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잡는 교사부터 男구미호·허당 좀비까지…편견 깬 K-판타지물[SS이슈]
- 입력2020-10-15 06:00
- 수정2020-10-15 06:00
[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좀비로만 점철되던 ‘한국형 판타지(K-판타지)’가 변주하고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최근 남성 구미호를 내세워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지난 7일 베일을 벗은 tvN ‘구미호뎐’이 그 주인공이다. ‘구미호뎐’은 도시에 정착한 구미호와 그를 쫓는 프로듀서의 판타지 액션 로맨스. 앞서 ‘도깨비’에서 저승사자로 분해 화제를 모았던 이동욱이 이번에는 구미호 이연으로 분한다.
한국적 요괴인 구미호를 통해 한국형 히어로물의 탄생을 예고한 ‘구미호뎐’은 늘 여성 캐릭터가 소화했던 구미호를 남성 캐릭터가 소화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신선함이 있다. 마블 히어로와 같이 한국적인 캐릭터들로 히어로물을 만들고 싶었다는 강신효 PD의 기획의도처럼 구미호 뿐만 아니라 반인반요 등 한국의 전통 설화에서 등장하는 각종 캐릭터들이 등장을 예고해 또 한 번의 K-판타지 열풍이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도 K-판타지 드라마 중 하나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한국형 여성 히어로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경미 감독의 말처럼 안은영은 누군가의 욕망이 남긴 흔적인 ‘젤리’를 볼 수 있으며, 자신이 가진 무지개 칼과 비비탄 총으로 오염된 젤리를 무찌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일반적인 영웅의 모습과는 다른 난해함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전에 볼 수 없었던 소재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느끼고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는 대중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공개된 후 넷플릭스 내 화제성 높은 드라마로 줄곧 랭크되고 있다.
지난달 첫 방송을 시작한 KBS2 ‘좀비탐정’도 그간 좀비를 소재로 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이 독특해 주목받고 있다. 부활 2년 차 좀비가 탐정이 되어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좀비탐정’은 극중 주인공 좀비 김무영(최진혁 분)이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좀비로 B급 코미디 감성과 만나 탄탄한 마니아층을 끌어모으고 있다.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위협적인 좀비의 이미지를 깼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킹덤’, ‘#살아있다’ 등으로 ‘K-좀비’는 국내를 넘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최근 ‘좀비탐정’으로 신개념 생계형 좀비에 이어 동양 문화권에 익숙한 구미호, 안은영으로 보여준 유쾌한 한국형 판타지 히어로까지 편견을 깬 K-판타지물이 잇따라 탄생해 이목을 모은다.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킹덤’ 시즌3 등이 한국형 좀비물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고, 영화이긴 하지만 개봉을 앞둔 ‘승리호’도 한국형 SF물로 한국의 정서가 담긴 색다른 우주 히어로물 탄생을 예고했다.
업계에선 이같은 한국형 판타지물의 변주에 OTT 플랫폼이 급격한 성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넷플릭스 등을 통해 K-드라마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한국의 판타지 드라마들에 대한 해외 각국 시청자들의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 고유 정서가 담긴 판타지물이 SF, AI 등이 주가 됐던 해외 판타지물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K-판타지물은 단순히 히어로물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려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는 허황돼 보이는 판타지이지만 마치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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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KBS, tvN,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