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넷플릭스 ‘길복순’ 전도연 “진짜 부서져라 준비했다”
“‘전도연도 이런 걸 해?’란 선입견 깨고 싶었죠.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격한 액션 속에 감정까지 담으라는 감독 요구, 너무 황당하고 멘붕왔다”
“격한 액션 속에 감정까지 담으라는 감독 요구, 너무 황당하고 멘붕왔다”
2023-04-12 07:00:3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잠깐 상상을 해봤습니다. 만약 저 배우였다면, 어떤 기분 일까. 그래서 전례를 찾아봤습니다. 기억으로는 없던 것 같습니다. 만약 아니라고 해도 이런 케이스,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배우 전도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입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전도연을 주인공으로 했단 점입니다. 이게 뭐가 특별한 것이냐. 특정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분명 있었습니다. 해당 배우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쓴 영화들, 많습니다. 하지만 ‘길복순’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전도연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란 생각을 전제로 시나리오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체가 구성됐고 또 그 구성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깐 ‘길복순’은 전도연을 주인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채워진 영화인 셈입니다. 연출과 시나리오를 쓴 변성현 감독은 실제로 전도연의 집에 몇 날 며칠을 방문하며 ‘취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길복순’은 전도연을 위해 기획된 것을 넘어서 전도연의 1부터 100까지의 모든 것이 담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한국영화 배우로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으며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보였던 전도연은 이런 변성현 감독 러브콜이 너무도 감사했고, ‘유일했다’는 특별함을 강조했습니다.
배우 전도연. 사진=넷플릭스
전도연은 인터뷰 첫 질문에서부터 변성현 감독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과 함께 하고 싶고 자신을 칭찬하는 영화 감독들이 대한민국에 너무 많다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정작 자신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전해 주면서 캐스팅을 제안해 왔던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깬 첫 번째 감독이 변성현 감독이었답니다. 그것만으로도 기억에 남는데 이렇게 멋진 작품을 전해주고 또 만들었다고 감사해 했습니다.
“변 감독과 첫 만남이 영화 ‘생일’ 현장에서 였어요. 당시 현장에 놀러 와서 인사했죠. 그리고 이후에 만날 자리가 됐었어요. 당시 본인이 쓴 오리지널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하면서 근황 정도만 주고 받았죠. 그때 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촬영을 들어가게 됐고. 근데 그 영화를 보고 변 감독이 연락이 와서 ‘액션 해볼래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얘기가 시작된 게 ‘길복순’이에요.”
배우 전도연. 사진=넷플릭스
일단 전도연이 액션을 전혀 안해 본 배우는 아닙니다. ‘협녀: 칼의 기억’에선 무협 액션도 소화해 봤습니다. 변성현 감독이 매혹됐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의 전도연은 액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에 걸맞는 거친 연기를 소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액션, 분명 낯선 연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길복순’에서의 액션은 전혀 다른 분야였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다시 준비를 해야 하는 수준이었답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제가 너무 깨고 싶었던 게, ‘전도연도 이런 걸 해?’라는 선입견. 전도연은 그냥 드라마가 강한 연기나, ‘밀양’ 같은 스타일의 영화만 하는 배우 아냐. 그런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고 싶었어요.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진짜 제대로 보여 주고 싶었어요. 아직도 전 저 스스로가 확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는 데 그건 제 생각인 거고. 대중은 또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진짜 이 악 다물고 몸이 부서져라 준비를 했어요.”
'길복순' 스틸. 사진=넷플릭스
정말 멋지게 소화를 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사실 두 번째 였습니다. ‘길복순’ 속 액션, 전도연이기에 이해가 됐고, 전도연이라서 감정이 듬뿍 담긴 액션이 나와 버렸습니다. 일단 ‘길복순’ 자체가 킬러 액션이기에 액션의 강도와 순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길복순’은 킬러 액션 영화이면서도 엄마의 얘기이고 관계의 얘기입니다. 그래서 여러 감정의 결이 액션의 순간에도 담겨 있어야 했습니다. 그걸 전도연이 만들어 냈습니다. 전도연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그게 진짜 힘들었어요(웃음). 액션 하기도 벅찬데 무슨 감정을 자꾸 담으라고. 감독님의 디렉션에 진짜 멘붕이 올 정도였어요. 자꾸 슬퍼야 하고 소녀 같은 얼굴이 나와야 한다고 하하하. 그렇게 말하고 내가 멍하면 그냥 자기 말만 하고 모니터 앞으로 획하고 가요(웃음). 그냥 일방적인 요구였죠 뭐. 그러고 나서 오케이가 나면 ‘선배님은 하실 줄 알았다’고 말하고. 어휴 진짜. 하하하. 근데 좀 지나고 나니깐 변 감독이 뭘 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배우 전도연. 사진=넷플릭스
‘길복순’을 본 모든 시청자들이 놀라는 첫 번째는 아마도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액션일 듯 합니다. 넷플릭스에 공개 전부터 오프닝에 대한 보안은 철저했습니다. 하지만 오픈이 되고 난 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전도연의 멋진 액션도 액션이지만 그의 상대역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전도연과는 ‘너는 내 운명’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던 연인 황정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프닝 장면에서 서로 서슬퍼런 칼날을 주고 받는 사이로 등장합니다.
