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추락 이후… 여고생들의 끔찍한 비밀, 승객들을 찾아온 환상 [왓칭]
비행기 추락을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 두 편
비행기가 추락했다.
한 비행기는 고교 여자 축구팀 선수들을 태운 채 깊은 산 속에 떨어졌다. 오지 않는 구조대를 기다리며 문명과 격리된 야생 속에서 19개월을 살아남는 동안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었다. 생환 25년 뒤, 참혹한 당시의 비밀이 유령처럼 뒤쫓아 온다.
한 비행기는 자메이카에서 뉴욕으로 날아가다 기이한 폭풍을 만났다. 바다로 추락해 모두 죽은 줄 알았는데, 비행기는 5년 반의 시간을 뛰어넘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뉴욕으로 돌아온다. 다시 세상에 내려선 탑승자들의 머리 속을 환상과 환청이 헤집는다.
비행기 추락 사고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시리즈 두 편.
◇산 속에 추락한 여고생들, 살기 위해 문명이 정한 선을 넘었다
멋대로 생각해. 의견이란 지식과 무지 사이의 광야니까.
1996년, 시애틀에서 열리는 주 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고교 여자 축구팀과 코치진을 태운 비행기가 캐나다의 험준한 산 속에 추락한다. 멋진 경기를 꿈꿨던 여고생들 앞에 펼쳐진 것은 아비규환의 지옥도. 구조대는 기다려도 오지 않고, 이들은 덮쳐오는 늑대와 싸우며 얼어붙은 숲 속에서 19개월을 견뎌 살아남았다. 25년 뒤, 굳게 입을 다문 채 살아온 생존자들을 향해 그 때의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압박해온다. 살아남은 자들의 삶이 뿌리부터 흔들린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은 바닥을 드러낸다. 도입부의 충격적인 추격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여고생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끔찍한 비밀의 일부를 먼저 엿보게 된다. 사고 당시의 이야기는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1954)의 여고생 버전 같다.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이 인간성을 상실하며 본능적 잔인함과 야만에 빠져들었듯, 고립된 여고생들의 사회에서도 생존이라는 유일한 대의가 문명의 질서를 무참히 무너뜨린다.
드라마는 생존자들의 현재 모습을 과거와 교차시키며 진실의 퍼즐을 맞춰나간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가끔 웃음이 날 만큼 어설펐고, 또 가끔은 무섭도록 서로를 향해 잔인했다. 여고생 시절의 본성은 세상이라는 정글에서 또 다른 생존투쟁으로 25년을 지나온 지금 어른들의 얼굴에도 배어나온다. 드라마는 공포 스릴러를 넘어서 인간성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가 된다.
올해 미 방송 최고 권위의 에미상 7개 부문 후보인 파라마운트 시리즈. 드라마 시리즈 작품·감독·각본·여우조연 등 부문에서 ‘오징어게임’의 경쟁작이다.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지수 100%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다.
◇우리가 살아남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거야
고통 때문에 네게 주어진 기적을 낭비하지마.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 있어.
“2013년 4월 7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기적이라 부른다. 내가 아는 건, 그날 내 인생이 영원히 바뀌어버렸다는 사실 뿐이다.”
그날, 자메이카발 뉴욕행 몬테고 항공 828편이 바다 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5년 반의 시간을 뛰어넘어 뉴욕으로 돌아온 비행기. 정부 관계자들은 당황하고, 191명의 승객들은 황당하다. 그 시간 동안 비행기와 승객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왜 이들에게만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까.
가장 친한 친구가 약혼자와 결혼해 혼자 남겨진 여자 형사, 쌍둥이 여동생과 친구들은 훌쩍 자랐는데 자신만 여전히 어린아이인 소년, 혼자 외로웠던 아내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편….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조사해가던 이들은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대형 교통 사고를 막거나 유괴된 아이들을 발견한다. 초자연적 현상과 현실의 어려움, 고통받는 사람들과 이 능력을 악용하려는 정부기관과 범죄자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흥미로운 설정과 소재를 낭비하는 느슨한 스토리라인이 아쉬움을 남기는 시리즈. 에피소드마다 환청을 듣거나 환상을 본 뒤 사건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꾸준히 미스터리의 단서를 이어가는 탓에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가 쉽지 않은 중독성이 있다.