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죽여보고 싶었다" 살인자의 고백, 더 놀라운 건
[추석 연휴에 볼 만한 넷플릭스 다큐] 나는 살인자다 (2018)
지난 2018년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큐 <나는 살인자다>는 사형을 선고받은 1급 살인범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는다. '살인'에 대한 기록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살인'을 저질렀던 당사자가 직접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토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살인자다>의 시도는 획기적이며, 도발적이다.
미국은 1976년 사형제도를 다시 도입했다(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25개 주는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21개 주는 사형 제도를 폐지했고, 4개 주는 집행을 정지한 상태다). 그 이래로 현재까지 8천 명 이상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다큐는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살인범들이 자신의 살아온 이력과 범죄를 저질렀던 '그날'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날'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달라졌을까. 무엇이 그들을 살인으로 이끌었을까.
▲ 넷플릭스 다큐 <나는 살인자다>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무엇이 살인은 만드는가? '학대의 기억'
살인 선고를 받은 8천 명 중 여성은 10% 미만이다. 1편 <목숨을 쥐다>에 출연한 3018877번 린지 호건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25살, 앞날이 창창하던 나이에 사람을 죽였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린지는 15살에 가출했다. 마리화나를 시작으로 메스 암페타민, 헤로인에 중독된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17살에 자신이 임신 3개월이라는 걸 알게 된 린지는 엄마가 되고 싶어 2003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들을 외할머니에게 맡긴 린지는 주 방위군이 되었다. 남자들보다 팔굽혀펴기를 잘 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군인이었다. 그러다 2013년 말에 한 남자를 만났다. 만남 초반 다정했던 남자는 점점 변해갔다. 종종 이성을 잃은 남자는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를 구타했다. 직업적으로 남자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 그녀를 의심하며 바람을 피웠다고 말하라고 강요했다. 씨ㅂ던 음식을 뱉고, 강간했으며, 더럽다고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한번은 욕실에 그녀를 가두고 손을 으스러뜨리며 팔로 목을 졸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주며 죽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했다. 그렇게 고통 속에 2년을 보냈다. 2015년에야 남자는 구금되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한 린지는 결국 주 방위군을 그만두고 술에 빠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2편 <광분>에 출연한 데이비드 역시 '학대'를 당했다. 990135번 데이비드 바넷, 그는 현재 포토시 교정 센터에 1급 살인죄로 복역 중이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지만 엄마는 그를 원치 않았고 알코올 중독인 엄마의 친구 로버트에게 맡겨졌다. 그의 어린 시절은 처참했다. 두들겨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대소변이 묻은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음식을 훔치기도 했다.
4~5세가 될 즈음 그를 찾아온 아동 복지국 직원이 '널 여기서 빼내 줄 거야'라고 말하며 안아주었을 때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다. 6살 때 평범한 가족에게 위탁되었던 것도 잠시, 외국에 나가야 하는 가족이 그를 다시 보호 시설로 돌려보냈다.
8살 때 그를 데리고 온 존 바넷은 그에게 '내 아들이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아버지인 존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본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존은 그를 때렸다. 아버지인 존은 다친 그를 위로해 준답시고 안고 키스를 했다. 한술 더 떠서 그를 무릎에 앉히고 안아달라 했다. 성기를 만지는 등 성추행도 했다. 당시에 대해 데이비드는 "존재하고 싶지 않았고 죽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10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에 출연한 상당수의 '살인범'들은 린지나 데이비드와 같은 '학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학대'의 기억은 그들의 삶을 잠식했다. 그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학대'가 그들을 '범죄'로 이끌었음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존이 음모가 없는 사춘기 이전 소년의 음경을 팔로 받치고 있는 사진을 찾은 데이비드와 친구들은 이것이 학대의 증거라고 생각하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하지만 경찰은 사진을 그냥 돌려주며 나가라고 했다. 학교도, 아동 복지국도, 경찰도 데이비드가 당한 일에 눈을 감았다.
존은 학교 전산 담당 교사이자, 올해의 스쿨버스 운전사로 뽑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으로 살다 자신의 명을 다했다. 그의 집과 불과 두 집을 사이에 두고 부모님의 집이 있었고 존의 부모 클리퍼드와 리오나는 존이 입양한 아이들의 자상한 조부모였지만, 아들이 저지른 범죄적 행동에는 무지했다. 49년 지기 친구는 존을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추억한다.
