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텔레비전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입력 2022.10.0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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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위기다. 당장 TV를 켜 보아도 불안이 감지된다. <돌싱글즈>(MBN), <금쪽같은 내새끼>(채널A), <우리 이혼했어요>(TV조선), <결혼지옥>(MBC), <살림하는 남자들>(KBS), <돌싱포맨>(SBS) 등 가족 이상 징후를 포착한 예능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 차고 넘친다. 엇나간 아이를 바로 잡고 해체된 가정을 이어 붙이며 홀로 된 이들의 짝을 찾는다. 사회 통계도 이를 지시한다. 만일 가족이 <건강가정기본법>의 정의대로 “혼인·혈연·입양으로 맺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면, 세 수준 모두에서 한국 가족은 붕괴 직전이다. 작년 기준, 혼인건수는 통계작성 이래 처음으로 20만 건 아래를 기록했으며 합계출산도 0.81명으로 236개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낮다. 작년 국내외 입양아동 수는 415명으로 역대 최저다.
가족 붕괴는 텔레비전 위기와 직결된다. 다매체 다채널 상황 속에서 경쟁 격화, 광고 수익 감소, OTT의 성장만으로 텔레비전 위기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텔레비전은 본디 가족 매체였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시청 가능한 그 곳에 ‘안방극장’ 텔레비전이 놓였다.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반세기 넘게 전업주부, 가장, 어린이, 청소년 등 가족 구성원의 기호에 호응했다. 혹은 역으로, 텔레비전은 가족 역할을 내재화시키는 교육기관이었다. 주부를 위한 요리 프로그램, 가장을 위한 뉴스, 미취학 아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 규범을 만들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가 리모컨을 쥐고 목소리가 큰가에 따라 방송사의 제작 역량 배분도 달랐다. 텔레비전은 행복한 우리 집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구성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텔레비전 제작자들은 누구를 위해 방송을 만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세태를 반영하자니 관행이 발목을 잡고, 관행을 따르자니 텔레비전은 얼룩진 세상의 창이 되어버린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위기는 바로, 낡은 것은 죽어가는 반면 새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통찰하며 “이 공백 기간에 매우 다양한 병적인 징후가 나타나는 것”(<그람시의 옥중수고>)이라 말한다. 그에 비춘다면 지난 몇 년간 한국의 텔레비전은 죽어가는 가족을 인공호흡하며 유령처럼 소환했다. 육아 예능은 불임하는 한국 사회를 상상 임신시켰고 장년 세대를 목표 수용자로 삼은 종편은 시대착오적인 옛 가족관으로 텔레비전을 노후화했다. 그사이 이혼, 재혼, 육아가 병적으로 텔레비전의 중심에 자리하였다. 반면 OTT의 접근은 달랐다. 그들은 가족을 재구성했다. 웨이브의 <남의 연애>는 동성연애를 통해 반려자를 찾으며, 넷플릭스는 1인가구와 비혼 동거 세대 취향을 파고들었고, 왓챠의 <시멘틱 에러>는 BL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OTT의 급성장은 어쩌면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달걀을 새우기 위해서는 그것을 깨야 했다. 가족의 와해는 아니다. 곁에 누군가를 두고픈 욕망은 동일할지라도 그 모습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가족 매체로서 텔레비전 제 2막의 성패는 가족 재구성에 맞추어 어떻게 유연하게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2020년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위원 등이 발의해 계류 중인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개정안은 “혼인·혈연·입양으로 맺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는 기존법의 좁은 가족 정의(3조 1항)를 삭제하고 건강하지 못한 가정을 전제하는 “건강가정”(3조 3항)의 가치판단을 탈피해 “가족” 일반으로 가족/가정을 포괄하는 내용을 담았다. 새로이 출현할 대안적 가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법적 근거다. 그럼에도 여가부는 “‘가족’ 정의규정에 대한 입장을 현행 유지”할 것이며, 이는 “법 개정안으로 인한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 지원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하기 위함”이라는 불가해한 설명을 내놓았다. 무엇이 소모적이란 말인가. 오히려 전통적 가족 모델이 붕괴되는 것 자체가 소모와 소진의 모습일진대, 여가부의 상황판단은 고루하고 안일하다. 그들이 과연 오늘의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