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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한국은 왜 ‘범죄영화 강국’이 됐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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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2.08.19 06:20 6,96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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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한국은 왜 ‘범죄영화 강국’이 됐나?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마동석 주연 〈범죄도시2〉, 관객 1000만 명 돌파
⊙ 지난 10년간 한국영화 흥행 통산 10위 내에 평균적으로 3편의 범죄영화 포함
⊙ 美 범죄영화 전성기는 미국 사회의 두 차례 범죄율 폭증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맞물려
⊙ 한국, 실제로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이지만 범죄에 대한 불안감만큼은 지극히 높아
⊙ 모든 것이 불안한 나라… 커뮤니케이션 量이 많은 것도 원인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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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2〉
  한국영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는 ‘여름 영화 시즌’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번 대목의 최대 승자는 일찌감치 결정됐다는 게 중론이다. 5월 18일 개봉한 마동석 주연 영화 〈범죄도시2〉의 흥행 돌풍 탓이다. 여름이 오기 직전 개봉해 여름 시즌 전반부를 휩쓸면서 극장 개봉이 거의 마무리되는 8월 3일 현재까지 무려 1269만1812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본 영화, 그것도 극장까지 찾아가 본 사람만 그 정도라는 것. 그야말로 ‘국민영화’의 탄생이다.
 
  〈범죄도시2〉는 2017년 688만 관객이 관람한 〈범죄도시〉의 속편이다. 제목대로 범죄영화 장르에 속하며, 두 편 모두 실제 범죄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잘 알려졌다. 1편이 2004년 중국 조선족 범죄조직 ‘왕건이파’ 사건과 2007년 조선족 범죄조직 ‘흑사파’ 사건을 엮어 각색했다면, 2편은‘필리핀 연쇄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는 각각의 사건을 벌인 일당들을 마동석이 분(扮)한 가상의 강력반 형사 마석도가 소탕한다는 전개다.
 
 

  이렇듯 전편 인기에 이어 속편에서 ‘1000만 영화’ ‘국민영화’ 자리에까지 오른 〈범죄도시〉 시리즈이지만, 다른 ‘1000만 영화’들에 비해 그 흥행 비결에 대한 분석은 대중문화 전문미디어에서조차 뜸한 수준이다. 액션스타 마동석의 스타성 정도만 반복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이유가 있다. 애초 한국영화 시장에서는 자국(自國) 범죄영화가 유난히 인기 있고, 그중에서도 실화 소재 범죄영화들은 사실상 ‘흥행 보증수표’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탄탄한 흥행 입지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범죄도시2〉 흥행 비결도 그저 가장 대표적인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른 정도이기에 별다른 분석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유별난 범죄영화 사랑
 
  여기서 이 한국영화 시장의 유난한 자국 범죄영화 인기를 좀 더 살펴보자. 흥행 성적을 토대로 보면 상황이 보다 명확히 파악된다. 지난 20년 동안, 그러니까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연도별 한국영화 연간 흥행 통산 10위 내 들어간 영화 200편 중 범죄영화의 비중을 따져보면 무려 57편이 그에 해당된다. 매년 한국영화 흥행 통산 10위 내에 평균적으로 3편씩은 범죄영화가 끼어 있다는 얘기다. 이 중에는 〈베테랑〉이나 〈극한직업〉 〈도둑들〉 등 ‘1000만 영화’도 다수 포함돼 있다. 거기다 범위를 넓혀볼수록 더 대단한 결과가 나온다. 예컨대 2017년은 한국영화 연간 흥행 통산 20위 내에 10편이, 그러니까 정확히 절반이 범죄영화로 채워져 있었다. 흥행 장르 쏠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세계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가 자리한 미국만 해도 그렇다. 같은 기간, 똑같이 매년 흥행 상위 10편씩 200편 중 범죄영화에 해당되는 영화는 놀랍게도 단 5편뿐이다.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나 ‘〈제이슨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스파이 영화들을 제외하고 보면 그렇다. 범죄영화도 흥행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중급 규모 흥행에 머무르기에 그 정도를 현실적 목표로 삼고 중급 규모 예산만 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그 정도 흥행도 장담 못 해 점차 넷플릭스 등 OTT 오리지널 영화로 흡수되는 추세(趨勢).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은 또 어떨까.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탐정 또는 유사(類似)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물(推理物)의 인기가 엄청나니 뭔가 다를 것도 같지만, 이런 일본조차 한국만큼은 아니다. 같은 기간 200편의 일본영화 중 범죄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실사(實寫)영화는 모두 28편, 한국의 딱 절반 정도다. 흔히 떠올리기 쉬운 야쿠자 영화들은 ‘V시네마’라 불리는 비디오시장 전용 B급 영화로서 소화되는 수준이지, 주류(主流) 극장용 영화로 등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실제 사건 소재 영화는 ‘흥행 보증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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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살인의 추억〉.
  이 밖에 웬만한 영화 강국(强國)들, 세계 10대 영화 시장들을 두루 살펴봐도 한국만큼 자국 범죄영화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실제 범죄 사건 소재 영화가 ‘흥행 보증수표’ 소리까지 들으며 승승장구하는 분위기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실제 범죄가 주는 특유의 무게감과 진지함 탓에 상업적 오락영화로서 소화되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 ‘이형호 군 유괴 사건’을 그린 〈그놈 목소리〉,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추격자〉, ‘부산 고시생 살인 사건’이 토대인 〈암수살인〉 등이 모두 큰 성공을 거뒀고, 심지어 형식상 범죄영화 분류에 들어간다고 보기도 힘든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원〉,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바탕인 〈도가니〉,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 등까지도 모두 흥행 성공을 얻어냈다. 흥행 공식이 다른 나라들과 정반대다.
 
