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이상""선배님이 그래요"…도끼 든 전도연 탄생한 배경
업데이트 2023.04.06 17:11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지난달 종영한 드라마 ‘일타스캔들’(tvN)에서 유쾌한 ‘로코(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등극했던 전도연(50)이 ‘죽여주는’ 액션으로 돌아왔다. 킬러로 변신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감독 변성현)이 지난달 31일 출시 후 사흘 만에 1961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1992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MBC)으로 데뷔한 이래 킬러 역할도 처음, OTT 작품도 처음이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 이후 무겁고 진지한 작품 위주였던 전도연의 변신이다. ‘길복순’은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일타스캔들’의 성공까지, 겹경사다.
"새로운 전도연 쾌감…나 스스로 깨고 싶었죠"
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바쁘게 지내본 적도 없다”며 “사람들이 전도연의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일 때 쾌감이 컸다. 누군가 나를 깨주기 바랐지만, 나 스스로도 깨고 싶었다. ‘길복순’을 통해 감독들이 배우로서 나를 바라보는 폭이 넓어질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 첫 넷플릭스 출연에 대해 “극장처럼 관객 수 신경 안 써도 될 줄 알았는데 조회 수가 올라야 한 대서 요즘 ‘길복순’을 집에 BGM(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있다. 제가 선택한 건 최선을 다한다”며 싱긋 웃었다.
주인공 길복순은 10대 딸을 둔 싱글맘이자 최고의 킬러. 집에선 중학생 딸 재영(김시아)의 진학, 사춘기 고민에 골치 아픈 엄마지만, 밖에선 자신을 노리는 적들을 상대해야 한다. ‘길복순’의 영어 제목이 ‘Kill Boksoon(복순을 죽여라)’이다.
눈 먼 검객 역할을 한 영화 ‘협녀: 칼의 기억’(2015)이 “그림 위주의 서사적 액션”이었다면 ‘길복순’은 육탄전이 난무하는 작품이다. A급 킬러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4개월간 액션 훈련, 금주, 근육을 늘리기 위한 단백질 위주 식단 조절을 마다치 않았다. 재일교포 야쿠자로 특별출연한 황정민(코로나19로 일본 배우 섭외가 어려워지자, 전도연이 직접 황정민을 추천해 캐스팅이 성사됐다)과 야밤의 교각에서 도끼를 들고 맞붙는 영화의 첫 장면이 실제로도 첫 촬영이었다고 한다.
"복순 캐릭터 이상하다 하자, 제가 그렇다더군요"
재미있는 사실은 ‘길복순’이 전도연에게 영감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이다. 변성현 감독은 출세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8)에서 설경구의 새로운 매력을 부각해 ‘지천명 아이돌’ 팬덤을 선사한 바 있다. 평소 전도연의 팬을 자처해온 변 감독이 시나리오도 없이 전도연에게 차기작 출연 제안부터 했다. 그의 전작을 좋게 본 전도연이 승낙하자 배우이자 엄마로서 전도연의 일상을 관찰해 시나리오를 썼다. ‘길복순’이란 이름도 전도연 친 이모의 실명이다.
“복순은 회사 동료들과 있을 때와 엄마로서 딸과 있을 때가 다르죠.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캐릭터가 좀 이상하다. 일관성이 없다’고 했더니 변 감독이 ‘선배님이 그러세요’ 하더군요. 나를 관찰자 입장에서 보게 돼 재밌었어요.”
경쟁이 치열한 킬러들의 세계는 연예계를 은유한 것이다. 킬러들의 소속사는 배우 매니지먼트사를 연상시키는 ‘~엔터’, 청부살인은 ‘작품’으로 나온다. 전도연은 쑥스러운 듯 “내 입으로 이야기하긴 그렇지만” 하고 운을 뗀 뒤 “배우 전도연, 설경구가 나름 탑이고, (업계) 최고 포식자다, 그런 모습을 변 감독이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엔터 업계, 영화계에서 배우들이 즐기는 모습, 치열한 모습을 반영한 킬러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터미네이터' 출연 제안 "액션이라 엄두 못 냈는데…"
그간 알려지지 전도연의 모습도 나온다. 식물을 좋아하는 복순의 모습이 실제 전도연을 반영한 것. 올해 15세인 전도연의 딸과 나이·이름이 같은 극 중 재영의 모습도 영화로 옮겼다. 전도연 모녀 관계가 반영됐다. 때론 친구 같고, 때론 딸이 더 어른스럽기도 한 모습이다. 전도연은 “뭔가 잘 모르겠을 땐 대체로 아이한테 맡기는 편이다.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게 한다”면서 “학교생활을 보면 딸아이가 저보다 낫다, 싶은 부분도 있다. 나보다 현명하게 잘 대처하는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전도연은 ‘밀양’ 이후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오디션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 “액션 영화여서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이번 액션 도전에 대해 “이만하면 만족스럽다”고 자평했다. “첫 액션 땐 동작이 잘 안 돼서 속상했다. 몸은 안 따라주는데 욕심이 나서 거듭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하며 촬영했다”며 “‘길복순’ 끝나고 ‘일타스캔들’에 들어갔는데 체력이 바닥나서 보약 먹고 온 힘을 짜내서 촬영했다. ‘길복순’으로 액션은 충분히 할 만큼 한 것 같다. 지금으로선 액션 영화는 졸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타스캔들’ 이후 딸 또래 팬도 늘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소위 ‘센 영화’를 했던 전도연에겐 새로운 경험이다. 차기작은 영화를 검토 중이라는 그는 “늘 기대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