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매일 '문어'를 만난 남자, 그가 선사한 경이로움
[추석연휴에 볼 만한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김형욱
2020.10.02 19:31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포스터. ⓒ 넷플릭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 케이프 주. 남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아프리카 끝자락 해변가에 영화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가 산다. 그곳은 '폭풍의 곶' 또는 '희망봉'으로 유명한데, 크레이그 포스터의 어린 시절은 그곳에서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바다, 물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특히 다시마숲에서의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란 뒤엔 그 생활과 멀어졌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덤덤하게 지내던 그는 20년 전 아프리카 남서쪽 칼라하리 사막에서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최고의 사냥꾼들을 촬영하면서 그들이 자연의 경이롭고 미묘한 징후를 포착하는 모습을 지켜 보게 된 것이다. 이후 2년간 고민을 거듭한 그는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서양 자연 속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다시마숲으로 돌아간 크레이그는 산소통도 잠수복도 없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 심정적으로 편안해진 그는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가져온다. 바닷속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 암컷 문어(왜문어) 한 마리와 조우한다. 그녀에게서 특별한 걸 느낀 크레이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문어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인간과 문어의 특별하고 경이롭고 감동적인 1년이 시작된다.
자연과 인간의 조우, 교감, 관계
▲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스틸 컷 ⓒ Netflix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자연과 인간의 진실된 조우가 어디까지 나아가고, 무슨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완벽에 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야생동물 문어가 다름 아닌 인간과 교감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망상에 가까운 의문과 질문에 훌륭하게 답한다.
동물, 특히 야생동물은 오직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 사고하지 않고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야생동물과 교감한 사례는 종종 발견된다. 교감, 즉 동물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사고를 해야 한다. 또한 동물 역시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나의 문어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례를 통해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동물도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프리 마송의 책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유노북스)를 보면, 6장 '인간과 마음을 나누는 야생의 친구들'에서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사자, 악어, 곰, 칠면조 심지어 고래하고도 실제적인 교감을 나눈 실제 사례는 우리를 놀랍게 만든다. 그들은 인간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고서 자신의 행동을 바꿨고 인간에게 표현한다.
문어의 경이로움과 특별함
보다 크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어만의 경이로움과 특별함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연의 경이로움과 특별함이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도 종국에는 문어 아닌 자연의 위대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 테다. 그럼에도, 우린 이 작품에 나오는 암컷 왜문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녀만의 경이로움과 특별함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물 속으로 들어가 문어를 들여다보는 크레이그의 정성에 감동했을까? 익숙했을까? 아니면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문어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마음을 열고(?) 크레이그에게 먼저 다가와 신체적 접촉을 한 것이다. 보고도 믿기 힘든,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문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 사건(?)이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건 문어라는 동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문어는 굉장히 똑똑하고 재빠르며 임기응변에 능하게 진화했다. 마치 달팽이가 껍데기 없이 돌아다니는 것과 매 한 가지다. 몸을 보호할 그 무엇도 없는 것이다. 하여 문어는 좀처럼 몸을 드러내는 일이 없고, 아주 빠르며 순식간에 보호색을 띠기도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조개껍데기 등을 방패와 갑옷으로 삼아 온몸을 감쌀 줄도 안다.
모두가 봐야 할 자연 교과서
▲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스틸 컷 ⓒ Netflix
다큐멘터리에는 천적 파자마상어가 출몰해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왜문어가 결국 다리 하나를 잃는 장면이 나온다. 그 과정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만만치 않은 긴장감이 전해진다.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바닷속 세상이 '양육강식의 결정판'과 다름 없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문어를 응원하고 있지만, 문어 또한 다른 동물들을 잡아 먹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파자마상어 또한 대자연의 지극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크레이그 포스터 덕분에 우리에게로 왔지만, 그는 절대 주인공일 수 없다.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암컷 왜문어다. 문어와 함께 바닷속 세상을 풍요롭게 이끄는 수많은 해양야생동물이 말하자면 조연이라 하겠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주체가 아닌 대자연의 객체에 불과하다는 걸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은 실로 모든 인간이 봐야 할 자연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그렇게 되길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결혼 후 4년 차쯤부터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고양이와 교감을 할 때면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또 바꿀 수 없는 독보적인 행복감이 전해지는 걸 느낀다. 인간과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서 크레이그와 암컷 왜문어가 교감하는 장면을 보면서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느낄 게 분명하다. 그 장면 하나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