  물론 이것도 그저 ‘취향’일 뿐이라 치부(置簿)해버릴 수도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이든 구분되는 국지적(局地的) 문화 취향들은 존재하니 말이다. 일본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고 프랑스는 코미디영화가 늘 강세다. 태국·필리핀 등 동남아국가들에서는 공포영화가 주류 장르로서 맹활약한다. 그런데 이런 국지적 취향들에도 대부분 남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이 뚜렷이 존재한다. 오랜 문화·예술 전통부터 사회제도 특성, 심지어 기후(氣候)나 지배적 종교 요소까지도 배경이 된다. 그리고 범죄영화 역시 사실상 그 유행의 배경이 드러나다시피 한 상태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인기 해석이 더 복잡해진다.
 
 
  美 범죄영화, 과거에는 인기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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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국 범죄영화를 대표하는 〈대부〉.
  앞서 미국에서는 범죄영화가 그리 대단하게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의아해할 이들도 많을 듯싶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에서 그럴 것이다. 이들에게 미국 할리우드는 철을 가리지 않고 히트 범죄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던 ‘범죄영화의 메카’처럼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사실 틀리지 않다. 미국에서 범죄영화의 전성기는 따로 있었다. 크게 두 차례, 1930~40년대와 1970~80년대다. 한국의 중장년층 이상은 이 중 1970~80년대 전성기를 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1930~40년대에는 갱스터영화와 탐정영화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1930년대에 〈스카페이스〉나 〈공공의 적〉 등 갱스터영화들이 인기였다면, 1940년대는 〈말타의 매〉 〈빅 슬립〉 같은 탐정영화들이 선풍을 일으켰다. 반면 1970~80년대는 형사영화 등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 중심으로 범죄영화 유행이 재개(再開)됐다. 당장 떠오르는 1970년대 미국 범죄영화들만 해도 〈프렌치 커넥션〉 〈더티 해리〉 〈데스 위시〉 〈원 웨이 티켓〉 등등 그 수도 많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찰스 브론슨, 버트 레이놀즈 등 액션스타들이 이 시기에 최전성기를 누렸다. 단적으로, 197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영화를 단 한 편 꼽는다면, 아주 간단하게,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을 다룬 범죄영화 〈대부〉가 꼽힌다.
 
  한편 1980년대 역시 1970년대만큼은 아니어도 기억에 남는 범죄영화 히트작들이 많았다. 〈비버리 힐스 캅〉과 〈리쎌 웨폰〉 시리즈를 필두로 〈위트니스〉 〈언터쳐블〉 〈아메리칸 플레이보이〉 등등 흥행작들이 속속 탄생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즈음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여전히 흥행 장르이기는 했지만, 연간 통산 10위 내에 들어갈 만큼 ‘대박’ 흥행은 또 거두기 힘든 장르로 서서히 내려앉았다.
 
 
 
 
범죄율과 범죄영화
 
  이 같은 일련의 흐름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이처럼 두 차례에 걸친 미국의 범죄영화 전성기는 시기적으로 20세기 미국 사회에서 범죄율이 가장 폭증하던 때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1930~40년대는 1920년대 금주법(禁酒法) 시행으로 밀주(密酒)를 유통하는 범죄조직들이 대폭 늘어난 데다 1929~1939년 경제 대공황(大恐慌)까지 겹쳐 폭력·살인 범죄와 강도·절도 범죄 등이 동시에 폭증하던 때다. 그러다 1935년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창설과 맹활약으로 범죄조직들 활동이 한풀 꺾이고,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급속도로 경기(景氣)가 회복되면서 범죄율도 크게 낮아졌다.
 
