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흥행에도 디즈니플러스는 왜 ‘잭팟’ 못 터트릴까
김다린 기자
2023.3.23
- 입력 2023.03.23
탄탄한 IP 파워로 무장했지만…
OTT 시장에 반향 못 일으켜
카지노 흥행에도 MAU 적어
넷플릭스 독주체제만 심화
디즈니플러스는 론칭 초기 한국 OTT 생태계를 거머쥔 넷플릭스를 넘어설 대항마로 손꼽혔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한국 시청자를 위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여럿 내놨지만, 넷플릭스는커녕 다른 OTT에도 못 미치는 성적표를 남겼다. 이유가 뭘까.
2021년 가을 국내 OTT 시장은 ‘넷플릭스 천하’였다. 2016년 한국 시장에 상륙한 이 서비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의 성공으로 가입자를 무섭게 끌어모았는데, 5년 후인 2021년 9월의 기세는 더 대단했다. ‘오징어게임’ 덕분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만든 이 오리지널 콘텐츠는 전 세계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했다.
오징어게임을 촬영한 국내 시장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오징어게임이 방영을 시작한 9월 넷플릭스의 국내 신규 설치 건수(모바일인덱스 자료)는 119만건을 기록했다. 평소엔 50만~60만건 안팎이었는데, 두배가량 늘었다.
넷플릭스의 점유율(이용자 수 지표 기준)은 국내 주요 OTT 서비스 중에서 47%까지 치솟았다. SK텔레콤ㆍ지상파 3사가 연합해 만든 ‘웨이브’와 콘텐츠 명가 CJ ENM의 ‘티빙’ 등도 나름대로 힘을 썼지만, 넷플릭스엔 크게 뒤졌다. 월간활성사용자수(MAU)가 넷플릭스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
오징어게임의 대히트로 넷플릭스 독주 체제가 완전히 굳어진 2021년께, 공룡급 대항마가 국내 시장에 상륙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콘텐츠 기업 월트디즈니컴퍼니(디즈니)의 OTT ‘디즈니플러스’였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를 바짝 쫓고 있었다. 2021년 2분기까지 디즈니플러스는 1억1600만명의 유료 구독자(누적)를 확보했다. 넷플릭스(2억763만명)에 이어 글로벌 OTT 중에선 두번째로 많은 가입자 수였다. 출시 1년 반 만에 거둔 성과로, 증가율만 따지면 넷플릭스보다 가팔랐다.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의 호적수로 떠오른 비결은 ‘지식재산권(IP)’이었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1990년대부터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 전략을 펼치면서 몸집을 불렸다. 특히 인기 콘텐츠 스튜디오들을 줄줄이 사들였는데, 픽사(2006년), 마블(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 폭스(2019년) 등을 집어삼키면서 글로벌 넘버원 콘텐츠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더구나 디즈니는 ‘어벤져스’ ‘아바타’ ‘타이타닉’ ‘스타워즈’ ‘겨울왕국’ ‘심슨 가족’ 등 글로벌 히트작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디즈니플러스를 국내 시장에 론칭하면 넷플릭스와 겨룰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그렇게 2021년 11월 12일,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론칭쇼가 열렸다. 오상호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표는 “디즈니플러스는 세계적인 크리에이터가 선사하는 매력적인 스토리와 탄탄한 브랜드, 프랜차이즈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모든 연령대의 이용자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제공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넷플릭스의 점유율 확대 전략인 자체 제작 콘텐츠를 7편이나 만들겠다고도 덧붙였다.
디즈니플러스의 월 이용료는 9900원으로 넷플릭스(스탠다드 1만2000원)보다 저렴했고, 아이디 하나로 최대 4명까지 동시접속이 가능했다. 탄탄한 콘텐츠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으니 국내 OTT 산업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무색하게 한국 OTT 시장은 넷플릭스의 여유로운 독주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비스 출시 1년이 훌쩍 흐른 지금, 디즈니플러스는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2월 주요 OTT 앱 사용자 수는 넷플릭스가 압도적인 1위(1150만명)를 차지했다. 티빙(475만명), 쿠팡플레이(401만명), 웨이브(376만명)가 2위 그룹을 형성했지만, 넷플릭스의 꼬리도 쫓지 못했다. 디즈니플러스는 이런 2위 그룹에도 한참 못 미치는 208만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 숫자마저도 디즈니플러스가 올 초 출시한 오리지널 콘텐츠 ‘카지노’의 흥행 실적을 반영한 결과다. 카지노는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대 시청 시간(공개 첫째 주 기준)을 기록한 흥행작이다. 디즈니플러스가 필리핀 현지 로케이션을 지원하고 제작비를 아낌없이 투자했다. 한국 시장 안착을 위해 힘을 몰아준 셈인데, 넷플릭스와의 경쟁 구도엔 별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디즈니플러스의 성적표가 신통치 않은 이유론 여러 가지가 꼽힌다. 일단 한국 콘텐츠 라인업이 부족했다. 핵심 콘텐츠 중 하나였던 마블 관련 콘텐츠가 예전 같지 않다는 반응도 많았다. UI(사용자 인터페이스)ㆍUX(사용자경험)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이 때문인지 공룡들의 격전지가 될 것처럼 보였던 한국 OTT 시장은 넷플릭스만 돋보이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말 ‘더 글로리’란 대형 히트작을 추가하면서 믿고 보는 플랫폼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더 글로리’의 첫번째 시리즈는 한국을 비롯 다수의 아시아권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글로벌 시청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됐다. 최근 공개한 두번째 시리즈 역시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OTT로만 돈을 버는 사업자는 넷플릭스가 유일하다. 지난해에도 글로벌 기준 매출 316억1600만 달러, 영업이익은 56억3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에선 6316억원, 영업이익 171억원(2021년 기준)을 올렸다. 반면 월트디즈니의 실적을 보면 디즈니플러스가 속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지난해 4분기엔 10억5000만 달러(약 1조36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국에서 넷플릭스의 독주를 깨려는 토종 OTT 역시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티빙은 모회사 CJ ENM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는 데 일조했다. 티빙은 2020년 61억원, 2021년 762억원, 2022년 1190억원 등 3년째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웨이브를 운영하는 콘텐츠웨이브 역시 출범 이후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21년 5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지난해엔 적자 규모가 훨씬 더 커졌을 것으로 점쳐진다. 두 서비스가 언제 정상궤도에 올라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스타트업이란 규모의 한계를 딛고 공룡 틈바구니에서 경쟁을 벌여온 왓챠는 경영난에 빠졌다. 지난해 5월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추진했지만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매각설이 돌던 도중에 LG유플러스와 진행한 협상도 성사되지 않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콘텐츠 투자로 가입자를 확보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전략을 차용했지만, 정작 넷플릭스는 콘텐츠 투자 규모를 천문학적으로 늘리면서 이들을 따돌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미디어파트너스아시아는 넷플릭스가 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콘텐츠에 19억 달러(약 2조4722억원)를 투자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어난 규모다.
OTT 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이를 나누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게 문제”라면서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콘텐츠를 쏟아내려 해도 투자비용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몇년간 넷플릭스의 독주가 이어질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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