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품질 책임은 누구에게?"…페북 2심 판결로 본 넷플릭스법
접속경로 변경 소송 法 "콘텐츠 사업자 아닌 통신사에 책임"
법원 판단과 정반대 '졸속입법' 논란…업계 "법 정당성 훼손"
페이스북 로고 © AFP=뉴스1
정부가 콘텐츠 사업자(CP)에 망 품질 유지 의무를 지도록 한 이른바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전기통신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법원이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관련 소송에서 정부 입법과 정반대의 판단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에선 넷플릭스법이 20대 국회 막판에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N번방법' 등과 함께 졸속 처리된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앞서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부장판사 이원형)는 지난 11일 페이스북 아일랜드 리미티드가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처분취소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페이스북)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는 대법원 상고를 결정했다.
이번 소송은 2018년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를 통한 접속 경로를 임의로 변경해 국내 이용자의 접속 속도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 게 발단이 됐다.
방통위가 "국내 이용자의 이익이 침해됐다"며 페이스북에 3억9600만원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리자 페이스북이 같은해 5월 서울행정법원에 방통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지난해 8월 1심은 "페이스북에 대한 방통위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며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제한'에 해당한다면서도 '현저성' 요건을 별도로 봐야하며 방통위가 제시한 사정만으로는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접속경로 변경 전후로 평균 응답 속도가 어느정도 저하되긴 했으나 이용자는 동영상이나 고화질 사진 등 일부 콘텐츠에서만 불편을 느끼고 본질적인 게시물 작성이나 메시지 발송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큰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업계에선 특히 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망 품질의 책임은 통신사(ISP)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페이스북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에 해당하는지는 당해 전기통신서비스의 특성, CP와 ISP의 관계, 당해 위반행위의 중대성 내지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 정도, 전기통신사업자가 당해 위반 행위의 결과를 인식한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인터넷망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트래픽이 사전 예고 없이 다양한 경로로 전송되기 때문에 그 품질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건 쉽지 않다"며 "특히 인터넷 응답속도 등 인터넷접속서비스의 품질은 기본적으로 IS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지 페이스북과 같은 C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므로 ISP가 이용자들에 대해 약관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CP가 ISP로 직접 전송되는 트래픽 양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의 ISP와 다른 ISP의 사이, 최종 ISP와 이용자 사이에 연결돼 있는 인터넷망의 트래픽 양이나 응답속도 등을 관리·통제할 수는 없으므로 CP인 페이스북으로서는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서비스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 저하될 것인지 사전에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나아가 현행법이 CP는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할 의무 또는 접속경로를 변경하지 않거나 변경 시 미리 특정 ISP와 협의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인터넷 이용자는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고 인터넷의 이러한 기능은 정보를 제공하는 CP가 있음으로써 더욱 고양될 수 있다"며 "만일 CP에 대해 서비스 품질과 관련해 법적 규제의 폭을 넓혀간다면 CP의 정보제공행위 역시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CP의 법적 책임에 관해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이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1심 선고 이후 기자들과 만난 진성철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시장조사과장. 2019.8.2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
이는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하고 최근 정부가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넷플릭스법'과 반대되는 의견이다.
넷플릭스법 이용자수와 트래픽양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부가통신사업자(CP·IP 등)도서비스 안정수단 확보 등 망 품질 유지 의무를 지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시행령의 적용대상은 △국내 일평균이용자수(DAU·Daily Active Users) 100만명 이상 △일평균 트래픽 국내 총량 1% 이상인 기업이다. 시행령 기준대로라면 구글과 넷플릭스,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5개 사업자가 대상이 된다.
당초 넷플릭스법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해외 콘텐츠 사업자가 막대한 트래픽 발생에도 안정적 서비스 제공 비용을 전혀 물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지만 정작 업계에선 이미 통신사에 망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국내 사업자만 이중 부담을 지고 해외 사업자는 규제를 피해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2016년 기준 망 사용료 명목으로 통신사에 각각 734억원과 300억원가량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 소송 1·2심 모두 공히 얘기하는 게 망 품질 책임은 ISP 영역이고 CP가 그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법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판결에 영향을 주려는 모양새로 보였는데 2심에서 뒤집히지 않았다. 입법 정당성이 훼손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CP와 ISP 거래는 자유계약 영역인데 법이 들어온 게 문제"라며 "20대 국회에서 'N번방법' 뒤에 숨겨 슬쩍 통과시켰으나 나중에 법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자원을 쓴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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