  1970~80년대는 조금 상황이 특이하다. 1960년대 초중반부터 범죄율이 치솟아 1970년대에 엄청난 폭증세를 보이다가 1991년을 정점으로 다시 급격하게 내려앉은 긴 흐름. 이 시기의 범죄 폭증에 대해 형사법학자 배리 래처 존제이대 명예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범죄 발생률이 높은 연령대가 됐고 형사 사법제도가 취약”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미국의 1차 베이비붐 세대가 성장해 가장 높은 범죄 발생률을 보일 나이, 즉 20대 전후에 이른 시점부터 전체 범죄율도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여기에 1960년대부터 히피 세대가 주도한 반문화(反文化) 풍조 등이 더해져 사회기강(社會紀綱)이 전반적으로 무너지면서 범죄 폭증을 부추겼다는 것.
 
  그렇게 1980년에 이르러 미국의 살인범죄율은 10만 명당 10.2명까지 치솟아 현재의 우간다나 코스타리카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다 1991년을 정점으로 다시 급락하는 대반전(大反轉)이 일어난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8년 동안 무려 21억 달러를 쏟아부은 마약 퇴치 캠페인 등 전반적인 범죄와의 전쟁이 결국 효과를 거두고, 클린턴 행정부의 10만 경찰 증원 등 정권이 바뀌어서도 꾸준히 공권력 확대가 이어진 덕택으로 파악된다.
 
  이렇듯 미국 사회의 두 차례 범죄율 폭증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맞물리는 미국영화 시장의 두 차례 범죄영화 전성기는 서로 간 관계를 간명하게 유추(類推)토록 이끈다. 대중의 실제 생활환경에서 범죄가 급증해 불안감이 심해질수록 그 불안감은 곧 범죄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가 대중문화상품 소재로서 상업적 가치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안하니까 더 관심이 생기고, 불안하니까 더 구경하고 대리체험(代理體驗)해보고 싶어지는 대중심리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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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누아르’ 시대를 대표하는 〈태양은 가득히〉.
  그러고 보면 사실 미국만이 사례도 아니다. 1960년대 초중반부터 비슷한 원인들로 범죄율이 급증하기 시작한 건 자유세계 서유럽도 마찬가지였고, 해당 지역에서도 같은 때 비슷한 범죄영화 유행이 인 바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만 해도 1960년대부터 〈태양은 가득히〉 〈암흑가의 두 사람〉 〈지하실의 멜로디〉 〈볼사리노〉 등 범죄영화들이 큰 인기를 누리며 ‘프렌치 누아르(french noir)’ 전성시대를 열었다. 알랭 들롱, 장 가뱅, 리노 벤추라 등 프랑스 범죄영화 스타들이 이때 탄생했다. 영국과 이탈리아 등도 같은 시기 비슷한 길을 걸었음은 물론이다.
 
  상황이 이러니 진정한 의문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같은 논리라면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국의 유난한 범죄영화 인기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미국 사회의 두 차례 범죄 폭증과 같은 시기를 겪어본 적이 없고, 특히 형법범죄 중 5대 범죄라 불리는 살인, 강도, 성폭력, 폭행, 절도 등에 있어 일반 대중이 일상에서 쉽게 범죄를 접할 만큼 무법천지(無法天地)였던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한국의 범죄영화 전성기라는 지난 사반세기를 돌아봤을 때 5대 범죄의 인구 10만 명당 발생 건수는 10여 년째 2000명 전후로 한국은 글로벌 기준 매우 안전한 환경에 속한다. 거기다 2000년에서 2020년 사이 강도는 9분의 1로 줄었고 살인도 최근 감소 추세다. 성폭력이나 폭행 등이 같은 기간 증가하긴 했지만, 이는 범죄정보관리시스템(CIMS)을 형사 사건에 적용하면서 기록에 남지 않던 경미한 폭행 사건들까지 빠짐없이 기록되고 야간에 발생한 폭력행위를 특수폭행에서 폭행으로 분류하는 등의 변화 탓에 벌어진 결과에 가깝다. 무엇보다 5대 범죄 중 가장 중차대한 살인범죄율의 경우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0.6건에 불과해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범죄 불안율 높아
 
  그럼에도 올해 역시 ‘1000만 영화’ ‘국민영화’를 또 한 편 탄생시키고 있는 한국의 꺼지지 않는 범죄영화 열광 분위기. 결국 실제로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이지만 범죄에 대한 불안감만큼은 지극히 높은 특이한 흐름에서 비롯됐다고밖에 달리 볼 길이 없다. 그럼 왜 이렇게도 불안해할까.
 
