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그대들 모두가 승자다…‘피지컬: 100’이 남긴 것
등록 :2023-02-23 07:00
서정민 기자
아직 마지막 화를 보지 않은 이가 이런 정보를 접하면 ‘스포일링’ 당했다며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결과보다 그 과정이 소중하다는 것, 승자뿐 아니라 패자도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 <피지컬: 100>의 진정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한국 예능 최초로, 게다가 2주 연속으로 넷플릭스 비영어권 티브이(TV) 부문 1위에 오른 것도 그래서다.
<피지컬: 100>은 여느 서바이벌 예능과 달랐다. 100명 중 절반을 떨어뜨리는 첫번째 퀘스트는 1:1 데스매치. 사전 경기 ‘오래 매달리기’로 우선권을 얻은 이들이 대적할 상대를 골라 ‘공 뺏기’ 대결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기기 위해선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고르는 게 당연하지만, 의외의 선택이 잇따랐다. 격투기 선수 신동국은 격투기 대선배인 추성훈을 지목해 격투기 룰로 경기를 하고 떨어졌다. 여성 씨름 선수 박민지는 거구의 럭비 국가대표 출신 장성민을 선택했다. 김봉석 평론가는 “박민지는 멋지게 남자를 기술로 넘겼고, 화끈하게 졌다. 그리고 나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며 “이기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마찬가지로 이기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걸 <피지컬: 100>은 보여줬다”고 말했다.
경기에서 지고도 상대방을 응원하고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은 <피지컬: 100>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 할 수 있다. 100㎏ 공을 언덕 위로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형벌’ 경기에서 먼저 탈락한 마선호와 추성훈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는 윤성빈과 정해민을 곁에서 응원하고 독려했다. 경기가 끝났을 땐 네 참가자 모두가 얼싸안고 서로를 다독였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그들은 모두가 승자였다.
<피지컬: 100>은 문화방송(MBC) 다큐멘터리팀 소속 장호기 피디가 만들었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나 과도한 자막 사용을 배제하고 다큐처럼 우직하고 담백하게 연출한 것이 주효했다. 여느 예능의 필수 요소인 사회자나 연예인 패널을 두지 않은 것도 호평받았다. 김도훈 대중문화 평론가는 “<피지컬: 100>의 가장 훌륭한 점 중 하나는 사회자가 없다는 것이다. 김성주나 전현무가 나와서 ‘아아 탈락입니다!’ 이런 말 외치는 거 없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기존 예능 문법에 우리가 얼마나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