“아이고 언제적 연인이야(웃음). 유효기간 다 지났어요. 하하하. 누가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내 운명’에서 죽고 못사는 사이로 나오더니 이번엔 진짜 죽이는 사이로 나온다고. 벌써 18년 전 영화에요. 아이고 진짜(웃음). 사실 그 배역이 실제 일본 배우가 하기로 돼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 못 들어왔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그 배역에 대해 상의하다가 제가 문득 ‘황정민 어때요’하니깐 감독님이 ‘되기만 하면 좋죠’라고 해서 제가 문자 한통 보냈는데 시나리오도 안보고 오케이를 해주셨어요. 너무 고맙죠.”
배우 전도연. 사진=넷플릭스
‘길복순’을 보면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세트입니다. 실제라고 해도 믿을 만한 수준의 세트가 ‘길복순’의 리얼함을 살리는 원동력 중에 하나로서 굳건히 자리합니다. 전도연 역시 ‘길복순’의 세트에 대해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극찬했습니다. 규모나 리얼리티 모든 면에서 이 정도의 세트는 자신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습니다. 일단 오프닝에서 등장한 다리 장면부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라서 이 정도로 지원을 해주신 건가’ 싶을 정도였어요. 오프닝에 등장한 다리, 누가 봐도 동호대교 잖아요(웃음). 근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동호대교를 통제하고 영화를 찍었겠어요. 하하하. 그거 세트에요. 카메라에 걸리는 그 다리의 길이감. 실제로 그렇게 길었어요. 정말 눈을 의심할 정도였어요. 식당에서 싸울 때의 장면에 등장하는 그 공간. 거기도 세트에요(웃음). 정말 어디서 영업하는 식당 같잖아요. 하하하.”
'길복순' 스틸. 사진=넷플릭스
킬러 영화이면서도 엄마의 얘기이기도 한 ‘길복순’. 전도연은 인상적인 그리고 고민을 했던 장면으로서 극중 자신의 딸 ‘길재영’의 고백에 대해 아주 잠깐 고민을 해봤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길복순’은 기본적으로 딸과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기 위해 킬러를 그만두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결과적으로 ‘길복순’은 딸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주된 동력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전도연의 실제 딸 이름도 극중 딸과 같은 ‘재영’입니다.
“일단 영화에서 재영이가 엄마인 ‘복순’에게 커밍 아웃을 하던 장면을 찍을 때 잠깐 고민해 봤어요. 정말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쩌지. 근데 뭐 지금 생각하면 그래요. 자기 인생인데(웃음). 잘하겠죠. 잘 선택하겠죠. 그리고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고 보듬어 줘야죠. 근데 현실에서의 저와 딸은 정말 아휴. 영화에서 재영이가 자기 방문 쾅! 닫고 들어가잖아요. 전 그걸 거의 매일 당해요. 하하하.”
배우 전도연. 사진=넷플릭스
‘길복순’이 공개가 된 뒤 모두의 관심은 속편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길복순’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의아함과 알 듯 모를 듯한 장면의 숨은 의미도 분명 그런 기대감의 큰 부분일 듯도 합니다. 전도연은 ‘속편’이란 단어에 대해 질색을 하면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50대에 접어든 전도연에게 ‘길복순’처럼 격한 액션은 앞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제 나이에 이제 이런 액션은 너무 힘들어요(웃음). 한 번으로 충분해요. 하하하. 속편에 대한 얘기는 뭐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고요. 이제 공개가 됐는데 속편 얘기는 너무 이르죠. 근데 또 모르죠. 넷플릭스에서 결정하시면 조건 좀 봐야겠죠. 하하하. 앞으로도 저에게서 다른 전도연을 끄집어 내는 분들을 자주 만나고 싶어요. 계속 그렇게 소모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184325&infl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