  이 같은 한국인들의 기묘한 특성에 대해 지난 수년간 차근히 연구 결과들이 쌓이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우선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연구원의 2016년 보고서, 즉 유럽국가와 한국의 ‘위해(危害) 경험률’과 ‘범죄 불안율’을 각각 비교한 연구를 들 수 있다. 해당 보고서를 요약한 《서울신문》 2018년 8월 6일 자 기사 “범죄율 낮은데… 한국인 ‘밤길 불안’ 왜 클까”를 보자.
 
  〈유럽국가와 우리나라에서 밤길을 혼자 걸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 비율을 비교·분석해 5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3.1%로 16개국 중 3위에 해당했다. 4명 중 1명꼴이다. 한국보다 불안감이 높은 나라는 체코(23.9%), 러시아(23.4%)뿐이었다. 16개국 평균은 17.5%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실제 강도·위해 경험률(가족 포함)은 1.5%로 가장 낮았다. 유럽에서 범죄 경험률이 가장 낮은 오스트리아(7.8%)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국내 수치만 놓고 보면 실제 범죄 경험률보다 불안감이 훨씬 높다. 우리 국민들은 왜 이렇게 큰 불안감에 시달리는 걸까. (중략) 우 연구원은 “한국에서 젊은 층의 불안감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미디어를 통한 정보 접근성이 높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 언론사가 포털사이트 인기 뉴스에 기사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행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공포와 불안은 전염된다
 
  한편, 《중앙일보》 2022년 4월 1일 자 기사 “잘살아도 비관적, 안전해도 불안… 한국인만 이러는 이유”는 범죄와 불안감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풀어낸 또 다른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복잡한 심리에 접근한다. 2018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 〈범죄 공포: 피해자 분포 차이에 따른 영향〉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은 멕시코 출신 범죄전문가 라파엘 프리에토 쿠리엘이 저자다. 이를 다룬 위 《중앙일보》 기사를 보자.
 
  〈이 논문에 따르면 범죄가 어느 한 집단에 집중돼 있으면 전체적인 불안율은 낮아집니다. 공포와 불안은 전염성이 높은 감정입니다. 범죄 발생이 어느 한곳에 집중돼 있다면, 그 집단에 불안감이 갇혀 있어 다른 집단에 전염될 일이 적어지죠. 하지만 집단 간 상호작용이 활발하면 범죄가 특정 집단에 집중돼 있다 하더라도 불안이 다른 집단에 전파되기 쉬워집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불안감이 올라갑니다. 한국인의 불안감은 범죄가 특정 집단에 집중됐지만 상호작용은 활발한 데서 온 게 아닐까요. (중략) 쿠리엘 박사의 모델에 따르면, 한국은 집단 간 상호작용이 많고, 미디어와 SNS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사실 이 같은 ‘한국인의 불안감’ 문제는 비단 범죄 관련으로만 거론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건강 염려 관련으로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논문 〈OECD 보건통계로 본 한국인의 건강상태와 보건의료이용〉은 한국인은 실제 건강상태에 비해 자기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여타 국가에 비해 다분히 높다는 점을 짚고 있다.
 
  국민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객관적 지표인 기대수명이 당시 기준 81.8년으로 OECD 국가 평균 기대수명 80.5년보다 1.3년 긴 것으로 나타났고, 건강기대수명 역시 73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었지만, 15세 이상 인구 중 자신의 건강이 ‘양호’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5.1%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것. OECD 국가 평균은 69.2%였다.
 
 
  모든 것이 불안한 나라
 
  이런 분위기니 극장가에서 범죄영화가 흥행을 휩쓸듯, 지상파TV의 아침 정보 프로그램들에서도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건강 관련 정보들이 쏟아지고, 나름대로 유용한 정보들과 함께 건강 관련 불안과 공포를 가중(加重)시키는 사연들도 섞여 나온다. 이런 ‘건강 괴담’들이 아침 정보 프로그램들에서는 또 상업적 요소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불안하니 관심이 많아져 이런 정보들을 찾아다니고, 그러다 보니 더 불안해지고, 그렇게 ‘불안의 고리’가 형성된다.
 
  이 외에도 많다. 한국인은 사실상 ‘모든 것’이 불안하다. 각종 안전사고나 식품위생 등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들부터 자신의 노후나 자녀의 앞날 등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들까지 모든 게 불안하다. 실제로 그런 문제들이 삶에 결정적 위협이 되는 나라들보다도 더 그렇다.
 
