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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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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엘리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2.11.02 10:41 3,07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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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문화부 jebo@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2-11-02 10:29:18 수정 2022-11-02 10:29:10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반전 문학의 거장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1929년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영화로 제작돼 지난 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1930년, 1979년에 이어 세 번째 영화로 만들어졌다.

서부 전선은 프랑스 동북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른 전선이다. 2차 대전과 달리 1차 대전은 대부분 이 참호에서 벌어졌다. 몇 m의 땅을 빼앗기 위해 처절한 공방전이 매일 같이 반복되던 곳이다.

원시적인 형태의 신형 병기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전투의 대부분은 병사들의 총검과 삽의 난투전이었다. 그래서 그 참혹함은 2차 대전을 능가했다. 징병된 젊은 병사들의 시체만 쌓여간 비정한 전투였다.

 
 

이런 소모전을 상징하는 곳이 '무인 지대'다. 프랑스군과 독일군을 사이에 둔 폭 300m의 참호 전선이다. 철조망과 지뢰로 덮여 있고, 시체들이 썩어가는 진흙 구덩이였다. 포탄이 떨어지면 시체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이 바로 서부 전선이었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전쟁에 내 몰린 젊은이들의 무의미한 희생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렬하면서 선연하게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7세 소년 파울(펠릭스 카머러)은 전쟁터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소년이다. 학교에 온 모병장교는 소년들에게 "조국의 명예를 위해 프랑스로 진격하라"며 꼬드긴다. 파울은 부모의 동의서까지 위조해 전쟁터로 향한다. 그러나 친구들과 들뜬 마음에 서부 전선에 배치된 파울은 생각과 너무나 다른 전쟁을 목격한다. 널브러진 시체와 포탄에 찢겨지는 주검들, 비처럼 쏟아지는 총격에 진흙 구덩이….

 

영화는 참호 전투의 치열함과 두려움을 그 어떤 영화보다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뾰족한 총검이 살로 파고드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팔 다리가 잘리고, 탱크에 깔리고, 화염방사기로 산 사람을 불태우는 등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 노출된다. 노란 독가스 사이로 등장하는 거대한 탱크는 그 원시적 폭력성에 말을 잊게 한다.

이런 광경은 10대 소년 파울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해준다. 특히 파울이 죽어가는 프랑스군 옆에서 죄책감에 오열하는 장면은 비인간적인 전쟁의 무의미함을 극대화시켜 준다. 살인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프랑스군의 주머니에는 아내와 딸의 사진이 있고, 편지도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전쟁에 나와 살육의 도구가 돼야 한단 말인가.

영화는 전쟁터의 참혹함과 달리 따뜻한 벽난로에서 호화만찬을 즐기는 군 수뇌부를 함께 보여주면서 전쟁의 비정함도 잘 보여준다. 한 장성이 이렇게 중얼거린다. "군인이 되고 허송세월했어. 반세기나 전쟁이 없었다니. 군인이 전쟁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한 이유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영화는 쥐들이 들끓는 진흙 참호의 비참함을 보여주면서 언뜻언뜻 숲이며, 나무, 구름, 계곡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이다. 파울이 친구와 함께 농가의 거위를 훔쳐 달아나는 들판도 아름답다. 그 대비가 비극미를 더욱 높여준다.

영화는 독일영화로 독일어를 사용한다. 감독은 "독일인들이 가지는 죄책감과 두려움, 책임감 등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월이 지나도 그 시대의 잘못된 판단과 그로 인한 비극을 전하겠다는 의도다.

펠릭스 카머러는 27살의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다. 여린 외모와 왜소한 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에 떠는 17살 소년 파울 역을 리얼하게 연기한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원작 소설은 1917년 봄부터 1918년 10월까지 1년 반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이전 두 편의 영화도 이 흐름을 최대한 따라갔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1917년 입대 후 시간을 뛰어넘어 1918년 11월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콩피에뉴 휴전협정의 장면 또한 원작엔 없지만 영화 속에 그 과정을 소상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휴전협정이 발효되는 것이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였다. 그러나 전쟁의 미치광이들은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휴전 15분을 남기고 다시 총알받이로 내몬다. 겨우 살아남은 아름다운 청춘을 헛되이 소모하는 전쟁 광신도에 분노가 느껴지면서, 속이 탈 정도의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레마르크의 또 다른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또한 이런 느낌을 전해주기도 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이 무렵 독일 사령부의 보고서 문구다. 젊은 병사들이 죽어 가는데도 '이상 없음'을 적시한 것은 이들의 목숨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상적이기에 이상이 없다는 말이다. 레마르크는 이 말이 가진 그 무심한 야만성을 상징적인 제목으로 잘 드러내주고 있다. 147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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