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F등급'이 뜬다…눈여겨볼 여성 영화들
하반기 주목할만한 F등급 작품들[사진=넷플릭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올 하반기 영화계는 'F등급(Female-Rating)' 작품이 뜨고 있다. F등급이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여성이 영향을 끼친 정도를 평가해 부여하는 등급. △여성 감독 연출 △여성 작가 각본 △여성 캐릭터 주연 중 한 가지만 충족해도 'F등급'이 부여된다. 올 하반기 'F등급' 작품들이 강세를 띠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 영화 '소리도 없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까지.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작품들을 톺아본다.
먼저 지난 9월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감독 이경미)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와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2015년 출간돼 아직까지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로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 이경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낯선 작품 세계와 여성 주인공으로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남을 도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히로인이 일상적으로 욕설을 쏟아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준 것. 온라인상에서 '밈(Meme·유행 요소를 응용해 만든 사진이나 동영상)' 문화를 끌어내며 큰 인기를 모았다.
이 낯설고 신선한 주인공을 탄생시킨 건 이경미를 비롯해 원작자인 정세랑 작가, 제작을 맡은 키이스트 박성혜 대표 등 여성 제작진들이었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표현법이나 과도한 의미부여 없이 일상적으로 안은영이라는 인물을 표현해냈다.
이경미 감독은 "의식하고 (스태프들을) 구성한 건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요 스태프들이 여성 멤버로 꾸려져 있었다. 좋아하면 끌리는 것과 비슷한 법칙이 아닐까 싶다"라며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작업은 고돼도 편하게 찍었다"고 소감을 전한 바 있다.
배우 유아인·유재명 주연 영화 '소리도 없이'를 연출한 홍의정 감독도 눈여겨 볼만한 여성 감독이다. SF 단편 '서식지'로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홍 감독은 첫 장편 영화로 출사표를 던졌다.
영화는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근면·성실하고 전문적으로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던 태인(유아인 분)과 창복(유재명 분)이 단골이었던 범죄 조직 실장 용석에게 부탁을 받고 유괴된 11살 아이 초희를 떠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앞서 '소리도 없이'는 지난 2016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 TOP12'에 선정돼 제작 단계부터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높였던바. 지난 12일 국내 시사회 직후 언론의 폭발적인 호평을 끌어내며 순식간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홍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인물을 조명하는 시선 등이 낯설고 도발적이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시선과 표현법들은 충무로 대표 배우인 유아인과 유재명마저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홍 감독은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유니크한 미장센으로 표현하며 균형을 찾고자 했고 시종 아이러니한 상황과 장소, 인물 등을 병치해 '소리도 없이'만의 매력점을 강조한다. 오는 15일 개봉.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은 '여성' '학력' 등 차별이 만연했던 90년대를 배경으로 여성들이 연대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입사 8년 차 동기인 자영과 유나, 보람은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갖췄지만 '고졸'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커피 타기, 가짜 영수증 메꾸기 등 잔심부름만 하며 지낸다. 세 사람은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승진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회사 토익반을 들으며 꿈을 키운다. 그러던 중 자영은 회사의 비리를 눈치채고 이를 고발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전국노래자랑' '도리화가' 등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의 신작 영화다. 영화는 각각 다른 성격의 세 친구가 뜻을 모아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주축으로 여성들이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여성 연대와 성장을 그린다.
주연 배우들도 '여성 연대'를 다룬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고아성은 "여성 배우들이 함께하는 현장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에너제틱하고 든든했다. 같이 있으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태도가 생겼다. 그런 기운이 영화에 담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솜은 "여성 배우들과 작업하고픈 마음이 컸지만 그런 날이 올까 싶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고아성, 박혜수가 작품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어느 날 촬영장을 가보니 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라.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에 신났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박혜수는 "같은 여성이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니 정말 끈끈해지더라. 한마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게 의미가 있었다. 그 힘이 영화를 보시는 관객분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10월 중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