘게 매출을 거의 창출하지 못했다. 미국 국립극장소유자협회는 “중소 영화관 10곳 중 7곳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파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세계 양대 영화관 체인 AMC와 시네월드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내거나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권 영화관 체인의 현재 주가가 5년 전의 20%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최신작이 절실하다. 투자은행 B.라일리의 에릭 올드 선임 애널리스트는 “할리우드는 영화 산업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들도 극장을 위해 자선을 베풀 여유가 없다. 워너브라더스가 올 여름 개봉한 흥행 기대작 ‘테넷’은 미국에서 4500만 달러 수입에 그쳐 손익분기점 달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언젠가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극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영화관 체인이 직면한 어려움은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비관했다. 영화관들은 허약해진 재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투자를 미루고 관람료를 올리며 문을 닫아야 할 신세가 될 수 있어서다. 그만큼 관객들이 극장과 멀어지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게 된다.
한국 영화관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내 업계도 100년 영화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만났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국내 영화 관객 수는 4687만 명으로 전년 동기의 1억5602만 명 대비 70% 급감했다.
이에 상반기 순손실은 CJ CGV가 2934억 원에 달하고, 롯데컬처웍스가 478억 원, 메가박스중앙이 334억 원의 적자를 내는 등 영화관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내 1위 영화관 체인 CJ CGV는 8월 2209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확신할 수 없는 가운데 대형 개봉작은 씨가 마른 상황이어서 영화관들이 위기를 벗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