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
- 승인 2020.10.15 18:05
북한 배경 '사랑의 불시착', 한·미·일 드라마관객 사로잡은 이유 뭘까
'북한은 악마의 공간'이라는 전통적 선입관 '용기있게 탈피'
낙관적이고 창의적으로 북한사회 바라보기, '북한 컨텐츠'의 글로벌 성공가능성 보여줘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북한학 박사)] K-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세계시장에서 유래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에서 “사.랑.불”이라고도 불리는 이 드라마는 “Crash Landing On You” (CLOY로 불림)로 번역되었다. 한국 시청률 1위(닐슨코리아 제공)와 일본 넷플릭스 시청율 1위 뿐 아니라, 미국 넷플릭스 TV쇼 시청률 6위(미국 Observer 誌 선정), 로튼 토마토 신선도지수 97% 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북한 배경 드라마가 글로벌에서 인기 끈 이유는
이 영화가 글로벌하게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오리콘 뉴스의 설문에 따르면, 관객이 이 드라마에 빠진 이유로서, 1위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76.5%), 2위는 한국의 남북 분단 배경(46.2%), 3위는 남북의 문화, 생활방식의 차이(40.2%)라고 조사되었다. 북한콘텐츠라는 소재와 배경이 성공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로 파악된 것이다.
북한 콘텐츠의 활용이 이 드라마의 세계적 성공에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차분히 살려 보자. 첫째는 한반도 분단의 휴전선이 러브스토리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금단의 장벽으로서 새롭고 창의적으로 재설정되었다는 점이다. 봉건시대 신분의 장벽에 가로막힌 이몽령과 춘향이, 그리고 적대적 가문의 장벽에 괴로워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 남북 분단의 장벽은 리중혁(현빈)과 윤세리(손예진)의 사랑을 모질고 불가항력적이면서도 더더욱 리얼하게 가로막았다.
이로써 두 주인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관객에게 주는 애절함은 더욱 현실적이면서도 극대화되었다. 이러한 한반도 분단의 장벽이 주는 강력한 압박감은 한국 관객에게나 일본 또는 미국의 관객에게나 큰 차이가 없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Crash Landing On You”로 번역되어 미국 넷플릭스 TV쇼 시청률 6위를 기록한 '사랑의 불시착'. 사진= 넷플릭스 캡쳐
둘째, 북한, 남한, 스위스 라는 전혀 다른 세 공간은, 요즘 영화에서 마치 주인공들이 과거나 미래의 시간을 기습적으로 넘나드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고 반전(反轉)하는 대비 효과를 훌륭히 만들어 내고 있다. 북한은 재벌 상속녀가 갑자기 떨어지게 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북한이라는 공간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현실 공간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재벌 가족 간의 끊임없는 탐욕과 경쟁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서로를 도와 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전통적 선입관을 부수는 용감함...'창의적 시선'으로 북한 바라보기
윤세리는, 이 공간을 다녀 온 뒤 그리고 이 공간의 리중혁을 사랑한 이후로, 철저히 이기적이고 고독한 전쟁터에 놓인 기업인에서 이해심 많고 멀리 볼 줄 아는 밝은 성격의 사업가로 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두 사람을 완전히 갈라 놓는 현실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적 공간으로 제시되면서 관객의 숨통을 그때 그때 터여주는 제3의 공간이다.
셋째, 이 영화를 놓고 '비현실적이다, 종북적이다'라고 결코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북한에 대한 지독한 선입관의 장벽을 용감하게 침투하고 부수어 나가는 디테일과 균형감각의 힘이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공간은 기존의 공식대로 전통적 선입관에 따라 일방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북한이 굶주림과 억압으로만 채워진 악마적 공간으로 그려지거나, 남한이 탐욕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만 단순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일본 넷플릭스에서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사랑의 불시착'. 일본인들이 이 드라마에 빠진 이유중 하나는 북한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사진= 일본 넷플릭스 캡쳐
북한에는 경제적 결핍 속에서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따뜻함이 있는 것이 철저한 전문가의 도움에 입각한 '깨알의 디테일'로 표현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북한이라는 사회를 표현하는 데에서 계속 유지되고 있는 디테일하면서도 과감하고 낙관적인 관점이다. 이것은 북한이라는 공간에서 대안적이고 맑은 에너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창의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연관된 새롭고 창의적인 그리고 글로벌한 아이디어와 콘텐츠, 그리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기회는 어떤 분야에, 어떤 것이, 얼마나 있을까? 정치, 경제 분야에 못지 않게 문화 분야에서 그러한 기회는 크게 꽃이 필 가능성이 크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다소 비밀에 싸여 있고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 문화적 모호함, 그리고 이에 대하여 글로벌하게 나타나는 적절한 호기심도 북한 콘텐츠의 매력 중 하나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경제적 결핍 속에서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따뜻함이 있는 북한을 그려내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Made In Korea의 영화, 드라마, 음악, 음식 등 K-컬쳐는 이제 세계를 향하여 그 독창적이고 강력한 파워를 발휘해 나갈 것이다. 그 가운데에 북한 관련 문화콘텐츠는, 새로운 활력과 창의적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러한 기대가 결코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사.랑.불, Crash Landing On You의 세계적 성공은 우리 눈 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 필자인 박기찬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a01027414392@gmail.com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