▲ 넷플릭스 다큐 <나는 살인자다>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그럼에도 살인은 변호될 수 있을까?
술에 절어 살던 린지는 한 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로비라는 이름을 가진 그와 여행길에 오른 린지. 그런데 로비는 이상한 요구를 한다.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린지의 소망과 달리, 로비는 지쳤고,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월마트 주차장에서 린지는 로비의 목을 졸라 죽인다.
살인을 저지른 것도 잠시, 당황한 그녀는 로비에게 일어나라 애원을 하며 CPR을 하던 중 경찰에게 발각된다. 내가 죽였다며 살려달라던 그녀, 린지는 자신의 전 애인이 자신에게 가했던 학대의 '트라우마'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했다며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심문받던 영상을 보던 형사는 그녀의 그런 고백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심문 도중 '맨손으로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 전문가는 아마도 전 약혼자가 자신에게 한 것을 로비에게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 추측한다. 거기에 더해 불과 사귄 지 한 달밖에 안 된 상황에 로비를 위한 순애보적인 살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며, 전 애인을 만나러 가고자 하는 로비의 속셈을 알게된 린지의 질투심이 부른 '고의적 살인'이라며 이의를 제기한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드의 경우는 그가 범죄를 저지른 대상과 상황이 심각하다. 존에게 학대당하던 그는 한때 존의 집에 머물던 세실과 아이를 낳고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와 헤어진 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
1996년 2월 존의 부모, 즉 자신의 양조부모인 클리퍼드와 리오나의 집을 찾았다.죽이러 간 게 아니라 이제 이 문제를 끝내고 싶어서 간 것이라는 데이비드는 양부모에게 존이 한 짓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위로의 포옹은 없었다. 양부모들은 그의 말을 듣고 불쾌해하며 화를 냈다. 그런 양부모들의 태도는 그에게 쌓인 분노의 스위치를 켜고 말았다.
양부모들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턱뼈가 틀어진 상태에서 5개의 칼로 20군데 이상 잔인하게 찔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칼이 너무 깊게 박혀 손잡이마저 부러져 있었다. 느리고 고통스럽게 잔혹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방과 후에 찾아가면 쿠키를 주던 할머니, 유일하게 가정적인 따스함을 주던 그분들을 죽인 데이비드에게 배심원 12명은 "이 남자는 살아선 안 된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그들에게 '갱생'의 기회는 있을까
하지만 린지와 데이비드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비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던 자신의 증언을 본 린지는 당황해한다. 사람을 죽였기에 더는 평범할 수 없다고 말하는 린지는 자신의 손을 보면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뉘우치고 있다고 말하는 린지는 달라진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린지를 로비의 부모가 품었다. 로비의 엄마와 양부는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그녀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을 보고 용서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로비의 친아버지는 다큐 출연을 거부한다. 형기의 25%를 복역하면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린지에게는 2030년 자격이 생긴다. 과연 린지는 가석방이 될 만한가?
데이비드에게는 불공평했던 법이 기회를 주었다. 그의 재판 과정에서 그가 세우고 싶었던 증인은 많았지만 국선 변호인은 그가 원하던 증인을 단 한 명도 법정에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칼라일 팀 변호사가 경찰서에서 데이비드가 아버지 존의 성적 학대를 증언하려 했던 기록을 수면 위로 올렸다. 그가 수감된 지 22년이 지난 2019년, 법원은 그의 죄를 '살인죄'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했다.
젊은 나이 수감 생활을 시작한 데이비드는 이제 중년이가 되었다. 존을 증오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그저 괴물을 품고 있었을 뿐,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 역시 실수를 했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데이비드는 삶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는다. 가석방을 위해 항고하겠다는 데이비드는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져야 할까.
다큐에 등장한 살인범들의 상황은 모두 다르고 그들의 사연은 저마다 곡진하다. 다큐는 그 사연의 진위 여부에 대한 다른 이견들을 제시하며 판단을 시청자 몫으로 남긴다.
과연 그들에게 세상 밖에서의 삶이 주어져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도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오랫동안 그들이 보낸 '참회'의 시간 사이에서 정비례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그런 '모호한 인간과 법' 사이의 경계가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