 

  이 같은 한국인 특성에 대해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서양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도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일반 우울증에 비해 충동적이고 초조와 불안을 크게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민감하고 꼼꼼해서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한다. 그 장점으로 잘사는 나라를 만들었지만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행복감을 덜 느낀다”고 진단했다.
 
  여기서 위 《네이처》 논문은 이 같은 불안함의 원인이 미디어와 소셜미디어(SNS)의 영향과 함께 “집단 간 상호작용”이 많기에, 즉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다양한 사람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지나치게’ 왕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먼저 2000년대 들어 한층 왕성해진 범죄영화 붐은 절묘하게 포털사이트 뉴스페이지 중심으로 뉴스 보도가 재편되면서 갖가지 자극적인 범죄 사건 보도들을 실시간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때와 시기적 궤를 같이한다.
 
 
  ‘집단 간 상호작용’ 활발
 
  한편, 사적(私的)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한국만큼 커뮤니케이션 양(量)이 어마어마한 나라도 또 드물다. 그러다 보니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성황을 이룬다. 그렇게 서울은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커피숍이 가장 많은 도시가 됐고, 저 수많은 음식점과 주점들도 마찬가지다. 술을 좋아해 마신다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그렇게들 마신다.
 
  나아가 직접 대면(對面)하지 않고서도 커뮤니케이션은 일상 속에 가득하다. ‘국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국내 이용자 수는 지난해 4분기 기준 4703만 명에 이르고 있다. 카카오톡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대상도 실제 부대껴 지내는 집단에 머물지 않는다. 카카오톡 전체 대화량에서 지인(知人)과의 대화가 아니라 관심사 기반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채팅하는 오픈채팅의 비중은 이제 40%까지 이른다는 보도다. 여기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여타 소셜미디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만날 일이 없는 이들이 또 더해진다.
 
  이렇듯 서로 다른 ‘집단 간 상호작용’이 어마어마하게 활발하니 세상 모든 일은 소위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전혀 접해본 적 없는 집단들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소식 등이 가만히 있어도 카카오톡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계속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 실제 통계수치와는 달리 온통 치명적 위협들로 뒤덮여 있는 듯 여겨지게 되고, 오히려 점점 더 부정적 뉴스들에 집착하게 되며, 급기야는 그만큼 더 불안해진다. 한국의 범죄영화 흥행, 그중에서도 실제 범죄 사건 소재 영화의 ‘불패(不敗)’ 비결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시 〈범죄도시2〉로 돌아가 보자. 〈범죄도시2〉는 개봉 전인 지난 4월 아시아와 북미, 유럽 등에 걸친 세계 132개국에 선판매(先販賣)되는 수출 쾌거를 거뒀다. 전편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이다. 전편은 2021년 인도에서 인도 국민배우 살만 칸 주연으로 리메이크까지 이뤄졌고, 일본에서도 현재 리메이크가 기획되고 있다.
 
  비단 〈범죄도시〉뿐만이 아니다. 〈올드보이〉 〈악인전〉 등 수많은 한국 범죄영화가 세계 각국에서 이미 리메이크됐거나 리메이크 기획에 들어간 상태다. 오리지널 한국 범죄영화 자체의 세계 흥행 역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범죄영화 강국’
 
  서두에도 언급했듯, 한국은 범죄영화가 워낙 인기이기에 일단 수적(數的)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또 그만큼 고도화(高度化)가 이뤄져 있어 이제 세계 범죄영화 장르를 리드하는 주축(主軸)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 ‘범죄영화 강국’으로서 세계에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믿고 보는 영화’로서 세계적 인지도와 주목도, 인기도 올라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극단적 불안감과 맞바꿔 얻어낸 ‘범죄영화 강국’이라는 입지. 이를 대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각자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여기서 좀 다른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국인의 다양한 불안감들을 건드려 히트상품으로 거듭난 대중문화 콘텐츠, 예컨대 자녀교육 불안을 자극하는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나 한두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도 일순간에 사회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건드리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을 놓고 주위 반응을 물을 때마다, 필자는 거의 모두로부터 사실상 똑같은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세상인데 어디 무서워서 결혼해 애 낳고 살 수나 있겠어?”
 
  어쩌면 저 수많은 대중문화 히트상품들로 엿볼 수 있는 한국인의 갖가지 불안감이 궁극적으로 다다르는 지점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치명적인 위기 중 하나인 극단적 저출산(低出産) 상황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그렇게 엄청난 위기를 야기(惹起)하고 있을지 모를 불안감들이, 비록 허상(虛想)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과는 상당부분 거리가 있는 강박과 공포 탓에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는 점이 허탈하다. 곱씨ㅂ어 볼수록 생각보다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이번 여름 ‘국민영화’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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